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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교좌 성당: 메리놀회의 건축 유산을 승계한, 청주교구 주교좌 내덕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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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8-17 ㅣ No.876

한국의 주교좌 성당 (8) 메리놀회의 건축 유산을 승계한, 청주교구 주교좌 내덕동 성당

 

 

한국 근대 성당 건축사의 특징은 전교 단체의 선교 이념이 건축 양식을 결정하는 한 요인이었다는 점이다. 파리 외방전교회 관할 성당은 고딕 양식을, 독일 성 베네딕도 수도회는 로마네스크 양식, 아일랜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는 영국식 고딕 양식을 따랐다. 그러나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는 특정한 양식을 선택하는 대신 동서양이 절충된 양식을 표방하였다.1)

 

청주교구 메리놀회 관할 성당의 건축 역사는 초대 청주교구장 파디(J. Pardy, 巴智, 야고보)2) 주교의 충북지역 활동 시기에 이루어졌다. 자신을 ‘건설 주교’라 부르고 건설이 ‘취미’라고 할 만큼3) 성당 · 공소 · 사제관 건축에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에 재임 기간(1958~1969년)에 18개의 성당을 건축하였다.4) 파디 주교의 왕성한 ‘건설’ 뒤에는 박태봉(朴泰鳳, 요셉)이 있었다. 평양 인근 마을 출신으로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한으로 피난 와서 파디 주교의 ‘협력자이자 친구’로서, 성당을 비롯해 주교가 주도한 모든 건축에 ‘전문가’로서 헌신했다.6)

 

청주교구 주교좌 내덕동 성당(주보 : 성가정)7)의 건축적 특징은 멀리는 미국 메리놀회 본부(Maryknall Center, 1932년 준공)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가깝게는 일제 강점기 메리놀회가 관할한 평양교구의 성당(1923~1942년), 특히 평양교구청 부속 성당의 건축적 특징을 그 전례로 삼고 있다8)

 

김정신 교수는 메리놀회 선교사들이 1960년대 초 충북지역에서 주도한 성당 건축의 특징으로 ① 라틴 십자형의 평면, ② 중국풍의 지붕, ③ 미국 메리놀회 본부 종탑을 따르는 종탑, ④ 자유로운 공간 구성과 융통성 있는 공간 사용 ⑤ 외부 공간의 배치 등을 꼽았다.9) 청주교구에 메리놀회가 건축한 성당 중 이러한 특징을 모두 갖춘 성당은 내덕동뿐이다. 특히 중국풍의 지붕과 메리놀회 본부의 종탑을 따른 측면 배치는 내덕동 성당에서만 나타나는데, ‘탑에 지붕을 얹은 동양식 종탑(pagoda-roofed tower)’은 오늘날에도 메리놀회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한국 성당 건축사에서 ‘메리놀회 본부를 모티브로 평양교구 절충식 성당의 유산을 물려받은 내덕동 성당’의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평양교구에서 시작된 메리놀회의 한·양(韓洋) 절충식 성당 건축의 전통이 일제 강점기에는 평양에서, 해방 후에는 청주에서 전교 활동을 펼친 파디 주교를 매개로 재시도될 수 있었다는 점과, 파디 주교와 함께 박태봉이 건축 전문가로서 가교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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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명선 · 이정우, 「메리놀회 관할 청주교구 내덕동 주교좌성당의 건축적 특징」, 『한국산학기술학회 논문지』 제21권 9호, 한국산학기술학회, 2020.

 

2) 1958년 6월 23일 청주 대목구가 설정되면서 7월 4일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

 

3) 「카메라 焦点 - 司牧과 建設」, 『가톨릭신문』 제246호, 1960년 9월 18일 자, 1면.

 

4) 메리놀회가 청주교구를 관할한 시기(1953~1969년)에 직접 건축한 성당은, 베네딕도회의 알빈 슈미트(Alwin Schmid) 신부가 설계한 보은 성당과 황간 성당을 제외한 16개이다(김명선 · 이정우, 앞의 글).

 

5) 최선혜, 「한국 천주교회 전교회장의 활동과 의의 : 1923~1950 - 평양교구 유급 전교회장을 중심으로」, 『교회사 연구』 51, 2017, 103쪽.

 

6) 정안빈(R.M. Lilly), Mission in the South: A Korea Region History 1942-2002, 메리놀회 한국지부, 2002 참조.

 

7) 내덕동(內德洞) 성당은 1960년 8월 22일 정초식을 하고 1961년 10월 11일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듬해 3월 10일 교계제도가 설정됨에 따라 주교좌 성당으로 격상했다. 재정적 · 기술적 뒷받침이 있었다는 점에서 당시 청주교구의 다른 메리놀회 성당들과 차별화된다. 이는 제2대 주임 반예문(R. Sullivan, 라이문도) 신부가 부모에게서 받은 기부금으로 거액의 공사비를 확보할 수 있어 가능했다.

 

8) 김명선 · 이정우, 앞의 글.

 

9) 김정신, 「한국의 성당 건축(10) - 내덕동 성당」, 『건축문화』 1985년 4월호, 102쪽.

 

[교회와 역사, 2022년 8월호, 이오주은 미카엘라(한국교회사연구소 미디어콘텐츠사업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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