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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화산책: 가톨릭 문학 (1) 중세 어둠을 밝힌 찬란한 문학, 단테의 신생과 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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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2-23 ㅣ No.151

[가톨릭 문화산책] <5> 가톨릭 문학 (1) 중세 어둠을 밝힌 찬란한 문학 - 단테의 '신생'과 '신곡'


악을 물리친 사랑의 실천, 구원의 지름길로 안내

 

 

이탈리아의 위대한 시인이자 중세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단테는 「신생」과 「신곡」을 썼다. 서정시를 덧붙인 산문 「신생」에서 단테는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과정을 설명한 뒤 그녀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해 열렬히 찬미한다. 「신곡」은 정치적 이유로 피렌체에서 추방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운명과 방황과 구원의 과정을 가톨릭적 시각으로 그린 작품이다.

 

헨리 홀리데이가 그린 '단테와 베아트리체', 1883년, 리버풀 머지사이드 미술관 소장.

 

 

단테 등장의 역사적 배경 

 

피렌체는 단테가 태어난 1265년 무렵, 일종의 도시국가 형태를 갖추고 있었고 상업이 발달해 해외무역의 폭을 넓혀가고 있었다. 35살 때인 1300년, 그는 피렌체를 다스리는 6인의 행정위원(지금의 장관) 중 한 사람이었다. 이탈리아의 두 세력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전개할 때 마침 단테는 사절단의 일원으로 피렌체를 떠나 있었다. 그 덕에 목숨을 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네리 파의 승리로 싸움이 끝나 그는 고향 피렌체로 돌아갈 수 없었다. 

 

네리 파는 조국을 떠나 있던 단테에게 공금횡령죄를 뒤집어씌우는 등 벌을 내린다. 그리고 빨리 귀국해 법원에 출두하라는 명령까지 내린다. 단테는 그 처분이 부당하다고 항의하는 서한을 보낸 뒤, 법원 출두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재판부는 단테에게 영구추방령과 전 재산 몰수라는 엄벌을 추가로 내린다. 자연히 1302년부터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망명길에 오르게 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는 것뿐,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신곡」이다. 

 

이 도시 저 마을을 방랑하며 그는 필생의 대작 「신곡」을 구상하고 1307년(42살)부터 집필을 시작, 13년에 걸쳐 완성한 뒤 곧바로 숨을 거둔다.

 

 

베아트리체와 짧고 슬펐던 사랑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외롭게 자라던 소년 단테는 9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이웃 마을의 지체 높은 귀족 집안 잔치에 초대를 받아 간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와 첫 만남의 순간을 1291년에 펴낸 「신생」에서 잘 묘사하고 있다. 「신생」은 자전적 내용인데, 주로 베아트리체와 사랑의 전말을 산문과 운문을 섞어 쓴 것이다. 베아트리체는 눈에 띄게 예쁜 소녀였던가 보다. 기품 있어 보이는 고상한 자주색으로 테두리를 한 옷을 입은 소녀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니 단테는 조숙한 소년이었음이 틀림없다. 한 살 아래인 베아트리체와 만나는 순간, 소년 단테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전율을 느끼며 소녀의 모습에 매료된 것이다. 이날 이후 단테는 소녀와 마주칠 것을 기대하며 길을 걸었지만 좀체 만날 수 없었다. 

 

단테는 아버지의 명으로 산타크로체 수도원의 기숙학교에 가게 되는데 특히 수사학에 관심을 쏟게 된다. 단테는 라틴어 외에 프랑스어와 프로방스어에 정통했고 춤과 노래, 그림 같은 예술 외에 법률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이것은 뒷날 「신곡」 집필에 큰 도움을 준다. 그는 로마시대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존경해 그의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꿈을 키워간다. 수도원에서의 공부를 마친 시점은 1282년이었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공부는 이것으로 끝"이라면서 고향 피렌체로 향했다. 

 

고향에서 지낸 단테는 어느 날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가에 두 여인과 함께 산책 나온 베아트리체를 우연히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시간은 오후 3시경이었다. 이날 상황은 「신생」을 보면 자세히 묘사돼 있는데, 이 재회 상황은 대단히 유명해 헨리 홀리데이란 화가가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다. 이날 이후 단테는 상사병을 심하게 앓았다. 단테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새어머니는 결혼을 시키면 기운을 차리리라 생각하고는 집안 어른들을 설득해 단테의 결혼을 서두른다. 

 

단테는 12살 때 이미 젬마 도나티와 혼인 약속이 돼 있었다. 그 시절 이탈리아에서는 집안 어른끼리 약속하면 자식은 그것에 따라야지, 연애해서 결혼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젬마는 통상적인 지참금의 2배나 되는 돈을 단테의 집으로 보냈다. 일이 여기까지 진행됐기에 단테는 차마 파혼할 수 없었다. 만약 단테가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저는 젬마와 결혼할 수 없습니다"하고 말할 경우, 큰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젬마의 아버지는 단테 집안의 어른에게 결투를 신청할 수도 있었다. 집안 어른들이 나이가 얼추 맞는 단테와 젬마를 약혼시킨 것은 당시 관례로 보면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 

 

베아트리체와 강가에서 재회하고 나서 2년 뒤, 단테는 젬마와 결혼한다. 두 사람 사이에 4명의 자식이 태어나지만 단테는 자신의 어떤 작품에서도 아내의 이름을 거론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결혼생활이 위기에까지 이르거나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운명의 여신은 단테의 소망에 또다시 어깃장을 놓는다. 베아트리체 역시 집안에서 정해놓은 사람과 1287년 결혼을 한 것이다. 운명의 여신은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하더니 심술을 한 번 더 부린다. 베아트리체가 24살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단테가 16년 동안 남몰래 쌓아올린 간절한 사랑의 탑은 그날로 산산이 무너져 내린다. 「신생」에서는 베아트리체가 세 번째 만남 이후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는 것으로 처리한다.

