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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과 신앙: 차차차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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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4-21 ㅣ No.282

[과학과 신앙] 차차차 이론

 

 

요즈음 우리는 많은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풍요는 과학기술자들이 흘린 땀과 눈물 덕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하여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과학기술이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먼저 용어부터 낯설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나 인터넷도 처음 개발되었을 때는 그 용어들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부감이 많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개발되는 문명의 이기들

 

하지만 오늘날은 전혀 사정이 다릅니다. 초등학생 가운데 검색, 부팅, 댓글 등과 같은, 컴퓨터나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기본적인 용어들을 모르는 아이는 없을 것입니다.

 

자고 나면 새로 등장하는 새로운 통신수단은 또 어떻습니까? 벨이 전화를 발명할 때만 해도 유령이 그 속에서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전화 속으로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에 심지어 기절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스운 일이지요? 하지만 오늘날은 아무리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라도 스마트폰이 무엇인지 정도는 압니다.

 

20세기 이전에 살았던 우리 부모님 세대는 유선전화기가 무선전화기로 바뀐 것을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2세대, 3세대를 거쳐 4세대 휴대전화가 등장하였습니다. 2세대니, 3세대니, 4세대니 하는 용어들의 정확한 정의는 몰라도, 날이 갈수록 스마트폰이 더 빠르고 편리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신제품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용어들이 난해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최근 들어, ‘사물 인터넷’, ‘가상현실’ 등 매우 중요한 과학기술 발전의 결과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사실 ‘사물 인터넷’이니 ‘가상현실’ 등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솔직히, 과학자인 저 자신도 그 용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냥 신기하다는 느낌뿐입니다.

 

제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나노 과학기술 분야입니다. 머리카락의 10만분의 1만큼 작은 세계를 다루는 나노 과학기술 또한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면 머리가 빙빙 돕니다. 이번 호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기술의 결과물들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하는 의문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발명품들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발명 또는 발견에 얽힌 비화들

 

과학기술의 지식을 그저 주입식으로 배우는 것보다, 유명한 과학자들이 인류에게 유용한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을 발명하거나 발견하는 과정을 추적하다 보면 그 진리를 뜻밖에 쉽게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나일론은 어느 날 갑자기 발명된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먼저 만든 것을 개량하여 만들어낸 것일까? 뇌 속에 있는 신경 전달물질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아낸 과학자는 누구일까? 물이 산소와 수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과정을 추적하면서 과학기술의 지식을 습득하면 과학기술이 그렇게 따분하지만은 않다고 느껴질 때도 많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론 한 가지를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차-차-차 이론

 

수년 전에 세계적 과학 전문 주간지 「사이언스」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역사에 남을 만한 위대한 발명이나 발견으로 이끄는 세 가지 범주의 동기를 다룬 이론에 관한 것입니다. 곧 ‘충전(charge)’, ‘도전(challenge)’, 그리고 ‘기회(chance)’입니다. 영어로 모두 차(cha-)로 시작되는 단어들이기에, ‘차-차-차(cha-cha-cha) 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마침, 라틴아메리카 스타일의 댄스 음악을 ‘차차차’라고 하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입니다. 룸바와 맘보에서 파생한 이 음악 장르가 우리 대중가요 속에 스며들어 ‘다함께 차차차’와 같은 노래도 유행한 적이 있지요.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말하는 ‘차-차-차 이론’은 전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이론은 10년간(1985-1995년) 「사이언스」의 편집장을 지냈던, 고(故) 코쉬랜드 2세 교수가 쓴 글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니, 아직은 일반화된 이론은 아닙니다. 코쉬랜드 2세 교수가 단독으로 만든 말인데, 우리에게 차차차란 음악 장르가 익숙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다가옵니다.

 

먼저 ‘충전’이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여 세기적으로 발명하거나 발견한 것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누구나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일반적인 자연현상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것에서 인류 역사를 바꿀 위대한 과학기술의 업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자신이 앉은 벤치에 앉아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은 오직 뉴턴밖에 없었습니다. 충전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도전’이란, 설명되지 않거나 기존의 이론들을 벗어나는 변칙적인 사실이나 개념들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입니다.

