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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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준비된 이들이 이루는 가정, 세상을 바꿀 수 있다(약혼자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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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1-29 ㅣ No.790

[가정 - 사랑의 공동체] 준비된 이들이 이루는 가정,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이 2박 3일 동안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눈다. “우리는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이렇게 집중적으로 깊은 얘기를 나눈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앞으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 나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끝나고 나면 대개 이런 식의 평을 듣게 된다. 사제로서 5년 동안 이 프로그램에 함께해 온 나의 느낌은 이렇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으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에서 주관하여 실시하고 있는 ‘약혼자주말’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사실 사목국은 고사하고, 서울대교구 소속도 아니면서 선배 신부님의 초대로 이 프로그램을 참관하고 함께하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나 배경 등은 잘 모르지만, 서울대교구에서는 1997년에 처음 시작하였고, 지금은 수원교구, 의정부교구, 마산교구 등에서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대교구의 경우, 지금까지 총 2,560쌍이 ‘약혼자주말’을 수료하였고, 2014년에는 14차례의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321쌍이 수료하였다.

프로그램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하여 주일 오후에 파견미사로 마친다. 결혼식 준비에 바쁜 이들로서는 마련하기가 힘든 시간이지만 신청자는 늘 넘치고, 대개 두 세 달 전에 마감된다. 진행은 M.E. 교육을 받은 결혼 10년차 이상의 선배부부와 ‘약혼자주말’을 수료하고 봉사자 교육을 마친 후배부부, 그리고 사제 한 명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발표문을 읽고, 수강자 커플이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혼인을 앞둔 이들은 삶에 열정적이다

수강자들을 처음 만날 때 늘 드는 생각이 있다. ‘피곤한 일상에서 겨우 벗어나 이 자리에, 그것도 절반 정도는 타의에 이끌려서 왔을 터인데도 어떻게 저렇게 진지하게 눈을 반짝이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젊은 시기에는 감각적이고 현실적인 데에만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과는 반대로, 이들은 기대감과 또 약간의 긴장을 보이며 매우 진지하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러고 보니 젊은이들이야말로 삶에 대해 가장 열정적이고 진지한 이들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것 같다. 교회가 그들의 관심사를 적절하게 이끌어주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어려웠을 뿐이다. 더구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앞두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자리가 그들에게는 절대로 피곤하거나 무료하지 않다. 우리가 애써 강조하지 않아도 이들은 이 시간의 가치를 알고 있다. 또한 비슷한 상황의 다른 커플들과 함께한다는 사실도 이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더해 준다.

이 프로그램을 먼저 체험한 이들이 적극적으로 이를 추천하기 때문에 참가 희망자는 꾸준히 늘어간다. 해마다 횟수를 늘려가는 데도 희망자를 다 수용하지 못한다. 친구나 선배 커플뿐만 아니라 부모의 권유로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차수마다 외짝 교우 커플이 3분의 1가량 되고, 한 쌍 정도는 양쪽 다 신자가 아니다.

사제들 가운데에는 혼배 주례를 부탁받으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조건으로 걸거나, 아예 결혼 선물로 등록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둘이 함께 이 프로그램을 미리 알고 원해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한쪽이 이를 권했거나 둘 다 권유(때로는 강요)를 받고 참여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이야기다. 역시 마음이 가장 열려있는 시기이기 때문일까? 스스로 끌려왔다고 말하면서도 크게 억울한 기색은 없다. 자기 생각과 주관을 포기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 그것만으로도 이들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감사를 체험하고 간직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혼인을 앞둔 이들은 두렵고 불안하다

선배 부부와 후배 부부의 체험 발표는, 결혼 준비뿐만 아니라 결혼생활 전반에서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미리 알게 하고, 이러한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는 실질적인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대화를 통해 이들은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심지어 특별히 어떠한 어려움을 더 심하게 겪게 될지도 예상할 수 있다.

가구나 예물, 식장이나 청첩장 등 하루면 끝날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보다, 평생 살아야 하고 겪어야 하는 결혼생활을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싸우고 견뎌내야 하는 역경들에 적절한 방법과 도구를 준비하는 것이다.

