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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45: 교황청의 외교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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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15 ㅣ No.621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45) 교황청의 외교전략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는 데도 7일이 걸렸잖소!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쵸프 서기장과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7년 중거리 미사일 실전배치를 금지하는 중거리 핵전략 조약(INF)에 서명하고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다리를 놓는’ 외교 전략으로 미소 냉전 종식과 동구권 공산주의 붕괴를 앞당긴 것은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CNS 자료 사진]

 

 

미국과 소련을 양극으로 한 냉전이 한창 벌어지던 1963년 봄. 노구의 요한 23세 교황은 크렘린에서 온 ‘귀한 손님’을 맞았습니다. 불과 몇 달 전 쿠바 미사일 위기(1962년 10월)를 넘긴 상황이어서 소련 최고 통치자인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이 모종의 새로운 전략을 세우고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겠지요.

 

 

교황과 소련 고위급 인사의 만남

 

바티칸을 찾은 손님은 흐르쇼프의 딸 라다와 그녀의 남편 알렉세이 아쥐르베이였습니다. 아쥐르베이는 공산당 기관지 「이즈베스티야」 편집국장이자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소련의 실세였습니다. 비공식적이긴 했지만, 교황과 소련 고위급 인사와의 첫 만남은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바티칸 내부의 보수 진영이 크게 반발했습니다. 반대의 이유는 명징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교활하게 박해하는 흐루쇼프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가 있고, 소련 공산당 치하에서 고통받는 신자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남다른 혜안을 가진 요한 23세 교황은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크렘린의 손님을 따뜻하게 환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티칸에 온 속셈을 알아차렸습니다. 흐루쇼프가 교황청과 외교 관계 수립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입니다. 흐루쇼프는 딸 부부를 바티칸에 보내 교황의 의사를 타진했고, 교황은 서두르지 말자고 응답했습니다.

 

당시 교황청은 자유 진영의 핵심인 미국과도 공식 수교를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교황청과 미국의 수교는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 이루어졌습니다. 가톨릭뉴스통신 기자로서 교황청을 오래 출입했던 바티칸 전문가 루트비히 링 아이펠은 당시 상황을 저서 「세계의 절대권력바티칸 제국」(김수은 역, 열대림)에 자세히 적어놓았습니다.

 

“아쥐르베이가 모스크바와 바티칸의 관계수립 가능성을 이야기하려 하자 교황이 제동을 걸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는 데에도 7일이 걸렸지 않았느냐. 외교관계에 관해서라면 이제 첫째 날에 불과하며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요한 23세 교황은 짧은 재임 기간(1958년~1963년) 안으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여 가톨릭 개혁에 박차를 가했고, 밖으로는 미소 냉전체제에서 중재 외교를 본격화하여 쿠바 미사일 위기를 타개하는 등 빛나는 성과를 냈습니다. 노련한 외교관 출신인 교황은 라다 부부와의 만남을 통해 교황청 외교의 지향점과 전략을 국제사회에 확실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교황청 외교의 교과서와도 같은 사건입니다

 

제가 취재한 바로는 교황청의 외교전략은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외교의 목표는 오로지 평화 증진입니다. 교황의 라틴어 명칭이 폰티펙스(Pontifex)입니다. 직역하면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적대 관계에 있거나 대결 상태에 있는 국가(민족) 사이에 다리를 놓아 화해토록 중재합니다. 다리가 없으면 평화 증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둘째, 평화 증진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만납니다. 어둠 속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대화합니다. 라테란조약을 체결한 비오 11세 교황은 말했습니다. “단 하나의 영혼이라도 구원하고 더 큰 해악을 막는 일이라면, 우리는 악마와도 협상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셋째, 시간은 항상 하느님 편입니다. 교황청은 시간과 싸우지 않습니다. 로마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테베레 강은 느리게 흘러가지만 결국 바다에 도달한다.” 전지전능한 하느님도 세상을 창조하는 데 7일이나 걸렸는데, 인간이 왜 서두르는가.

 

넷째, 강대국과는 적당한 거리를 둡니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자칫 중립외교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결과를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않습니다. 발표 여부는 당사자들이 결정합니다. 중재자는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중국

 

소련은 1991년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라다 부부가 교황을 만난 지 28년 만에! 다음은 중국의 개방입니다. 교황청과 중국은 2018년 9월 주교 임명에 관한 문제에 잠정 합의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보수 진영의 반대를 무릎 쓰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는 것이지요. 1963년 상황과 비슷합니다. 교황청은 특유의 외교 원칙에 따라 협상을 계속 추진할 것입니다. 언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만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1월 8일,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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