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5월 13일(목)-부활 5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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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5-13 ㅣ No.653

부활 제 5 주간 목요일

 

        사도 15,7-21        요한 15,9-11

    2004. 5. 13. 퇴계원

주제 : 하느님의 선택과 사람의 응답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듣는 소리에 우리는 모두 응답하지 않습니다.  대답을 해야 할 소리가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대답을 해서 얻을 이익이 없다는 판단이 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소리에 이렇게 판단하고 움직인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소리를 어떻게 듣는지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소리를 직접 들은 사람은 없습니다.  구약성서에는 모세가 하느님과 직접 대화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눈에 보이는 확실성을 중시하는 요즘 세상에서 그 증거를 보여주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들은 사람은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모습을 볼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게 됐을까요?  정말 큰 수수께끼입니다.  자연의 소리를 통해서 그리고 자연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교회의 가르침에서는 말합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우리가 그런 소리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고 하거나 부정한다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없게 됩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는 인간이 전한 복음을 과연 어디까지 하느님의 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이야기를 다뤘다고 나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고집을 앞세워 인간의 생각으로 자꾸만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것은 막으려고 했다는 소리와 같습니다.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지키기 힘들었던 것들을 새롭게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말자고 결론을 맺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행동 가운데서 나타납니다.  내가 잘못된 행동을 통하여 그 가르침을 왜곡되게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나 때문에 하느님은 서글퍼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올바로 움직이는 행동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다면 그 일로 우리도 하느님께서 준비하시는 행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내가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사랑 안에 머물려고 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도 같은 자격이 있음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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