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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ㅣ우화

[나눔] 고픈 배는 나중에 채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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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1 ㅣ No.416

고픈 배는 나중에 채울 수 없다

 

 

파리 15구에 있는 아미랄 루생 거리에는 재미있는 식당이 있다. 요리사이며 주인인 사람이 괴짜이다. 한 끼 식사 값이 40프랑으로 다른 식당에 비해 아주 산 것도 특이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식당에서는 식사 뒤 계산을 손님 스스로 하게 되어 있다. 출구에 조그마한 돈통을 놓아두고는 손님이 알아서 지불하고 가라고 한다. 부족하거나 낼 돈이 없어도 나중에 지불하면 되니 상관없다고 말한다. 또 거스름돈도 돈통에서 스스로 챙겨간다.

 

이 괴짜 주인과 손님 사이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 여러 번 돈 없이 밥을 먹었던 대학생이 2년만에 나타나 고맙다면서 500프랑을 놓고 갔다는 얘기, 100프랑짜리를 돈통에 집어넣고 200프랑짜리를 집어넣은 듯 160프랑을 챙겨간 손님이 나중에 찾아와 "돈을 꿔 줘서 고마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식당 주인은 손님의 숫자와 손님이 낸 금액의 통계를 내 보았더니 39.3프랑이 나왔다며, 그만하면 손님들의 양심이 괜찮은 게 아니냐며 껄껄 웃었다. 그런데 이 주인을 단지 마음씨 좋은 바보로 알았다간 큰코 다친다. 한번은 식당 근처 아파트 보수공사장의 인부 네 사람이 며칠 동안 계속 점심을 먹었는데 돈낼 낌새를 전혀 안 보이더란다. 게다가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면서 바보 취급하는 데에는 도저히 그냥 참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인은 하얀 요리사 복장으로 정장을 하고 하얀 요리사 모자까지 쓰고 그들을 융숭히 대접한 뒤, 큼직한 종이에 계산 내역을 적어 갖다 주었다. 그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밀린 식사비까지 모두 지불해야 했음을 물론이다.

 

식당 주인은 말한다.

 

"배고픈 사람은 돈이 있든지 없든지 우선 먹어야 한다. 돈은 나중에 채울 수 있지만 고픈 배는 나중에 채울 수 없다."

 

[홍세화, 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한겨레신문사 / 좋은생각, 2000년 2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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