 

거의 400년간 모든 사람이 뉴턴의 기계론에 바탕을 둔 세계관에 젖어있을 때 아인슈타인은 완전히 다른 발상으로 과학기술의 역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온 위대한 이론을 ‘도전적’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2014년 겨울에 개봉하여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 모았던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에 등장하는 웜홀, 블랙홀 장면 등도, 상대성이론 덕분에 가능하게 된 개념들이지요. 그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상대성이론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 이론이 얼마나 위대한 과학기술의 업적인지는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기회’란 아무도 보지 못했거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플레밍이 유리접시에 붙은 흔적에서 페니실린을 발명한 것이 이러한 ‘기회’로 말미암은 과학 발명에 해당합니다.

 

지난 2월 호에 과학기술의 업적에 관하여 ‘행운을 우연히 발견하는 능력’으로 정의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에 대해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얻게 되는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뜻하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지요. 이런 세렌디피티가 ‘기회’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차-차-차 이론의 경우들

 

‘차-차-차 이론’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브라운과 골드스타인은 심장병 예방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콜레스테롤의 대사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스트리아의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자였던 멘델은, 자식들이 어버이를 닮는다는 사실로부터 그 유명한 유전법칙을 발견하였지요. 이 두 경우가 바로 ‘충전’에 해당하는 세기적 업적에 해당합니다.

 

반면에, 벤젠의 구조를 알아낸 케큘레, 원자구조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양자역학의 기초를 마련한 보어, 또 디엔에이(DNA)의 복제와 암호해독을 설명하고자 연구를 하면서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의 경우는 ‘도전’에 해당합니다.

 

‘기회’에 의해 세기적 업적을 남긴 예로는, D-형과 L-형 타르타르산의 결정구조를 연구하다가 광학활성을 알아낸 파스퇴르나, 저장 실린더에 달라붙는 물질을 연구하던 중에 테플론을 발명한 플렁켓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차-차-차 이론’에 따르면, 어떻게 세기적으로 발명하거나 발견하는지는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의 차이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곧, ‘충전’ 범주에 속할 경우, 문제를 인식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고안하는데 독창성이 있게 된다고 합니다. ‘도전’ 범주에 속할 경우는, 무엇인가 비정상적인 점을 알아채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독창성이 비롯된다고 봅니다. 반면, ‘기회’ 범주의 경우, 어떤 사건이나 현상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서 독창성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세기적 업적은 준비된 마음이 있어야

 

세기적 발견이나 발명을 이루어낸 동기가 ‘충전’이든, ‘도전’이든, ‘기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2월 호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바로 ‘준비된 마음’입니다.

 

평소에 늘 접하던 어떤 현상의 비밀을 캐려면 그것을 잘 설명하려는 기본적인 과학지식과 열정을 갖추고 있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사람이 복권에 당첨될 수 없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세기적 발견이나 발명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합니다.

 

뛰어난 과학적 성과가 과연 ‘우연’인지 ‘필연’인지 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과학사가들의 논란거리였습니다. 하지만 ‘우연’같이 보이는 세기적 발견이나 발명도, 사실은 그 발견자나 발명자의 엄청난 땀과 피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준비된 사람에게만 그런 ‘우연’같은 행운이 따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에서 언급한 과학 분야의 ‘차-차-차 이론’을 생각하다 보니, 우리 신앙인에게 늘 일러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바깥일을 정리하고 밭일을 준비한 다음 집을 지어라”(잠언 24,27).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주님을 기다리며 늘 준비하는 자세로 깨어 생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본업인 과학 분야에서도, 늘 준비하면서, ‘충전’과 ‘도전’, 그리고 ‘기회’, 그 가운데 어느 ‘차’가 찾아오더라도 놓치지 않고 잡겠습니다. 물론, 제가 열심히 준비하여 ‘기회’를 잡더라도, 과학자로서의 마지막 “승리는 주님께 달려”(잠언 21,31) 있겠지만요.

 

* 하창식 프란치스코 - 부산대학교 고분자공학과 교수. 부산가톨릭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접착 및 계면학회 회장, 부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6년 4월호, 하창식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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