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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사울의 아들 - 인간에 대한 희망과 예의 그리고 존재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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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5-19 ㅣ No.932

[영화 속 신앙 찾기] 인간에 대한 희망과 예의 그리고 존재 증명 ‘사울의 아들’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유다인 대학살)는 그 유례없는 폭력성과 비극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홀로코스트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수많은 이에게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그리고 영화나 소설 등 여러 매체를 통하여 전달되고 형성되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나 영상은 생생한 인상으로 대중에게 그 어떤 매체보다 강력한 충격효과를 제공하였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쉰들러 리스트’는 흑백영상이지만 작은 여자아이의 빨간 옷만은 컬러로 표현하여 시각적인 인상만이 아니라 정서적 충격효과도 배가시켰다.

 

스필버그 감독이 이 작품을 흑백영상으로 만든 이유는 이렇다.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상은 모두 흑백이었다. 흑백이 아니고는 나는 이 비극을 재현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물론 이러한 전제에서 볼 때 작은 여자 아이의 빨간 옷은 다분히 감성적인 측면이 있다. 강조와 환기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는 효과는 충분히 거두었다.

 

 

재현의 윤리에 대한 고민

 

사실 홀로코스트 영화는 재현할 때 간단치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사라지거나 기억 속에서 여과되어, 의도하였든 아니든 왜곡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재현이 정말로 가능한 것인지, 또는 어떻게 재현해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지 재현의 윤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한다.

 

재현의 측면에서 헝가리 감독 라즐로 네메스의 ‘사울의 아들’은 도전적인 시각 체험을 제공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이 영화가 재현에 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가졌는지 잘 드러낸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 초점이 맞지 않은 듯(out of focus) 흐린 후경(background)의 영상을 보게 된다. 화면 후경에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는데 알아볼 수가 없다. 움직이는 대상이 화면 앞쪽(foreground)으로 다가온 다음에야 선명하게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영화는 주인공 사울(게자 뢰리히)의 시점에 맞춰져 있음을 알게 된다. 카메라는 그를 따라다니며 그가 보는 것을 보지만, 그가 보지 않는 것, 곧 도처에 있는 죽음의 공포에 질려서 주변을 보려하지 않는 것은 아웃 오브 포커스(피사체는 선명하게 나오고 그 배경은 흐릿하게 나오는 효과)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는 대부분의 영화가 차용하는 전지적 시점을 회피하려 노력한다. 감독과 작가의 시점으로 모든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의 시점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시야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홀로코스트를 다루고 있음에도 영화는 관객에게 충격이나 강렬한 인상을 주는 모습을 애써 피하고 있다. 그저 팔다리 또는 뒤엉켜 있는 사체의 나신 일부만이 화면 가장자리에 잠시 나타나거나 아웃 오브 포커스로 희미하게 제시될 뿐이다. 이는 사체에 대한 물화(物化)의 방식으로 보인다.

 

왜 이렇게 보여주는 걸까? 사체를 인간이라 생각하게 되면 도저히 그 환경과 상황에서 견디지 못할 것이기에 사울 스스로 그렇게 내면화한 것을 표현한 것일까? 그런데 하나 예외가 있는데 바로 사울 아들의 주검이다.

 

이 영화가 사울의 행동과 의식 변화, 아들의 장례를 치러주려는 아버지 사울의 분투는 어찌 보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그것에 집착하는 사울의 행동을 따라 가는 것이어서 아들의 사체는 어쩔 수 없이 정면으로 노출된다.

