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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가톨릭 문화산책: 문학 (9) 괴테의 파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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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12-21 ㅣ No.191

[가톨릭 문화산책] <45> 문학 (9) 괴테의 「파우스트」


유혹에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 구원은 오직 하느님께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독일의 자랑이자 유럽의 자랑이며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최고의 칭호라 할 수 있는 '문호'에 값하는 거의 유일한 작가다. 오랜 세월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써 세계문예 사조상의 질풍노도기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세 시대를 모두 대표하는 문인은 괴테 한 사람뿐이다. 사랑에 빠져 있거나 이별의 아픔에 괴로워하는 청춘남녀의 필독서였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일종의 성장소설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도 유명하지만 괴테의 대표작은 뭐니 뭐니 해도 「파우스트」다. 슈트라스부르크대학에 다니던 스물네 살 때 쓰기 시작해 죽기 반 년 전에 탈고했으니 60년 세월에 걸쳐 쓴 필생의 대작이다. 괴테는 악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인간의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구원의 복음을 설파한 예수의 자기희생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주제를 이 작품에 담음으로써 인류에게 빛을 전한 몇 되지 않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동상.


파우스트 이야기의 역사

1540년쯤에 죽은 요한 파우스트 박사는 서유럽 각지에 '파우스트 전설'을 전파한 실존 인물이다. 그는 악마의 친구 내지는 의형제라고 말하고 다니며 사기꾼 노릇을 했었던 듯하다. 마술을 할 줄 알았고 점쟁이, 점성술사에 연금술사 행세를 하고 다녀 그에 대한 소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소문의 핵심은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의 꼬임에 빠진 뒤 악마와 계약을 맺어 마술을 하고 점을 치는 일 등에 엄청난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1587년에 그에 대한 소문을 모은 저자 미상의 책 「파우스트편」이 나와서 널리 읽히자 이 책의 영어 번역자 크리스토퍼 말로가 「포스터스 박사의 비극」을 써 1604년에 출간했다. 당시 출간된 마술에 관한 책에 '파우스트'라는 이름이 안 들어가는 게 없었다고 한다. 괴테도 10대 때 「자연과 비자연의 마술」이라는 책을 보고 파우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극을 구상해 줄거리 정도의 초고를 써본 것이 1774년, 대학생 시절이었다. 인간의 타락은 악에 빠지는 것이고 또 악마가 영혼에 깃드는 것이라고 했을 때, 괴테는 인간적 한계를 지닌 이 인물의 형상화에 평생 골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괴테는 궁정 관리인의 부인인 7년 연상의 슈타인을 연모해 1500통의 편지를 보냈지만 그 부인이 사랑을 받아주지 않아 고민에 휩싸여 시를 쓰곤 했다. 괴테는 결혼 후 다섯 자녀를 두었으나 상처하자 일흔두 살의 나이로 열일곱 살 소녀 울리케 폰 레베초프에게 청혼했다가 퇴짜를 맞기도 했다. 괴테는 바이마르공화국의 재상이면서 연애에 골몰하는 모순된 삶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파우스트 같은 인물에 몰두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파우스트」 줄거리

파우스트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학구열이 대단한 학자다. 나이 쉰 줄에 접어들자 책만 파온 자신의 생에 대해 심한 회의에 사로잡힌다. 학문적으로 이룩한 것도 없는 것 같고 인생은 어느덧 황혼기이고, 자신의 이상을 이제는 성취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 독배를 든다. 자살하려는 찰나 부활절 새벽녘의 어린이들 합창소리를 듣고 독배를 떨어뜨린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삽살개로 둔갑)는 부활절 행사로 떠들썩한 아침 거리를 산책하던 파우스트 뒤를 따라와 이상과 욕망으로 뒤엉킨 복잡한 내면의 소유자 파우스트를 유혹한다. 파우스트에게 젊음을 주는 대신 나중에 영혼을 자기한테 팔아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는 내용의 계약을 하자고. 파우스트로서는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성형수술을 하고 프로포폴을 계속 맞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심리였을 것이다. 젊음 혹은 불사에 대한 갈망은 동서고금이 다를 바 없나 보다.

