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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치민: 찍기 고해성사를 하며 신앙을 키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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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8-22 ㅣ No.178

[해외 한인 공동체 소식] 베트남 호치민 - ‘찍기 고해성사’를 하며 신앙을 키우다

 

 

파견성가를 부르고 부활 삼종기도까지 마친 뒤에 4층 성당을 내려오며 ‘오늘은 무슨 먹을거리가 나와 있으려나?’ 고개를 기웃거린다. 지난주에는 잘 말린 고사리가 탐이 났는데 이번 주에는 김밥인가 보다. 참기름 냄새가 고소한 것을 보니.

 

주일마다 성당 건물에서는 작은 먹을거리 장터가 열린다. 부지런한 구역분과가 매주 성전건립기금을 모금하려고 마련한 반짝 시장이다. 요즘 호치민 한인 공동체는 이렇게 성전건립기금 마련에 모든 공동체의 역량을 모으고 있다.

 

 

신앙 모임도 허가받아야


베트남은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사회주의 국가다. 미사도 여러 사람이 모이는 만큼 매번 관공서에 집회신고를 해야 하고, 허가된 장소가 아니면 많은 제약이 따른다.

 

우리 공동체는 호치민시 떤빈구의 레반시 거리에 있는 브엉쏘아이 성당(왼쪽 사진) 부속건물에 세 들어 살고 있다. 셋방살이의 고달픔보다 더 큰 어려움은 장소의 협소함이다. 미사를 봉헌하는 성전은 있지만, 그밖에 주일학교, 레지오 마리애, 성서백주간 모임 등을 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이를 보완하려고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푸미흥’이라는 신흥 주거지역에 큰 주택을 하나 빌려 사제관 겸 교육관으로 4년여 동안 사용하였다. 주변에 우리 신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평일미사, 사목회, 주일학교, 첫영성체 교리 등 여러모로 알차게 사용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현지 경찰이 들이닥쳐 허가받지 않으면 모임을 할 수 없다고 통고하였다. 그 후 2년 가까이 베트남 신부님을 통해 베트남 정부 종교성에 탄원도 하고 여러 방법을 시도하였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고, 급기야 올해에는 교육관을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베트남 남부 제1의 경제도시 호치민에 위치한 한인 공동체는 1995년 베트남 가톨릭신문사 소성당에서 첫 주일미사를 봉헌했다. 베트남에 한국인들의 발걸음이 그다지 많지 않던 때, 몇몇 신자들이 모여 모임을 갖다가 당시 한마음한몸운동 본부장 오태순 신부님의 방문을 계기로, 베트남 가톨릭신문사의 칸 베드로 신부님과 25명의 신자들이 미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이후 칸 신부님이 한국 신자들을 위해 미사를 집전해 주셨는데 영어도 아닌 베트남어로 드리는 미사여서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성체를 모시고 매주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기쁨이었다. 미사 장소도 성전이 아니라 미사 때에만 제대를 갖추어놓은 신문사 일반 강당이었다.

 

 

찍기 고해성사

 

베트남 대학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들의 도움으로 기도문 책자도 만들고, 복사도 세우는 등 조금씩 체계가 잡혀갔지만 문제는 고해성사였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찍기 고해성사’이다. 십계명을 베트남어로 번역해서 고해소에 붙여놓고 베트남어가 능숙하지 않은 신자들은 손가락으로 십계명을 짚어가며 죄를 고백하였다.

 

1995년 말에는 사목회도 구성하고 예비신자 교리도 시작해 베트남 한인천주교회 첫 영세자가 2명 탄생하였다. 그 가운데 한 분은 아직도 베트남에 남아 현 사목회 부회장으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1996년, 점차 신자 수가 늘어나면서 기존의 신문사 건물에서는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 오태순 신부님과 친분이 있으셨던 판깍뜨 베드로 신부님의 배려로 브엉쏘아이 성당의 별관으로 옮겼다. 제대도 있고 고정된 자리도 있어 이곳에서 첫 미사를 드리면서 천국에서 미사를 하는 것 같았다고 오래된 신자들은 지금도 이야기한다.