 

혹시나 감독은 그간의 홀로코스트 영화들이 미증유의 비극을 고발하고자 해도 그 과정에서 선정적으로 그 비극적 상황들을 전시하거나 볼거리로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과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실제 네메스 감독은 아우슈비츠 피해자 집안 출신이라고 한다. 그는 “그간 생존을 다루는 감동적인 드라마가 주를 이루는 홀로코스트 영화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비극적이고 참혹한 과거를 신화로써 재생산하려는 시도에 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그에게 홀로코스트는 ‘신화’가 아니라 너무나 참혹하고 비극적인 현실이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

 

영화는 아우슈비츠의 ‘존더코만도’인 사울이란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존더코만도는 시체를 처리하는 사람이다. 존더코만도는 아우슈비츠에 보내진 유다인들을 가스실로 보내고 그들의 물품을 정리하고 사체를 소각하며, 그 재를 강에 뿌리는 일을 맡는다.

 

독일군을 대신하여 차마 하지 못할 일들을 처리하지만 죽음을 잠시 유예받을 뿐 그들 역시 가스실로 보내질 운명이다. 늘 죽음을 보며, 언젠가 닥칠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들은 애써 죽은 이들을 외면한다, 그저 물건 치우듯이.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체를 치우던 사울의 눈에 어린 소년이 들어온다. 아직 완전히 숨이 멎지 않은 소년은 수용소 의사에게 보내지지만, 의사는 아이의 숨을 막아버린다. 그 소년이 바로 사울의 아들이다.

 

사울은 아들의 죽음에 분노하지 않는다. 그가 분노하기에는 이미 수많은 죽음을 보았고 겪었기 때문이다. 대신 사울은 아들의 장례를 치르려 한다. 랍비를 찾아 기도를 통해 예를 갖추고 매장하려는 것이다.

 

사울은 위험을 무릅쓰고 동료들의 만류에도 랍비를 찾아다닌다. 겨우 랍비를 찾아 기도를 청하지만, 랍비는 제대로 기도하지 못한다. 그즈음 사울이 속한 존더코만도에 대한 가스실 처형이 결정되고 이를 알게 된 존더코만도들이 저항에 나선다. 사울도 탈출하는 무리에 섞여 수용소 밖으로 도망친다.

 

그러나 독일군이 개를 앞세워 추격해 오고 사울은 어쩔 수 없이 아들의 시체를 둘러맨 체 강물 속으로 몸을 숨긴다. 하지만 아들의 시체는 물에 떠내려간다. 추격을 피한 무리가 강 건너 숲속의 오두막에 잠시 몸을 숨기지만, 이윽고 다다른 독일군은 오두막을 향하여 총을 발사한다.

 

‘사울의 아들’은 죽음의 공간에서 아들을 발견한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영화는 아들이 아닐 수도 있음을 내비친다. 사울은 아들이라 주장하지만, 동료들은 “네게는 아들이 없어.”라고 단언한다. 아들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소년의 장례를 치러주려고 사울은 동료를 협박하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죽음의 시간과 공간에서 사울이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린 아들의 장례는 인간의 존엄과 품위에 대한 최소한의 마지막 보루가 아니었을까? 그것만이 아직 자신이 인간임을 자각할 수 있는 증거라고 여긴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소년은 아들이 아니고 인간의 대표적 상징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이 영화의 전략은 옳을 뿐 아니라 윤리적이다.

 

물론 사울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소년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도도 올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시체도 강물에 떠내려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할 수 있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그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희망이고 예의가 아니겠는가?

 

 

거듭나는 사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다. 그분의 부활을 축하하는 이 시기에,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하여 인간으로 태어나시고 죽음을 극복하여 새 생명, 새 희망으로 오신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 부활의 은총을 묵상해본다.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인간이 배신하고 외면하더라도, 사울과 같은 인물을 통해서 여전히 인간에게는 희망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하고, 인간답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이야말로 인간을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그분의 부르심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일 것이다.

 

사울은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 이름이다.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 바오로로 거듭났듯이 영화 속 사울은 아들의 주검을 만나 죽음의 꼭두각시에서 ‘인간’으로 거듭난다. 비록 그의 육신이 소멸한다 해도.

 

* 조혜정 가타리나 - 영화평론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를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5월호, 조혜정 가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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