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가톨릭 교리

생활교리: 나는 세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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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2-20 ㅣ No.4450

[생활교리] ‘나는 세례 받았다!’

 

 

‘나는 세례 받았다’는 어떤 의미일까? 그 첫 번째 답은 ‘이미’ 세례 예식 때, 교회 공동체 앞에서 울려 퍼졌다. 우리는 분명 사제의 몇 가지 물음 속에, 하느님의 교회에서 ‘신앙’을 청하고, 그리고 그 신앙이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준다고 고백했다. 곧 내가 “물과 성령으로”(요한 3,5)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보증”(성 이레네오)으로서 구원의 길에 들어섬을 의미한다(마르 16,16 참조). 사실 가톨릭교회는 “영원한 행복에 들기 위한 확실한 보증으로 세례 이외에 다른 방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257).

 

더군다나 하느님께서는 차별하지 않으신 분이시다(갈라 2,6; 사도 10,34 참조). 그러기에 세상 안에서는 집안의 배경이나 인간적 조건에 따라 ‘차이’를 경험할 수 있지만, 세례 받은 모든 이는 하느님의 동등한 자녀로서 그 어떤 ‘차별’도 있을 수 없다. 곧 세례 받은 이는 적어도 하느님으로부터 아무런 차별 없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진 고귀한 존재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는 세례 받았다’라고 쓰고, ‘나는 하느님께 선택받고, 사랑받는 사람이다’라고 읽을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세례가 그리스도의 세례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울려 퍼진 사랑의 음성은 바로 우리에게도 똑같이 이렇게 전해진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 더욱이 세례는 일생에 단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다. 왜, 세례 때 ‘주님께 속해있다’는 ‘지워지지 않는 영적 표지’인 인호가 새겨지기 때문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혈육의 가족은 죽음으로 갈라질 수 있지만,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사랑의 인호가 새겨진 하느님 가족은 심지어 죽음의 힘도 그 관계를 끊어놓을 수 없다. 그러기에 “세례는 하느님의 선물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한 선물이다”(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매년 파스카 성야 미사 때 ‘세례 서약 갱신’을 거행하며, 내가 받은 세례의 의미와 은총을 다시금 기억하기를 초대한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세례를 “가슴 깊이 묻혀 있었던 온천수의 뜨거운 수맥을 퍼 올리는 것”(이어령)으로 비유한다. 곱씹어 볼만한 말이다. 세례 받은 이들은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 안에 부어진(로마 5,5 참조) 영원히 마르지 않고, 뜨겁게 흐르고 있는 생명수, 곧 하느님 사랑을 계속해서 퍼 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내가 받은 세례의 의미와 은총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내가 세례 받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나, 하느님이고 신앙이고 모두 다 내려놓고 싶을 때, 주위 사람들의 시기와 모함으로 큰 아픔과 상처를 겪을 때, 내가 아무 쓸모없게 여겨지고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리고 더는 기쁨을 찾지 못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계속 혼자서라도 중얼거려야 한다. ‘나는 세례 받았다!’ 왜, 그래야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으니까, 그래야 남루한 삶에서도 행복을 도둑맞지 않을 수 있으니까!

 

[2024년 2월 18일(나해) 사순 제1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8면, 윤태종 토마스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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