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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한국진출 50주년 앞둔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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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1-28 ㅣ No.225

한국진출 50주년 앞둔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낮은 곳에서 묵묵히 사랑 실천 … 병원·학교사목에 매진



- 과달루페 외방선교회가 관할하는 양동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양동공소는 광주 양동시장 상인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지난 2009년 설립됐다. 과달루페 외방선교회는 1962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 가장 낮은 곳에 임한 주님의 모습으로 묵묵히 선교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62년 11월 26일, 과달루페 외방선교회(한국지부장 유진호 신부) 선교사가 한국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로부터 50년을 앞두고 있다. 반세기 동안 한국교회에서 사목을 하고 있지만 과달루페 외방선교회는 잘 알려진 선교회는 아니다. 그저 한국교회 곳곳에서 묵묵히 선교활동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한국진출 50주년을 앞두고 낮은 곳에 임한 주님을 닮은 과달루페 외방선교회를 소개한다.
 

과달루페 성모와 함께

과달루페 외방선교회는 1949년 멕시코에서 시작됐다. 과달루페 성모가 발현한지 400여 년만의 일이다. 이미 많은 멕시코 출신 사제와 수도자가 여러 선교지에서 활동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선교단체가 없었던 탓에 주교들은 외방선교회 설립의 필요성을 인지했다. 하지만 선교회의 시작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선교회 설립 10년 전부터 멕시코의 많은 주교들은 선교사 파견에 대한 원의가 있었으나, 주교들의 바람과는 달리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박해시대(1926~1936)가 끝난 직후였기 때문에 교회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고 교회 활동도 자유롭지 못했다. 국내에 파견할 사제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주교들의 원의는 꺾지 못했다. 선교회 설립을 찬성하는 이들의 뜻을 모아, 1942년 과달루페에서 제1차 전국 선교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서 외방선교회 설립이 결정되고 준비위원회가 결성됐다. 이어 1947년에 열린 제2차 선교대회를 통해 외방선교회와 선교회 소속 신학교 설립을 공식적으로 결정했다. 이듬해 교황 비오 12세는 교황청 포교성을 통해 신학교 설립을 인준했다. 더불어 선교사 교육은 당분간 메리놀 외방전교회에 맡겼다. 신학교 학장으로는 볼리비아 빤도대목구 주교이자 멕시코 출신 사제 에스칼란테 주교가 임명됐다.

외방선교회 설립을 위한 준비가 차근차근 진행됐다. 드디어 1949년 10월 7일 과달루페대성당에서 선교회 설립식이 봉헌됐다. 멕시코 주교단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설립식에서는 열두 명의 신학생이 회원으로 선서를 했다. 선교회 명칭은 ‘과달루페 외방선교회’로 했다. 생명을 존중한 과달루페 성모를 본받고자 함이었다. 선교회는 1953년 교황청 포교성으로부터 회칙 인준을 받았다. 교황청 관할권으로 승격되고, 초대 총장으로 신학교 학장이던 에스칼란테 주교가 임명됐다.
 

세계로 뻗어나가다

과달루페 외방선교회는 약동하는 아시아교회에 관심을 가졌다. 중국 만주에서 10여 년 동안 선교활동을 했던 총장 에스칼란테 주교의 안목이었다.

설립 이후 선교사 양성에 매진해 온 외방선교회는 사제가 배출되면 바로 아시아교회로 파견했다. 첫 파견지는 일본이었다. 오랜 박해에도 가톨릭 신앙의 끈을 놓지 않은 일본교회 신자들을 위해 선교사제들은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어 일본에 인접한 한국교회에도 사제를 파견했다. 외방선교회의 선교활동은 본격적으로 세계로 뻗어 나갔다. 이후 케냐와 홍콩, 앙골라 등지로 선교지를 넓혔다. 타 대륙뿐 아니라 페루와 브라질, 쿠바 등 남미대륙에도 선교사를 파견했다. 과달루페 성모를 본받아 생명존중 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외방선교회는 세계교회 속으로 뻗어나갔다.

과달루페 외방선교회는 멕시코 현지에서도 사목활동을 한다. 하지만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결코 드러나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이들과 함께하면서 하느님과 과달루페 성모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현재 180여 명의 회원 중 절반 가까운 90여 명이 선교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교회와의 인연

2012년은 한국교회와 과달루페 외방선교회의 인연이 시작된 지 50년이 되는 해다. 초대 총장이던 에스칼란테 주교가 한국을 선교지로 선택했다. 이어 안요셉(호세 알바레스) 신부와 강요셉(호세 차베스) 신부를 한국에 파견했다.