 

감사하게도 매주 주일미사를 집전해 주시는 판 신부님은 따로 한국어를 배우셔서 복음만큼은 떠듬떠듬 한국어로 낭독하셨다. 그러던 중에 한국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에서 일 년에 두 번, 부활절과 성탄절이 되면 한국인 신부님을 파견해 주었다. 당시 서울대교구의 정병조 신부님이 해마다 공동체를 방문하셨는데, 첫영성체, 혼인성사, 세례식, 유아세례 등 모든 예식은 이때를 기다려 한꺼번에 치렀다. 우리말로 복음 말씀과 강론을 듣고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것인지 그때 느끼고 또 느꼈다.

 

 

드디어 매주 한국어 미사를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공동체가 어느 정도 탄탄해질 무렵, 부산교구에서 어학연수를 위해 베트남에 들어오신 신부님이 계시다는 첩보를 입수하였다. 당시 부산교구장이셨던 고 정명조 주님께 부탁드리고, 소문의 그 유학생인 이창신 이냐시오 신부님께 요청하여 우리 공동체가 그리도 염원하던 한국어 미사를 매주 봉헌하게 되었다.

 

2004년 이창신 신부님이 정식으로 호치민 공동체의 주임사제로 부임하시면서 공동체는 여느 한국의 시골 본당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2004년 2월에는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호치민 교구 설정 60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을 받아 베트남을 방문, 브엉쏘아이 성당에서 베트남 공동체와 함께 추기경님이 집전하시는 미사에 참례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그 후 소공동체 모임도 매주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주일학교도 문을 열었으며, 공동체 소식지인 ‘우물가’도 창간되었다. 성서백주간 공부반도 새로 구성되어 신자들이 구약, 신약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동남아 해외 공동체가 함께 진행하는 꾸르실료 교육에도 많은 형제자매를 보내어 해외에 살면서 늘 느끼는 신앙의 갈증을 풀기도 했다. 점점 신자가 늘어나면서 기존의 3층에 위치한 성전을 더욱 넓은 4층으로 옮기고 성전 구조도 한국식으로 꾸며 나름대로 멋을 냈다.

 

 

공동체에 새로운 활기

 

2008년 현 주임이신 최현욱 베네딕토 신부님이 부임하시어 공동체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자매들만 참여하는 것으로 여기던 소공동체의 외연을 넓혀 남성구역을 따로 만들고 구역장까지 뽑았다. 매달 1회 진행하는 남성 모임은 자매들의 모임보다 더 진지하고 열성적이다.

 

2010년부터 최 베네딕토 신부님의 지도 아래 호치민 공동체의 오랜 염원인 성전건립 계획을 세우고 그 기금을 마련하려고 약정서도 받고 바자회도 하며 온 공동체가 동분서주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도시 개발 때문에 새로 성전을 지어야 하는 베트남 성당을 호치민 대교구 판민만 추기경님이 소개해 주셨다. 건축부지는 있으나 재정이 어려운 베트남 공동체를 대신해 건축비를 조달하는 조건으로 한인 공동체가 베트남 공동체와 함께 공동생활을 하기로 합의가 되었다.

 

사실 한동안 베트남에 몰아닥친 부동산 광풍으로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성전 지을 땅을 우리 스스로 마련하기도 어렵거니와 베트남 정부로부터 한인 공동체가 단독으로 성전건립 허가를 받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기에 건축비만으로 이 두 가지 일이 해결된다는 것은 주님께서 이루신 기적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성전건립 기금을 모으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신앙의 터를

 

지난 4월에는 공동체 최초로 단체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아직 공식 인정되지는 않았으나 성모님 발현지로 이름 높은 라방 성지로 2박 3일 순례를 떠나 함께 야외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특히 집회 허가를 받지 못한 까닭에 주일미사를 봉헌할 장소가 없어 순례 내내 타고 다니던 버스를 도로 옆에 세워두고 그 안에서 미사를 드린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호치민을 방문하는 신부님들이나 신자들은 우리 공동체가 상당히 젊고 역동적이라고 말한다. 350세대 정도 되는 신자들의 연령을 살펴보면 30-40대가 많고, 아이들도 많다. 신앙생활을 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지역에 살다 보니 매사에 적극적이어서 그런가 싶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것이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한국인 사제도 없이 찍기 고행성사를 하며 신앙을 키웠던 옛 선배들의 뜨거움을 생각할 때, 늘 감사하며 앞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신앙의 터를 마련해 주려면 지금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세대가 더욱더 많이 기도하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김현옥 클라우디아 - 베트남 호치민 한인천주교회 신자.

 

[경향잡지, 2011년 7월호, 김현옥 클라우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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