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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봉헌생활의 기쁨: 수도생활 참 힘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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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03 ㅣ No.533

[봉헌생활의 기쁨] 수도생활 참 힘들지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를 만날 때 으레 던지는 질문이 있다. ‘나이 또는 출신지역’에 대한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 수도자들도 교우들에게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신부님(수사님)은 왜 수도원에 들어갔어요?” “신부님(수사님)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더 재미있는 사실은 종종 수도자들의 대답과는 상관없이 교우들 스스로 결론까지 내린다는 점이다. “신부님(수사님), 수도생활 참 힘들지요!”

이러한 질문에 우리 수도자들은 대개 미소로 답을 대신하지만, 가정과 사회에서 고생하시는 그분들에게 오히려 과분한 위로를 받는 것 같아 쑥스러울 뿐 아니라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그러나 교우들의 이러한 질문은 봉헌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물음이다. 가장 근본적인 화두이기에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그 답을 얻고자 하는데 소홀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나의 하느님은 고무풍선의 하느님

수도원에 들어간 이유가 거창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느님께서 나를 불러주셨고, 그분께서 내 응답을 허락하셨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나는 똑똑한 사람도, 그렇게 지혜로운 사람도 아니다. 여러 가지로 모자람이 많은 사람임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나를 하느님께서 키우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다.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더없는 사랑,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완벽하게 보여주셨던 그 사랑을 당신의 도구인 나를 통해서도 나누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하느님께서 먼저 불러주시고 축성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고무풍선의 모습으로 다가오셨다. 그래서 누군가가 “신부님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요?”라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한다. “나의 하느님은 고무풍선의 하느님이십니다.”

고무풍선은 단번에 불면 터져버린다. 그러나 조금씩 몇 번을 반복해 불면 탄력이 생기면서 크게 부풀어 오른다. 마찬가지로 고무풍선의 하느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한 번 만에 들어주지 않으셨다. 나의 청이 내 능력과 성숙도보다 훨씬 컸는지도 모른다. 그 때문인지 하느님께서는 내가 당신께 맞갖은 고무풍선이 되도록 희망과 좌절, 실패를 거듭하게 하시는 가운데 나를 키우시며 수도생활로 이끌어주셨다.


신학교 낙방 세 번을 딛고

나는 세 번의 신학교 낙방과 성소의 길 7년이라는 긴 여정 안에서 아버지를 통해 고무풍선의 하느님을 처음 만났다. 세 번째 낙방 통지서를 받았던 그 추운 겨울날이 아직도 또렷이 떠오른다. 너무나 화가 치밀고 하느님이 원망스러운 날이었다. 당시의 내 생각에 나보다 공부 못하는 친구들이 보란 듯이 신학교에 합격했기에 하느님이 더욱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결국 사제성소는 더 이상 나의 길이 아니라고 여기며 신학교를 포기하고 말았다.

삼세판이 아닌가! 세 번의 도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나의 지지자였던 가족 대부분도 절대적인 반대자로 돌아섰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바로 아버지께서는 다정히 다가오셔서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마태오! 이 아버지는 아직 힘이 있단다. 나는 네가 어느 길을 선택하든지 지원할 힘이 있다는 말이야. 사회에 진출을 하거나 한 번 더 신학교 입학을 시도한다 해도 이 아버지는 너를 지지하마.”

그렇지만 이미 좌절할 대로 좌절한 나에게는 그 누구의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고무풍선의 하느님께서는 이튿날 새벽에 나의 고무풍선에 다시 한 번 바람을 넣어주셨다. 저녁 늦게 들어온 아들을 위해 부모님은 자신들의 이부자리 중간에 내 자리를 마련해 두셨다.

나는 새벽 네 시쯤 눈을 떴다. 캄캄한 어둠 속에 벽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시커먼 물체가 아른거렸다.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나는 묵직한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크나큰 충격을 받고 하염없는 눈물을 소리 없이 쏟았다.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 하늘나라에 기도를 저축하고 계시고 그 저축해 놓은 기도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 듯한 풍요로움이 내 가슴을 채웠다. 그와 동시에 하느님의 사랑이 뜨겁게 느껴졌다. 고무풍선의 하느님께서 내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주셨다. 이 힘은 특정한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갇힌 나를 해방시켜 주셨다.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에 대한 이 체험은 지금도 수도생활의 기쁨을 찾는 근본적인 힘이 되고 있다. 고무풍선의 하느님께서는 아버지를 통해 작은 해방의 은총을 주셨고, 수도원의 일상생활에서도 끊임없이 바람을 뺏다 불었다 하시며 나를 해방의 삶으로 키워주신다. 이 해방은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 중심으로 나를 이끌고 있다.


하느님께 자신을 구속시켜야

봉헌생활은 자신의 삶 전체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데에서 참된 자유를 얻게 되고, 그 자유를 통해서만 봉헌생활의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주어진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주님께 구속되는 삶이 결국 참된 자유의 삶이라는 사실을 수도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배우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사제 · 수도자 · 평신도라는 신분이 존재의 의미나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깨우쳐 주셨다. 곧,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께서 나를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깨닫고, 그분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 참행복임을 알게 해주셨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수도생활의 행복과 기쁨은 신자들의 혼인생활의 기쁨과 특별히 구분되는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각자의 소중한 길로 이끄신다. 이른바 ‘명품’을 몸에 걸친 채 수십 개국을 여행한다 해도 참된 자유를 느끼지 못하며 불평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좁은 병실에서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 힘든 삶 속에서도 참된 자유와 행복을 체험하기도 한다. 바로 하느님께 자신을 구속시키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이웃을 위해 봉헌하는 사람들이다.


소임이 기쁨의 기준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는 장소와 시간 그리고 상황이 결코 넘지 못할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 자유와 행복은 시간과 장소, 상황을 가리지 않고 주어진다.

수도원의 내 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곧, 하느님께서 주시는 내 소임에서도 자기중심적 삶에서의 해방이 필요하다.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일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데에 참된 기쁨과 행복이 있음을 나는 배우고 있다. 소임의 종류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 소임에 따라 행복이 좌우된다면 그야말로 행복과 불행이 반복되는 불구의 삶일 뿐이다. 어떤 소임을 맡고 싶다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자세는 봉헌생활의 기쁨과 행복에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소임은 단지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는데 필요한 도구일 뿐이다. 나는 내 자신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나누시는 다양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며 노력할 뿐이다. 내 소임이 문지기든 설거지든 작은 병실에 있든 수많은 사람에게 강의를 하든,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그 사실 자체에 참된 의미가 있으며 나를 행복하게 한다.
 

소박한 일상생활에서 얻는 행복

나도 때로는 언젠가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피정자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주는 일을 꿈꾸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 나에게 주어진, 너무나 버겁고 과분한 직무이지만 한 수도회 책임자로서 최선을 다하며 하느님의 도구가 되려고 힘쓰고 있다. 고무풍선의 하느님이신 나의 하느님께서 여러 가지로 모자라는 나를 선택하셨듯이, 어떤 소임에서도 당신께서 나를 키우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내 수도생활의 기쁨과 행복은 거창한 일의 성취에서보다 작고 소박한 일상생활에서 일어난다. 곧,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작은 일에서 그분을 만나고, 그분의 구속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것에서 봉헌생활의 참된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 박종환 마태오 - 예수성심전교수도회 신부. 1999년에 사제품을 받고 현재 예수성심전교수도회 한국 지구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 남자 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상임위원이기도 하다.

[경향잡지, 2015년 7월호, 글 박종환 · 그림 하삼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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