결혼하는 남녀를 축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때로는 결혼생활 초기에 갈라지는 이들을 보면 젊은 세대의 가벼운 결혼관을 탓하기도 한다. 서로를 위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자기를 알아주고 배려해 주기만을 바라며,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기보다는 쉽게 포기하는 이기적이고 피상적인 세태를 한탄한다.

하지만 어디 그것이 그들만의 탓일까? 경제 성장은 정체되고 빈부격차는 커지며 삶의 경쟁과 각박함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이 시대, 출생률은 떨어지고 자살률은 올라가며 나 자신의 삶의 질과 만족감이 바닥을 헤매고 있는데, 유치원에서부터 입시 지옥을 맛봐야 하는 이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높아져만 가는 양육비를 감내하며 자녀를 낳아 길러야 하는 세상. 이러한 세상에서 이미 스스로도 위기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성세대는 새로운 가정을 이루려는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결혼을 앞둔 당사자들은 절대로 환상에만 젖어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두렵고 불안해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다. 대입을 위해서는 온갖 정보와 학원이 홍수를 이루는데 비해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이끌어주는 사회적 장치가 전혀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당사자들은 다른 이들도 모두 같은 처지라는 사실에 의지하여 마음 속의 불안을 떨치면서, 눈앞에 닥친 결혼식 준비에만 몰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분명히 느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구체적으로 짚어주고 대비하게 해주는 이 시간의 가치를 안다.

평생 동안 겪을 문제들을 미리 짚어보고 다른 이들의 경험에 비추어 간접적으로라도 느껴본다는 것, 내 눈의 콩깍지로 보호되어 아직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짝꿍과의 갈등을 미리 상상한다는 것은 분명 달콤한 경험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마음과 정신과 사랑을 다해서 서로에게 집중하고 진지함을 유지한다. 이 모든 것은 이미그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약혼자주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면담을 하고, 고해성사를 주다 보면 매우 안정된 커플도 보이고 불안한 커플도 보인다. 아주 성숙한 커플도, 아직은 너무 어리다 싶은 커플도 있다. 첫날 저녁부터 끊임없이 우는 자매도 있었고, 중간에 포기하는 커플도 물론 있었다. 심각하게 싸우는 커플도 있고, 심지어 결혼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다.

이 모든 것이 프로그램이 지닌 역동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관계와 결심과 전망과 삶을 흔들어 단련시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내가 보기에 이 프로그램은 분명히 이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 세상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이고 소중한 공동체, 하느님의 사랑과 복음을 체험하고, 배우고, 실천하는 가정의 시작을 준비하는 결정적인 시기에 꼭 필요한 도움을 분명히 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수강한 커플들 가운데 일부는 후배부부로서 훈련을 받고 봉사를 하게 되는데, 임신 중에나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선배 부부와 사제를 구하기는 어려운 데 비해 후배 부부는 봉사하려는 사람이 많아 대기하는 것은 물론이요, 밀려서 봉사를 못하기가 일쑤다.

프로그램에서 느끼고 배웠던 것에 감사하면서, 이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는 이타적인 동기에서 봉사를 시작하지만, 사실은 발표 봉사를 하면서 더욱 깊고 새롭게 그들의 결혼생활이 도움을 받는 것을 체험하면서 이들은 봉사에 중독된다고 한다. 이 두 가지 동기가 함께 이 프로그램의 효과와 가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여러모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고, 더 많은 교구에서 내실 있게 진행되며, 차수도 늘어나서 원하는 모든 예비부부가 쉽게 수강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젊은 사제들이 이 프로그램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었으면 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은 세상과 교회에, 그리고 사제들에게도 큰 힘이 되는 희망을 선물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변승식 요한 보스코 - 의정부교구 신부. 주교회의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고양동본당 주임,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장을 맡고 있다.
* 정상현 프란치스코 - 서울대교구 여의도동본당 신자이며, ‘코너스톤 이미지’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1월호, 글 변승식 · 사진 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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