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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봉헌 생활의 해, 완전한 사랑14: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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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07 ㅣ No.524

[봉헌 생활의 해 - 완전한 사랑] (14)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 수도회

장애인들 ‘세상살기’ 도우며 환대의 영성을 살다



고상열 수사가 H2빌 정원에서 지적ㆍ자폐성 1급 장애인들, 협력자들과 함께 화기애애한 오후를 보내고 있다. 오세택 기자


서울 강서 둘레길 출발지점인 방화 근린공원의 울창한 숲을 빠져나오면 마주하게 되는 3층 건물 H2빌.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 수도회 한국관구(관구장 이광수 수사)가 운영하는 이 건물은 중증 장애인들의 삶터이자 ‘공동생활 가정’이다. ‘환대의 집’(Hospitality House) 영문 머리글자 두 자와 ‘빌라’의 머리글자를 따 독특한 이름을 지었다. 일반 사회복지시설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는 수도회 측의 배려가 담겼다.

지난해 10월 개원한 H2빌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은 현재 20여 명. 정원은 30명이지만 서울시에 거주하는 지적ㆍ자폐성 1급 장애인이어야 하고 국민기초생활 보장 수급 대상자에 한해 실비를 받고 입주할 수 있기에 정원이 다 차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한 것도 아니다. 입주 예정자는 거의 다 찼다. 1층엔 남자 장애인 두 집, 2층엔 여자 장애인 두 집이 ‘가족처럼’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일반 시설처럼 생활 훈련이나 미술치료 같은 기본 프로그램은 하지만, 장애를 지닌 입주자들이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받는 생태적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천국’ 같은 보금자리만은 아니다. 장애인들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기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장애가 덜한 이들은 인근 늘푸른나무복지관 그라나다보호작업센터에서 일하도록 함으로써 ‘자신만의 삶’을 가꾸게 하고 있다.

수도자들은 중증 장애 입주자들도 가능한 한 밖으로 나가 지역 주민들과 유기적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도록 돕고 있다. 입주자들이 지역 사회의 평범한 시민 중 한 사람으로 개별화되고 자주적인 삶을 살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수도회 서울분원 내 늘푸른집과 H2빌(왼쪽).


그래서 H2빌 안에 성당도 두지 않고 인근 성당에 다니도록 하고, 이발소나 미용실도 동네 시설을 이용하게 한다. 또 자장면 한 그릇이라도 배달시키지 않고 직접 밖에 나가서 직접 주문하고 맛있게 먹으며 외식하도록 이끈다. 지역사회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하는 게 H2빌의 방침이다. 그렇지 않다면 H2빌은 하루 세끼 먹고 살다가 죽는 곳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H2빌 곁에 세워진 늘 푸른 집도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 수도회 서울 분원에서 운영하는 단기보호센터. 정원은 10명이지만 최대한 15명까지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4개의 방과 프로그램실 등을 갖췄다.

이같은 사도직의 밑바탕에는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 수도회 특유의 ‘환대’(Hospitality) 영성이 토대가 되고 있다.

20여 명의 수도자와 협력자(직원과 사회복지사)들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16)라는 말씀에 바탕을 둔 환대의 정신으로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은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이들의 요구에 응답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전한다.

650㎡ 크기 대지 매입에 건물 신축비용까지 모두 80억 원을 들여 H2빌과 주간보호센터인 늘푸른집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자폐나 발달장애 부모라면 꼭 하게 되는 한 마디가 씨앗이 됐다. “내가 죽으면 (우리 아이는) 어떻게 살까?”였다.

이 말을 던진 부모들은 “수사님들이라면 우리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겠다”고 했다. 하지만 20여 년 전 비인가시설 늘푸른나무 주간보호센터 보호 작업장에서 사도직을 하던 고상열(라카르도 팜푸리) 수사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만한 건물을 세우고 운영할 재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해야죠. 해야죠” 하면서도 선뜻 나서질 못했다.

그러던 중 2010년으로 접어들면서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렵게 수도회 승인을 얻어 모금을 시작했다. 수도회로서도 엄청난 사업이었다. 회원들이 전국에 모금하러 다녔다. 그리고 국비와 시비 지원까지 합쳐 건물을 지었다. 이로써 ‘내 자식보다 하루 뒤에 죽기를 바라며’ 지적ㆍ자폐 장애인들의 공동생활가정을 꿈꾸던 부모들의 간절한 소원이 이뤄졌다.

고 수사는 “장애를 지녔지만, 자식이 인간다운 돌봄을 받기를 바라던 부모님들의 간절한 기도 덕에 기적이 이뤄졌다”면서 “이제 그 집을 지을 때의 첫 마음, 곧 ‘환대’를 실천하는데 협력자들과 함께 늘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 수도회는

 

탁발에 나서는 천주의 성 요한.


‘환대’(Hospitality)는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수도회의 정체성이자 영성을 이룬다. 환대에는 동정과 존경, 정의, 탁월함의 가치가 모두 포함돼 있다. 그 한 단어에 수도회의 정신이 다 담겨 있는 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 가난과 ‘사랑의 투사’로 불린 설립자 천주의 성 요한(1495∼1550)의 정신을 따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병자들, 고통받는 모든 이들 안에서 하느님 은총인 ‘환대’를 목숨 바쳐 실천하는 데 요체가 있다.

수도회는 포르투갈 몬테모로노바 출신인 천주의 성 요한이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작은 병원을 세우고 환자를 돌본 데서 시작됐다.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 성인은 환자가 누구이든, 또 어떤 상태이든 자신의 병원을 찾아온 모든 이들을 형제자매로 대하며 극진히 보살폈고, 성인을 따르던 5명의 동료가 1539년에 설립된 자선의 집을 모태로 성인의 사후 1572년에 수도회를 세웠다. 그로부터 20년 뒤 비오 5세 교황에게 수도회로 인준 받았으며, 식스토 5세 교황에 의해 1586년 엄률수도회로 승격됐다.

사도직 활동을 위해 사제품을 받는 성직회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평수사로 구성된 ‘평수사회’이며, 정결과 청빈, 순명의 복음적 권고와 함께 ‘환대’의 서원을 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현재 전 세계 52개국 300여 개 시설에서 1600여 명의 수도자가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58년 광주대교구장 헨리 대주교의 요청으로 5명의 아일랜드 관구 수사들이 진출, 1960년 광주 임동에 천주의 성 요한 병원을 개원하고 의료봉사사업을 하면서 시작됐다. 현재 30여 명의 한국 수사들이 본원인 광주를 비롯해 서울과 춘천, 담양, 중국, 일본 등지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도직을 실천하고 있다.

수도회는 천주의성요한병원 외에도 광주 노인복지회관, 서울 늘푸른나무복지관, 광주 요한빌리지 등을 개관, 의료 사도직에서 사회복지사업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평화신문, 2015년 6월 7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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