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미술ㅣ교회건축

본당순례: 지역민과 함께 문화와 예술로 인간미 넘치는 창녕성당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8-14 ㅣ No.875

[본당순례] 지역민과 함께 문화와 예술로 인간미 넘치는 창녕성당

 

 

예술미 넘치는 창녕본당

 

열대야가 이어지는 칠월의 여름밤에 본당순례를 떠난다. 이번에는 옛 문화재가 즐비한 비사벌의 창녕본당이다. 성당 입구에서부터 붉은 벽돌로 지어진 쌍 종탑이 인상적이다. 근대식 건물이 멋있다고 여기는데 시선은 성모동굴로 향한다. 바윗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지었는데 손길이 많이 간 느낌이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가 본당주보성인인지라 성모동굴은 더욱 특별하게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하 베로니카 전 사무장의 말에 의하면, 한 시간 반 거리의 자하골에서 교우들이 돌을 직접 고르고 리어카에 실어와 조성하였다고 한다. 1964년 그 당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하면서도 깊은 신심과 열정으로 가능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성모동굴은 다른 건물들로부터 독립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며 영성 충만한 공간으로서 본당의 보물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예술미도 일조했을 것이다. 성모동굴 아래에 위치한 십자가의 길에는 한 처 한 처마다 화가인 최재상 마티아 주임 신부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개인전을 9회째 열어온 최 신부는 본당의 곳곳에 아름다운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교우들의 영성 생활을 돕고 있다. 윤 안젤라 수녀는 성당 안의 감실 또한 둥근 등불 모양으로써 교우들이 전례에 집중하게끔 해 준다고 했다. 성당 곳곳에 자리한 부속물들의 그 형태와 색감이 예사롭지 않았다.

 

1949년에 본당으로 승격한 창녕본당은 당연히 지역의 중심이지만 같은 군의 영산과 남지 또한 본당이다. 최 신부는 이 또한 창녕지역에 내려진 축복이라 보았다. 일찍이 성 남종삼 요한의 부인과 세 자녀가 귀양 와 10년간 살았던 곳이 창녕이다. 2009년에 본당 설립 60주년을 맞은 창녕본당은 오랜 역사와 더불어 곳곳에 예술적 요소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본당을 반석 위에 올린 열정의 인물들

 

사제서품 이후 첫 부임지가 창녕본당이었던 2대 정하권 플로리아노 신부는 많은 일화를 남겼다. 주변에 흔치 않은 종탑이 두 개인 성당 건축에는 정 신부의 남다른 철학과 실행력이 있었다. 완공이 되기 전에 스위스 유학을 떠났던 그였지만 성당 건립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고 한다. 

 

김정식 암브로시오 사목회장의 말에 의하면, 전쟁 이후의 어려운 시절에 정 신부는 군청을 비롯한 관공서에 강연을 자주 다녔다고 한다. 검은 수단을 입고 나타난 모습이 낯설었지만 대중들은 정 신부의 언변과 지식에 매우 감명을 받았다. 이후 세례 받는 이들이 급증했고 교회의 위상과 영향력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하권 신부가 한 초청 연설만 600여 회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시절 20대 청년이었던 김상수 그레고리오 사목회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성당에서 밀가루를 비롯한 구호물자를 나눠주던 그 시절, 대단히 왕성한 활동을 하며 창녕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 살아있는 인물사전이라고 불렸다. 그의 집에는 많은 손님이 드나들었으며, 성산면과 같이 멀리서 온 신자들은 미사를 보고 그의 집에 하룻밤 묵어가는 식객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아들인 김인 루도비코도 삼성그룹의 사장으로서 창녕의 평생대학에 매년 천만 원씩 8년간 후원하여 부친의 행적을 이어갔다.

 

1974년에 조성된 성당묘지 또한 자랑거리이다. 주임 신부 주도로 이루어진 다른 본당의 사례와는 달리 신자들의 자발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부지를 선정하고 매입하는 데 많은 돈이 필요한 어려움을 예상할 수 있지만, 앞날을 내다보는 당시 교우들의 의식과 열정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최재상 마티아 신부는 본당에서 걸어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성당묘지에 직접 걸어가곤 하는데, 이곳의 십자가의 길 14처에 그려진 그림도 직접 그렸다. 지금껏 교우들의 장례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고 있다. 

 

 

평생교육을 통한 사랑의 실천

 

창녕본당이 지역의 평생대학 사업을 시작한 것이 지역 1호라고 한다. 노인들에 대한 관심으로써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서적으로 외로운 이웃 어른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한국사회가 처한 사회구조적인 어려움을 교회가 앞장서 지역민과 함께하고자 한 것이다. 2011년 교장으로 퇴임한 홍 마리안나의 헌신과 노력이 컸다. 김인 루도비코의 도움으로 더욱 활기를 띄었던 평생교육 사업이 최근에는 코로나로 주춤한 상황이다. 그래도 주임 신부의 소망은 확고했다. 본당의 한 공간을 마련하여 노인들을 위해 돌봄 프로그램과 평생교육을 제공하고 미사참례와 신앙생활까지 돕는 터전을 마련해 주고 싶어 했다. 선행조건으로서 부지매입을 비롯한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지만 굴하지 않는 창녕본당만의 내력과 가치를 엿볼 수 있었다. 머지않아 그 바람이 현실로 다가오리라는 지지를 보낸다.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힐링 본당이 되기를 사제와 신자들은 희망하고 있다. 화왕산은 비록 군립공원이지만 전국에서 사시사철 모여드는 등산객들이 많다. 그들이 하산하는 길에 들를 수 있는 쉼터 같은 성당이 되었으면 좋겠단다. 현재 사제관과 강당이 있는 띠누리집 1호에 이어 띠누리집 2호를 좀 더 정비하여, 카페와 선물의 집 등 다양한 공간이 자리 잡길 원했다. 창녕성당이 1950년대에 지어진 대표건물로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된다면 그러한 역할을 거뜬히 해낼 것으로 보았다. 지역민과 함께하는 가치와 철학을 기반으로 문화와 생활의 터전이 되고자 하는 창녕본당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2022년 8월 14일(다해) 연중 제20주일 가톨릭마산 4-5면, 이준호 라파엘]



24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