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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한국의 주교좌 성당: 천국의 열쇠를 품은 범선, 부산교구 주교좌 남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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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7-17 ㅣ No.871

한국의 주교좌 성당 (7) 천국의 열쇠를 품은 범선, 부산교구 주교좌 남천 성당

 

 

부산교구에는 2개의 주교좌 성당이 있다. 중앙 본당(주보 : 성 십자가)과 남천 본당(주보 : 성 정하상 바오로)이다. 1957년 지정된 중앙 본당이 35년 동안 교구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졌다면, 1992년 그로부터 주교좌의 대표성과 역할을 물려받은 남천 본당은 (비록 역사는 길지 않지만) 1992년 대성전 건립과 1997년 교구청 이전을 통해 기틀을 마련하고 부산교구의 미래를 견인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부산은 천주교를 극심하게 탄압한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까닭에 교세가 미약했는데, 해방을 맞고 비로소 자주적인 교회 사업이 시도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중앙 본당의 설립이다. 중앙 본당은 부산진(현 범일)과 영도(현 청학)에 이은 부산교구 세 번째 성당으로 1948년 8월 1일 대청동(大廳洞)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성장한 부산은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 수도인 동시에 천주교회의 구심점이 되었다. 피란 온 성직자 · 수도자 · 신자들이 전국에서 집결했고, 신자 수가 급증함에 따라 1954년 6월 18일 경상남도 감목 대리구로 설정되었다. 1957년 1월 21일 부산대목구로 승격하고, 같은 해 2월 3일 초대 교구장에 임명된 최재선(崔再善, 요한) 주교가 5월 30일 성성식을 거행한 후, 대청동 본당을 주교좌로 지정하면서 명칭을 ‘중앙(中央)’으로 변경하였다.

 

주교좌 남천(南川) 성당은 1979년 6월 8일 남천동 신시가지에 설립되었다. 그 일대는 광안리 해수욕장을 지척에 둔 변두리였는데, 1970년대 후반부터 개발 바람을 타고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더니 공공기관이 잇달아 들어오면서 부산의 신흥 주거지가 되었다. 새 성전 건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85년부터 현대식 대성전 건립 계획이 본격화되었다. 1988년 12월 4일 기공식을 하고 1992년 5월 31일 봉헌식을 거행하면서 새 주교좌로 설정되었다.

 

성당은 강석원(姜錫元, 루카)1)이 건축 설계를 맡고 조광호(趙光鎬, 시몬)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대작이 설치되어 더욱 유명한 종교 건축물이 되었다. 대지 면적 10,982㎡, 건축 면적 1,935㎡, 연면적 4,473.3㎡(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철골 및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적벽돌과 열선 반사 복층 유리로 마감되었다. 대성전은 3,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무주(無柱) 공간이다.

 

성전 안으로 들어서면 지붕과 벽의 경계를 허무는 좌측 45도 사면(斜面) 천창에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삼위일체 신비가 스테인드글라스로 펼쳐진다. 십자가를 잉태한 3개의 원을 중심으로 푸른 하늘과 물이 생성되는 창조의 순간을 표현한 이 작품은 ‘인간과 빛과 공간이 하나되는 압도적인 체험’을 선사한다. 그 향연을 가능케 한 캔버스 2,226㎡(53x42m)의 대형 천창은 ‘종교적 상징성’과 ‘항구 도시의 지역성’을 건축 언어로 버무리고 치환시킨 형태와 구조의 미학에서 탄생했다. 남천 성당은 1992년 한국건축전 우수상을 받았다.

 

“부산 바다에 떠 있는 듯한 범선(帆船) 형태는 지역의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다. 독립된 종탑은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상징하며, 삼각형 단면의 성당은 뾰족집의 인상을 결정짓는데, 이 모두가 하늘을 향한 몸짓이다. 남측 벽을 45도 경사의 커튼월(curtain wall)2)로 북측 벽과 강하게 대비시켰다. 이로써 건물에 극적인 양면성을 강조하여 매스(mass)3)의 무게감을 해소했다. (북측) 수직 벽의 강렬함과 (남측) 경사 커튼월의 투명성은 공간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커튼월을 통해 밀려드는 외적 요소와 수직 벽의 요철을 통해 음영의 깊이와 부드러운 공간 분위기가 연출되도록 계획하였는데, 이 거대한 유리면은 1995년에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져 그야말로 광혜(光惠)가 되었다.” - 주교좌 남천 성당 건축 소묘 중에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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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룹가건축연구소 대표, 대한민국 건축사이자 프랑스 국가공인 건축가, 1961년 홍익대학교 건축미술과를 졸업하고 1961년 제10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 「육군훈련소 계획」을 출품해 건축부문 최초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1966년부터 12년 동안 조르주 앙리 팽귀송 건축연구소에 들어가 조력하면서 파리국립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제1회 김수근 문화상 건축상을 비롯해 다수의 건축상을 받았으며, 제20대 한국건축가협회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초대 커미셔너로, 한불 문화교류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1997년 프랑스 국가공로훈장(기사단장), 1998년 대한민국 문화훈장(옥관훈장) 등을 수장했다.

 

2) 구조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외벽을 뜻하며, 보통 다른 마감 없이 전면이 모두 유리로 된 벽을 말한다.

 

3) 건축물을 하나의 덩어리로 본 전체적인 형태.

 

4) 「원로건축사 강석원」, 『건축사』, 2019년 4월 8일.

 

[교회와 역사, 2022년 7월호, 이오주은 미카엘라(한국교회사연구소 미디어콘텐츠사업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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