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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신심서적 다시 읽기: 성자처럼 즐겨라! -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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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5-16 ㅣ No.284

[신심서적 다시 읽기] 성자처럼 즐겨라! -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쁜 삶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쁜 삶이어야 한다. 우리는 엄격함이나 진지함 같은 가치를 매우 중요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제임스 마틴이 지은 ≪성자처럼 즐겨라!’≫에는 12가지의 유머를 소개하고 있다. 책을 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분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시다. 교황으로 선출되고 나서 그 첫 인사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좋은 저녁입니다.”였다.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 늘 하는 평범한 인사가 아닌가? 늘 미소 짓는 모습처럼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그리고 “형제 추기경님께서 로마의 주교를 찾고자 지구 끝까지 가신 것 같습니다.” 또 성 베드로광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환영해준 데 대하여 감사를 드리며 주일 잘 보내시고 점심 맛있게 드십시오.”라고 하셨다. 일상에서 찾은 탁월한 유머감각이 아니랴.

 

우리 사회의 유교적인 풍토는 어른의 말씀을 들을 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순명하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교육에 익숙해 있으니 일상생활에서 유머, 웃음 같은 미덕들이 신앙생활의 일부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성생활에서 유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참 그러면 좋겠구나!’하는 생각을 해본 것도 사실이다. 유머는 사전적으로 익살스런 농담, 해학으로 설명한다. 신앙이 어떻게 기쁨으로 이어지는지, 성인들이 어떻게 유머를 도구로 하여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했는지, 어떻게 웃음이 엄숙하리만큼 중요한 미덕이 되는지를 깨닫게 해준 것 같다. 우리는 ‘복음화’, ‘복음적인 삶’이란 말을 많이 쓴다. 복음화는 삶에 생기를 불어 넣는 말이다. 일상의 무기력한 삶에서 생기를 돋우는 유머는 삶의 기쁨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참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유머는 겸손의 도구라고 하였다. 유머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본적인 인간성, 자신들의 영적 가난을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훌륭한 방편이며 우리를 낮은 곳으로 다시 데려와 하느님의 세상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자리가 어딘지를 깨우쳐 주기도 한다. 겸손을 생각하면 또 한 분을 떠올린다. 신문에 난 기사를 옮기지 않더라도 그 낮춤이 ‘프란치스코 효과’로 나타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람들은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기 어려워한다. 유머는 재치있는 말로 잘난 체 하는 사람, 거만한 사람, 권세있는 사람에게 도전하는 유서 깊은 방식이 아니었던가?

 

얼마 전 성인품에 오른 요한 23세 교황님의 일화다. 프랑스 파리에서 교황대사로 근무할 때 연회에서 생긴 일이다. 당시 론칼리 대주교(요한 23세 교황이 되기 전 이름)를 떠보려고 무례하게 여자 누드사진을 불쑥 내민 사람이 있었다. 대주교님은 사진을 슬쩍 쳐다보며 히죽히죽 웃는 그 남자에게 사진을 돌려주며 “사모님인가 보죠?”라고 하였다. 참 재치있는 응대가 아닌가?

 

또 다른 예화다. 언젠가 한 어머니가 주교님과 같은 병원에 입원하여 큰 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있었는데 교구의 주교님이 문병을 왔다. “자매님, 자매님 마음이 어떤지 잘 압니다. 저 역시 자매님과 똑같은 상태지요.” 그러자 어머니는 “정말요, 주교님도 자궁절제수술을 받으셨어요?”라고 물었다. 참으로 웃음이 담긴 해학이 아닌가?

 

라우렌시오 성인의 일화 한 토막이다. 성인이 순교할 때 자신을 고문하는 사람들에게 “이쪽은 다 구워졌소.”라고 말했다. 이는 사형 집행인을 향한 예리한 도전이며 담대한 신앙고백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유머는 불가항력일 때라도 용기를 주는 말이다. 데레사 성녀의 얘기다. 성녀가 나귀에서 떨어져 진흙땅으로 굴렀다. 다리를 다친 성녀가 “주님, 어쩜 가장 나쁜 때를 골라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신 거죠?”라고 물었다. 성녀가 기도 중에 들은 응답은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친구를 대하는 방식이란다.” 그러자 성녀는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렇게 친구가 적으신 거군요!”라고 말했다. 이런 유머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어지게 만들어 주지 않는가?

 

말씀 안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성경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실존을 변화시키고, 치유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우리가 고통으로 힘들어 할 때 고통이 전부가 아님을 일깨워줌으로써 그 고통을 인내하게 도와준다. 당신이 아프거나 괴롭거나 병마와 싸우고 있을 때 당신을 웃게 하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은총이 아닌가? 유머는 병을 치유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프리드만은 ‘웃음은 면역기능을 강화하고 근육의 긴장을 완화하며, 고통을 견디는 힘을 증가시키고, 유머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없애고 불안, 슬픔, 두려움의 감정을 해소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성경에도 지혜의 말씀을 기억한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고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라는 물음에 예수님은 “이 동전의 초상화가 누구의 것이냐?”라고 묻는다. “황제의 것입니다.”라는 대답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느님은 우리를 위한 선물로 유머를 주셨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일화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려고 열차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차내에서 음식을 파는 사람이 “삶은 계란, 삶은 계란”하고 외칠 때 문득 “인생은 계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착상은 얼마나 기발한가. 웃음이 배어나온다. 또 16세기 토마스 모어 성인이 영국의 재상으로 있던 시절, 헨리 8세 국왕의 이혼을 거부한 대가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참수형을 받아 단두대 계단을 올라가면서 사형집행인에게 “올라가는 것을 좀 도와주게나, 내려올 때는 혼자 할 테니.”라고 하였다. 기쁨과 유머, 웃음은 모든 사람에게 영성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카를 라너는 “좋은 웃음은 사랑의 표징이다.”라고 하였다. 유머는 겸손의 도구이고, 현실을 깨닫게 하며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한다. 우리는 신앙이 어떻게 기쁨으로 이어지고 성인들이 어떻게 유머를 도구로 하여 하느님과 일치를 추구했으며 웃음이 어떻게 중요한 미덕이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기쁨과 유머, 그리고 웃음의 미덕들이 신앙생활의 일부가 되기 위하여 유머를 생활화하는 지혜를 익히자.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쁜 삶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 《성자처럼 즐겨라》, 제임스 마틴 지음, 이순 옮김, 가톨릭출판사 펴냄

 

* 약력 :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월간 『수필문학』 천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원. 수필집으로 《내가 선 자리에서》, 《하얀 바다의 명상》, 《느끼며 살며》 등이 있다.

 

[월간빛, 2016년 5월호, 강찬중 바오로(대명성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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