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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봉헌 생활의 해, 완전한 사랑17: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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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27 ㅣ No.532

[봉헌 생활의 해 - 완전한 사랑] (17)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타 종교인과 대화하고 가난한 이웃 손 잡아주고



지역 종교인들의 종교 간 대화 모임의 장으로 제공되고 있는 대전 위로의 샘터.


“교무님, 수녀님 어서들 오세요!”

“오늘 처음 오신 목사님이세요. 다들 인사를 나누시죠?”

한바탕 왁자지껄한 인사와 함께 담소가 오간다. 강 디에고(Diego Cazzolato) 신부는 이들 가운데서도 단연 눈에 띈다. 특유의 활달한 목소리와 웃음소리, 현란한 손짓과 몸동작이 인상적이다.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 좋은’ 미소는 대전 유성구 갑동로의 한적한 수도원에 들어서는 이들을 심리적으로 무장해제시킨다. 종교 간 대화 모임의 리더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날 만남은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대전 위로의 샘터(원장 강 디에고 신부)에서 마련한 성직자, 수도자들의 종교 간 대화 모임. 매달 셋째 주 금요일 오후 2시에 열리는 모임엔 꼰솔라따회 강 디에고ㆍ안 라우렌시오 신부를 비롯해 한울침례교회 담임 박규용 목사, 원불교 유성교당 민성효 교무, 대전교구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 위원회 위원장 정우석 신부, 성체 선교 클라라 수녀회 박영숙(아기 예수의 데레사) 수녀, 예수 수도회 이요세피나ㆍ심명식(체칠리아) 수녀 등이 함께한다.

이날 모임 주제는 ‘가톨릭 전례’. 강 디에고 신부는 가톨릭 교회에서 전례란 무엇인지, 미사 안에서 왜 성체성사를 거행하는지, 성체성사와 더불어 다른 성사들은 어떤 게 있는지를 상세히 풀이해준다.

당연히 질문이 잇따른다. “주님의 날만 미사를 하나요? 평일엔 미사를 안 하나요?”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한 미사는 가능합니까?” “고해성사는 사제라면 누구한테나 받을 수 있나요?” “삼위일체는 아버지(성부)와 아들(성자), 성령이라고 하셨는데, 어머니와 딸은 없는지요.” “고해성사와 상담은 어떻게 다른지?”… 기초적인 질문에서 핵심적인 질문까지 다양하게 쏟아진다.

박규용 목사는 “종교 간 대화와 교회 일치를 지향하는 소모임이 많아지다 보면 종교인들이 어떻게 화합하며 지역 사회에 이바지할지 다양한 실천 방안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종교 간 대화 모임은 성직자, 수도자 모임뿐 아니라 매달 첫째 주 수요일 오후 3시 평신도 모임도 열리고 있으며, 각 종교 시설을 방문하는 기회도 마련되고 있다.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는 종교 간 대화 운동에 특히 힘을 쏟고 있지만, 1988년 1월 20일 한국에 처음 파견됐을 땐 빈민 사도직에도 주력했다. 인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에 들어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공부방을 열어 가르쳤고, 1999년 재개발로 이 동네가 사라지자 서울 구룡마을에서 6년 동안 살기도 했다.

이후 1999년 경기 부천에 ‘위로의 샘터’를 세워 종교 간 대화와 교회 일치 운동을 시작했다. 매달 신앙교육 모임과 영성 모임, 종교 간 대화 모임 등을 열어 타 종교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친교를 다졌다. 2011년 초 위로의 샘터가 재개발로 헐리게 되자 대전으로 옮겨 2012년 10월부터 그 맥을 잇고 있다.

아울러 2007년 말엔 경기 동두천에 분원을 세워 이주민과 북한이탈주민 사도직에도 힘을 쏟고 있다.

강 디에고 신부는 “자신의 신앙이나 종교적 체험을 나눔으로써 종교인들 간 화합과 소통을 이루고, 나아가 세상을 위해 종교인들이 함께 움직여야 할 사회 현안에 서로 머리를 맞대는 기회가 되고 있다”며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생각과 생각이 만나며, 종교와 종교가 만나는 대화야말로 예수님께서 평화를 지상에 실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는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의 카리스마(은사)는 ‘선교’이다. 선교야말로 이 공동체를 이끌어가며 존재 가치를 부여한다. 꼰솔라따 모든 회원은 선교사로서 형제적 일치 안에서 동등한 삶을 살아간다. 이 ‘형제적 일치성’이야말로 꼰솔라따의 생명과 영혼이다.

이탈리아어 ‘꼰솔라따’(Consolata)는 우리말로 ‘위로자’를 뜻한다. 아울러 이 말은 ‘위로자이신 성모’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꼰솔라따는 성모 마리아를 선교 활동의 모범으로 따르는 공동체이다. 꼰솔라따 회원들은 “먼저 성인이 되고 나서 선교사가 되라”는 설립자인 복자 요셉 알라마노(1851∼1926, 사진) 신부의 가르침에 따라 위로자이신 성모를 본받아 선교 성소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

교회와 세상 안에서 ‘민족들의 복음화’(Missio Ad Gentes)를 모토로 하는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영성은 △ 하느님과 하느님 뜻을 찾고 △ 복음화를 위해 일생을 봉헌하며 △ 봉헌생활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 말씀을 중심으로 살며 △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고 △ 성체적 특성을 드러내며 △ 가족 같은 공동체를 이루는 데 있다.

꼰솔라따회는 1901년 1월 29일 사도좌 인준을 받았다. 설립 직후 1902년 아프리카 케냐에 사제 2명과 수사 2명을 파견하면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24개국에서 1000여 명의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다.

1988년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한국에 파견된 꼰솔라따 선교사들은 빈민과 종교 간 대화, 이주민 사도직에 헌신하고 있다. 현재 경기 부천에 한국지부 본원을 두고 있으며, 지부장 노 베드로(Louro Pedro) 신부 등 10명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한국인 선교 사제만 6명을 배출했다.

[평화신문, 2015년 7월 26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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