프랑스 화가 아리 세페르의 그림 '파우스트와 마르가레테'.
 

미약을 먹고 잘생긴 젊은이가 된 파우스트는 거리에서 처녀 마르가레테(그레트헨)를 만나자마자 그 청순가련한 매력에 빠져버린다. 악마의 의도는 파우스트로 하여금 관능적 사랑에 빠져들게 하는 데 있었다. 파우스트는 마르가레테를 유혹해 임신케 하지만 곧 발각됐다. 파우스트는 그녀의 오빠를 결투로 죽였고, 장모가 될 사람도 수면제로 세상을 떠나게 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계획대로 파우스트는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었다. 넋이 나간 마르가레테는 아기를 물속에 던져버리고 감옥에 갇혀 처형을 기다린다. 파우스트는 감옥을 찾아가 자기가 저렇게 만든 여인을 본다. 그녀는 파우스트의 탈옥 권유를 물리치고 신의 심판에 몸을 맡기겠다고 한다. 이 부분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다. 마르가레테는 신 앞에서 속죄했던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심판받았다"고 말하자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려온다. "구원을 받았느니라." 아무튼 마르가레테도 죽는다.

파우스트는 이후 미를 상징하는 그리스의 미녀 헬레네와 결혼하여 잘 산다. 100세에 달한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가 불러낸 요녀가 뿜는 입김으로 눈이 멀어 앞을 못 보게 되자 비로소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한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자 "내 이 세상에서의 삶의 흔적은 / 영겁의 시간 속에서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 이러한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 나는 지금 지고의 순간을 향유하노라"고 외치며 쓰러진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애초의 계약대로 파우스트의 혼을 빼앗으려 하는데 천사들이 나타나 메피스토펠레스와 악마들과 한판 싸움을 벌인다. 천사들 말고도 죄 많은 여인, 사마리아의 여인, 이집트의 마리아, 축복받은 소년들, 마르가레테, 영광의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박사 등이 나타나 악을 물리치는 노래를 부른다. 죽음이 임박한 파우스트를 놓고 선과 악의 일대 대결이 벌어지는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괴테의 종교관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인간 영혼의 궁극적인 구원은 자력으로는 이뤄질 수 없고 천상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 마지막 장면, 천사들이 뿌리는 장미꽃은 악마를 내쫓고 파우스트의 영혼을 보호하지만 그의 영혼이 천국에 오르기까지는 하늘로부터의 은총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그때 속죄한 여인 마르가레테가 나타나 성모 마리아께 파우스트의 영혼 구원을 위한 은총을 빈다. "제가 그를 가르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 저분은 새로운 태양을 아직 눈부셔하고 있습니다." 마르가레테 덕에 파우스트는 마침내 천국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 대단원의 막은 "여기서 실현되었도다. /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 우리를 이끌어올리도다"라는 말로 끝이 난다. 전설들은 파우스트가 지옥에 떨어지는 결말을 보여주지만 괴테는 파우스트가 죽은 뒤 신에게 구원받는 것으로 결말을 처리한다.

시와 소설과 극의 양식이 두루 섞인 「파우스트」의 매력은 괴테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파우스트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데 있다. 필자만 하더라도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현실주의자이다. 욕정에 시달리면서도 영혼의 결백을 바란다. 재화에 연연하면서도 무욕의 경지를 추구한다. 현세의 기쁨을 추구하면서도 영혼의 구원을 갈망한다. 질서를 지키면서도 일탈을 꿈꾼다. 바로 이런 모순적인 존재가 인간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권력과 영광, 혹은 방탕과 열락을 꿈꾼다. 사실은 우리 모두 파우스트가 아닌가. 매순간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시달리는 나약한 존재가 아닌가. 괴테는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도저히 자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보고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한다. 깨어 기도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평화신문, 2013년 12월 22일,
이승하 교수(프란치스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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