 

단테는 몇 번 쳐다보기만 하고서 베아트리체를 그렇게 사랑했던 것일까? 두 사람 사이에 다소나마 '교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단테의 전기 「단테의 삶」을 쓴 보카치오는 이 점을 부인, 별다른 교제가 없었다고 했다. 아마도 서로 깊이 사귀면서 사랑을 나눴더라면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구원의 여성'으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가를 잘 정리해 말한 상티스는 단테에게서 베아트리체는 "미, 덕, 지혜의 상징이고 영원한 여성의 이미지를 가진 아름답고 새로운 천사이자 아직 인간화되지 않은 신성을 지녔으며 실현되지 않은 이성이었다"고 했다.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에 있는 도메니코 디 미첼리노의 그림 '단테와 신곡'. 피렌체 시민들이 1465년 단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미첼리노에게 주문해 그린 작품.

 

 

「신곡」에 대한 후세의 평가 

 

베아트리체의 영상은 「신곡」에서 천사로 구현된다. 「신곡」은 모두 100곡, 1만 4233행으로 된 방대한 시다. 줄거리는 단테가 부활절을 맞아 지옥ㆍ연옥ㆍ천국을 일주일 동안 여행하는 도중에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쓴 여행기 형식이다. 숲 속에서 단테가 헤매고 있을 때 현자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단테를 지옥과 연옥으로 안내해 구원해줄 것을 약속하는데, 이 베르길리우스는 사실 베아트리체의 간청으로 타락한 단테를 구원하러 온 것이다. 천국 편의 안내자는 베아트리체다. 단테는 자신이 타락한 생활과 죽음의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늘나라의 베아트리체가 구원의 손길을 뻗쳐준 덕분이라고 생각해 「신곡」을 이와 같은 형식으로 썼다. 

 

단테는 1321년 라벤나의 영주인 노벨로의 보호를 받으며 「신곡」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한다. 단테는 노벨로의 부탁을 받고 베네치아에 사절로 갔다가 돌아오던 중에 말라리아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라벤나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안장돼 있다. 첫사랑을 만났던 고향 피렌체에는 끝내 가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이다. 

 

영국 시인 엘리엇은 "근대 세계는 셰익스피어와 단테가 나눠 가졌다. 제3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중세와 르네상스기 문인 중 단테에 필적할 사람은 셰익스피어밖에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한 바 있다. 공산주의혁명 이론가 엥겔스도 종교적 상상력의 산물인 「신곡」의 가치를 인정, "봉건적 중세기의 종결과 근대적 자본주의의 단초는 한 위대한 인물을 표지로 삼을 수 있다. 그 인물이 바로 이탈리아의 단테다. 그는 중세기 최후의 시인인 동시에 신시대 최초의 시인이다"는 최고의 찬사를 바친다. 

 

「신곡」의 겉은 애절하고도 처절한 사랑이야기지만 속은 좀 다르다.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자들의 죄는 크게 나눠 무절제, 폭력, 사기다. 지상에서 권력을 갖고서 그것을 휘두르며 남을 괴롭힌 자는 저승에서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쓴 부분이기에 사실 지옥 편은 단테 자신의 한풀이 성격이 강했다.

 

한편 연옥은 희망을 갖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자 죄를 정화하는 영혼들 세계다. 하느님이 언젠가는 구원해줄 것이라 믿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다. 연옥 편의 의의는 인간이 자유의지 소유자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도 있지만, 진심으로 회개하면 저승에 있더라도 하느님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 것이라고 단테는 주장했다.

 

천국에는 어떤 사람들이 가는가. 단테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서 하느님 나라에 들기를 늘 소망하며, 살아 있을 때 사랑을 실천한 이라면 광명의 세계에서 영원하고도 완전한 행복을 누릴 것이라는 하느님 약속을 상기시켰다. 그런데 조건없는 믿음이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니라 악과의 투쟁을 통해 승리한 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이라고 해 인간의 선의지를 강조했다. 

 

기도만 열심히 한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바로 그것을 알려주는 이가 베아트리체다. 사랑의 실천, 「신생」과 「신곡」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망명지를 떠돈 외로운 정객 단테는 끊임없이 젊은 날의 사랑 베아트리체를 떠올렸고, 그녀를 통해 악을 물리치는 선의 힘을 보여줘 두 작품을 불후의 명작이 되게 했다. 

 

「신곡」이 700년을 넘어 지금도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허황한 저승 여행담이 아니라 사랑과 구원에 대한 확실한 인식 아래 쓰였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13년 2월 24일, 이승하 교수(프란치스코, 중앙대 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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