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예화ㅣ우화

우동 한그릇(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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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gregory1004] 쪽지 캡슐

1999-06-12 ㅣ No.112

 그 다음해의 섣달 그믐날 밤은 여느해보다 더욱 장사가 번성하는
중에 맞게 되었다. 북해정의 주인과 여주인은 누가 먼저 입을 열
지는 않았지만 9시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10시를 넘긴 참이어서 종업원을 귀가시킨 주인은, 벽에 붙어 있
는 메뉴표를 차례차례 뒤집었다. 금년 여름에 값을 올려 '우동
200엔'이라고 씌어져 있던 메뉴표가 150엔으로 둔갑하고
있었다. 2번 테이블위에는 이미 30분전부터<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져 있다. 10시반이되어, 가게 안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것 처럼, 모자 세 사람이 들어왔다.
형은 중학생 교복,동생은 작년 형이 입고 있던 잠바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엄마는 색이 바랜 체크무늬 반코트 차림 그대로였다.

"어서 오세요!" 라고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여주인에게,엄마는
조심조심 말한다.

"저....우동....이인분인데도....괜찮겠죠?"
"넷.....어서 어서. 자, 이쪽으로."
라며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거기 있던<예약석>이
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고 카운터를 향해서 소리친다.

"우동 이인분!"


"우동 이인분!"

이라고 답한 주인은 둥근 우동 세 덩어리를 뜨거운 국물 속에
던져넣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은 목소리
가 들리고, 이야기도 활기가 있음이 느껴졌다.
카운터 안에서,무심코 눈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짓는 여주인과,예의
무뚝뚝한 채로 응~응~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이다.

"형아야,그리고 쥰아....오늘은 너희들에게 엄마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무슨 말씀이세요?"

"실은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키신 사고로, 여덟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잖니, 보험으로도 지불할 수 없었던 만큼을 매월 5만
엔씩 계속지불하고 있었단다."

"음.....알고 있어요."

라고 형이 대답한다.
여주인과 주인은 몸도 꼼짝 않고 가만히 듣고 있다.

"지불은 내년 3월까지로 되어 있었지만, 실은 오늘 전부 지불을
끝낼 수 있었단다."

"넷! 정말이에요? 엄마!"

"그래, 정말이지, 형아는 신문배달을 열심히 해주었고, 쥰이
장보기와 저녁준비를 매일 해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던 거란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을해서 회사로부터 특별
수당을 받았단다. 그것으로 지불을 모두 끝마칠 수 있었던 거야"

"엄마! 형! 잘됐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 식사준비는 
내가 할 거에요."

"나도 신문배달,계속할래요. 쥰아! 힘을 내자!"

"고맙다. 정말로 고마워...."

형이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지금 비로소 얘긴데요.쥰이하고 나,엄마한테 숨기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요....11월 첫째 일요일,학교에서
쥰이의 수업 참관을 하라고 편지가 왔었어요. 그 때, 쥰은
이미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아놓고 있었지만요.
쥰이 쓴 작문을 쥰이 읽게 됐대요. 
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엄마에게 보여드리며.....무리를 해서
회사를 쉬실걸 알기 때문에 쥰이 그걸 감췄어요. 그걸 쥰의 친구
들한테 듣고....내가 참관일에 갔었어요."

"그래....그랬었구나...그래서."

"선생님께서, 너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제목
으로 전원에게 작문을 쓰게 하셨는데, 쥰은<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써서 냈대요. 지금부터 그 작문을 읽어 드릴께요.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쥰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죠. 작문은....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
가셔서 많은 빛을 남겼다는 것,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
까지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 내가 조간석간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는 것 등......전부 씌어 있었어요.
그리고서 12월31일 밤 셋이서 먹을 한 그릇의 우동이 그렇게
맛있었다는 것...셋이서 다만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동집 아저씨와 아줌마는,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큰 소리로 말해주신 일. 그 목소리는...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하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그래서 쥰은,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행복해라!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커다란 목소리로 읽었어요."

카운터 안쪽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을 주인과 여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카운터 깊숙이 웅크린 두 사람은, 한장의 수건 끝을 서로
잡아당길 듯이 붙잡고, 참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작문 읽기를 끝마쳤을때 선생님이, 쥰이 형이 어머니를 대신
해서 와주었으니까. 여기에서 인사를 해달라고해서....."

"그래서 형아는 어떻게 했지?"

"갑자기 요청을 받았기 때문에,처음에는 말이 안 나왔지만...
여러분, 항상 쥰과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습니다....동생은
매일 저녁식사 준비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클럽활동 도중에
돌아가니까.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동생이
<우동 한 그릇>이라고 읽기 시작했을 때...나는 처음엔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그러나, 가슴을 펴고 커다란 목소리
로 읽고 있는 동생을 보고 있는 사이에, 한 그릇의 우동을
부그럽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한 그릇의 우동을 시켜주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형제가 힘을 합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겠습니다....앞으로도 쥰과 사이좋게 지내주세요 라고 말
했어요."

차분하게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웃다가 넘어질 듯이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작년보다는 아주 달라진 즐거운 그믐날 밤의
광경이었다.
우동을 다 먹고 300엔을 내며'잘 먹었습니다.'라고 깊이깊이
머리를 숙이며 나가는 세 사람을, 주인과 여주인은 일년을 마무리
하는 커다란 목소리로,'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라며 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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