두 명의 선교사는 1962년 부산에 도착했다.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언어가 가장 큰 문제였다. 한국어 공부를 하던 이들은 이듬해 광주대교구에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교구장이던 헨리 대주교가 로마에서 에스칼란테 주교를 만나 사제 파견을 요청하면서 여수와 순천 지역의 본당 두 곳에서 사목했다.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관할하던 본당 두 곳을 인계받았다. 1964년에는 서울대교구 성수동 지역을 맡아 자양동본당을 1977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부산교구와 인천교구에서도 활동했다. 1974년 부산 양산본당에서 사목했고, 1978년 사직동본당을 건립했다. 인천교구에서는 대부도와 영종도본당에서 과달루페 성모의 사랑을 실천했다.

과달루페 외방선교회의 선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한국은 더 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지만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이웃들이 다수 존재한다. 과달루페 외방선교회는 한국사회에서 소외받는 이웃들을 위해 봉사한다. 특히 병원사목과 학교사목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한국진출 50주년을 맞아 과달루페 외방선교회는 2012년을 희년으로 보내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26일 50주년 기념 개막미사 봉헌을 시작으로 내년 5월 12일 서울 자양2동성당(정진석 추기경 주례), 5월 19일 광주 금당성당(김희중대주교 주례)에서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한 해 동안 전남 순천 한국지부와 서울 합정동 지부에서 열리는 사진전과 폐막미사 등을 진행한다.

지난해 「과달루페 성모님과 함께하는 여정」을 발간한 양진홍 신부(서울 자양동본당 주임)는 책을 통해 “내년은 과달루페 외방선교회가 한국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라며 “이를 기회로 과달루페 성모님을 알리고자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 문의 061-726-5389, 02-334-2979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

틸마(인디언의 망토)에 새겨진 성모님 모습에 발현 확인, 고통 속에 신음하던 수많은 인디오 치유


후안 디에고에게 발현한 과달루페의 성모.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것으로부터 10년이 지난 1531년 12월 6일 과달루페 성모가 발현했다.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테페약 산을 오르는 후안 디에고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후안 디에고는 태양같이 찬란한 옷을 입고 무지갯빛을 발하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한다. 성모 마리아는 디에고에게 “나는 이곳에 성당을 세우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그 성당에서 나의 사랑, 자비, 도움과 보호를 베풀겠다”는 말씀을 하고, 이를 주교에게 전하라고 했다.

후안 디에고는 바로 후안 데 수마라가 주교를 찾아가 성모 마리아의 말씀을 전했다. 하지만 수마라가 주교는 믿지 않았다. 후안 디에고는 성모의 발현을 증명하기 위해 표징이 필요하다고 성모 마리아에게 말했다. 이를 전해 들은 성모 마리아는 열병을 앓던 후안 디에고의 삼촌을 치유하고, 한겨울에 테페약 산 정상에 핀 장미를 표징으로 전달했다. 후안 디에고는 장미를 옷에 담아 주교에게 가져갔다. 그 순간 주교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한 겨울의 장미도 놀라웠지만, 장미를 담아온 후안 디에고의 옷에 테페약 산에서 만났던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이때가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 축일인 1531년 12월 12일이다. 성모 발현을 확인한 수마라가 주교는 테페약 산 정상에 성당을 지었다.

루르드(1858년)와 파티마(1917년)의 발현보다도 수백 년 앞서 일어난 일이다. 과달루페 성모의 발현으로 고통 속에 신음하던 많은 인디오가 육체적·정신적 구원을 받았다. 수많은 기적도 일어났다. 병자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도움을 청하여 건강을 회복하고, 위험에 빠진 이들은 곤경에서 벗어났다. 낙태와 자살도 줄었다. 영적 치유의 기적은 더 많이 일어났다. 순례자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위로를 받아 삶의 힘을 얻었고 죄인들은 회개했다. 오늘날까지도 과달루페 성모 신심은 커지고 있다. 12월 12일 과달루페 성모 축일에는 매해 수백만 명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으며, 주일미사 참례 신자의 수도 10만 명에 가까울 정도다. 멕시코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온다. 특히 한국교회 신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한다(「과달루페 성모님과 함께하는 여정」(양진홍 신부 저) 참조).

[가톨릭신문, 2011년 11월 27일,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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