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술ㅣ교회건축

본당순례: 순교자 성월에는 더욱 뜨겁게, 한마음으로 양곡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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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9-11 ㅣ No.881

[본당순례] 순교자 성월에는 더욱 뜨겁게, 한마음으로 양곡성당

 

 

숲속의 동화나라를 떠올리게 하는 양곡성당은 샛별어린이집이 한울타리에 있어 더욱 아기자기하다. 산비탈 빼곡한 꽃과 나무 사이에 자리한 성모자상과 예수성심상을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은총의 향기가 흠씬 가슴으로 들어온다. 본당 설립 당시에 심은 어린 느티나무는 이제 짙은 그늘을 드리우며 신자들의 충실한 쉼터가 되었다. 산으로 나무로 둘러싼 성당은 도심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낸다. 또한 성당 바로 앞을 흐르는 양곡천으로 하여 오고가는 교우들에게 청량함을 더한다.

 

 

본당주보는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성 정하상 바오로 동상이 손들어 반긴다. 양곡성당 본당주보는 교구 내에서 보기 드물게 정하상 바오로 성인이다. 정약종의 아들이며 정약용의 조카로 가족이 온통 순교하여 신앙을 증거하였고, 어머니 유소사 체칠리아와 누이 정정혜 엘리사벳과 함께 103위 성인품에 오른 분이다. 정하상은 교회를 이끌 사제가 없을 때 실질적인 조선천주교의 지도자가 되었고, 역관의 종으로 위장하여 북경에 가서 조선에 사제가 오기를 청하였다. 그는 조선의 독립 교구 설치를 교황청에 청원하였고, 1931년 천주교 조선교구 설치에 이르게 되었다. 1836년에는 모방 신부가 조선에 입국했는데, 정하상의 집을 숙소로 삼았다. 이때 모방 신부는 앵베르 주교, 샤스탕 신부와 함께 선교사로 활동하며 신자들의 수가 늘어나자 정하상의 도움을 받아 조선인 신부를 키우고자 하였다. 앵베르 주교는 학식이 있고, 성실히 신앙생활을 해온 정하상에게도 신학을 가르쳤다. 기해박해가 일어나 1839년 9월 22일 정하상은 어머니와 누이와 함께 순교하였는데, 체포 직전 천주교 호교론서 《상재상서》를 저술하였다. 부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형 정철상 가를로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여 2014년 복자품에 올랐다.

 

9월을 사는 양곡성당 신자들은 더 뜨겁게 남다른 마음가짐이다. 순교자 성월에다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을 기해 본당의 날도 맞이한다. 코로나 시대를 보내며 요 몇 년은 조용하게 지내고 있지만, 해마다 순교자 성월에는 성지순례 등 특별한 순교신심을 고취하는 시간을 보냈다. 본당 설립 25주년에는 정하상 성인의 동상을 세워 그분의 투철한 신심을 기리며, 선교정신을 본받고자 하였다.

 

 

40여 년 역사의 퍼즐

 

김용민 레오나르도 주임 신부, 박진태 스테파노 사목회장, 박희규 요한 부회장, 이종분 가타리나 부회장, 오기호 실베스텔 선교부장, 이지태 베르나도 전 부회장, 서영희 아녜스 사무장이 사랑방에 모였다. 본당의 40여 년 역사 속에서 기억을 솔솔 되살려 내놓았다. 설립 때부터 몸을 담았다는 오 실베스텔은 건물을 가릴 정도로 무성하게 큰 느티나무가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뜰에 지켜 서서 드나드는 신자들을 반기는 성당지킴이가 되었다. 이 베르나도는 활기차고 열정적이었던 초기 본당 공동체의 분위기를 회고했다. 오래 사무장으로 일해 오다가 이태 전에 정년퇴직하고, 이번에 부회장을 맡은 박 요한은 ‘작지만 아름다운’ 본당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선하고 내적으로 알차게 책임을 수행하는 신자들이다. 현 사무장 서영희 아녜스도 맞장구쳤다. 다른 성당에 비해 신자수는 적은데 가족적인 분위기에 무척 감동을 받았단다. 미사 후에도 신자들이 빨리 돌아가지 않고, 사랑방과 미소방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모습에 김용민 신부는 음식을 내놓기도 하며 따뜻한 시간이 되도록 북돋우기 일쑤다. 이종분 가타리나는 그동안 직장일로 조금은 소극적이었는데, 일을 그만두고 이번에 부회장을 맡게 되었으니 능동적으로 일을 하겠다는 결심이다. 코로나로 위축된 분위기가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박 스테파노는 지난 시간, 가을에 열렸던 예술제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성경필사와 더불어 문인화, 도자기, 사진, 손뜨개 등 작품 전시회에 음악 발표회까지 더한 예술제는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창원지역에는 1977년 설립된 가음동본당만 있다가, 1981년 1월 양곡본당과 반송본당이 동시에 설립되었다. 창원공단의 발전과 인구 유입으로 복음전파도 급속도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양곡성당은 성전이 건축되기까지 4년 동안은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많은 고충을 겪었다. 상가를 빌리거나 아파트 지하에서, 또는 먼저 건축한 유치원 건물 등에서 미사를 올리며 공동체를 키워 나갔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창원으로 근로자와 가족들이 대대적으로 이주했다. 8,90년대에는 양곡성당에 근로자들이 성지처럼 모여들었다. 창원공단이 번창했던 그 시절, 현대양행을 중심으로 근로자들의 교우회가 구성되어 활발하게 움직였다. 양곡성당은 그들의 둥지가 되었고 본당 사제는 지도신부가 되었으니 남녀청년들이 그곳을 메웠다. 마산과 진해와 창원을 잇는 접점 지역에서 옹달샘처럼 목마른 사람들이 찾아들게 했다.

 

 

신자들이 편안한 성당

 

사무실 앞 게시판에 큼직하게 적힌 ‘웃고 인사하고 칭찬하자’와 같이 김용민 신부는 신자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기를 빈다. 지난해 부임하여 주일미사도 한 대 더 편성하고, 월요일 오전 미사도 마련했다. 거리두기로 침체된 신앙생활이 조금이나마 회복되기를 바랐다. 여건을 만들어 놓고 자율적으로 참여하며 마음을 다하여 같이 걸어가자고 사목지침을 정했다. 작은 성당이니 초기교회처럼 사제든 신자든 함께 참여하여 청소도 하고 음식도 나누는 정이 담긴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작아도 예수님의 사랑을 더 실천할 수 있으면 된다. 

 

[2022년 9월 11일(다해) 연중 제24주일 가톨릭마산 4-5면, 황광지 가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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