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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봉헌, 완전한 사랑: 수도성소가 실현되는 수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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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23 ㅣ No.521

[봉헌 - 완전한 사랑] 수도성소가 실현되는 수도 공동체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한지고, 형제들이 오순도순 한데 모여 사는 것!”(가톨릭성가 416번, 시편 133,1 참조) 이 구절은 통상 수도자들의 공동생활이 지닌 아름다움을 표현한 대표적인 성경 말씀 가운데 하나로 회자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처럼 수도자들에게 역설적으로 다가오는 말도 드물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공동생활이 수도생활의 중요한 요소라는 걸 잘 알면서도 현실적인 면에서 보면 대부분의 수도자가 바로 이 공동생활 때문에 많은 아픔을 겪고 삽니다. 더욱이 이미 핵가족화된 현대 한국 사회, 한 가정 한 자녀 시대에서 자기가 최고인 양 사랑받고 승승장구하며 살아온 젊은이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수많은 아픔과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 수도 공동체의 삶을 받아들이기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생활’은 수도자에게 운명과도 같은 조건입니다.

아주 예외적인 수도생활 형태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수도자는 반드시 공동체 생활을 자기 수도성소의 근본 바탕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합니다. 수도자 봉헌의 바탕이자 근본 조건인 공동체 생활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함께 성찰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수도 공동체의 뿌리

무엇보다 수도 공동체는 그 근본을 삼위일체 하느님께 두고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간에 서로 사랑하며 일치하는 모습, 그리고 그러한 사랑의 일치를 바탕으로 인류를 당신 사랑의 충만함으로 초대하고 함께 사랑의 친교를 나누는 모습, 그것은 궁극적으로 교회 공동체가 닮아야 할 본보기입니다.

수도 공동체의 바탕 또한 이러한 성부, 성자, 성령 간 사랑의 공동체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깝게는 그 본보기를 예수님과 열두 사도들의 공동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도자들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분의 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도 공동체는 사도행전(2,42-47)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상적인 초대교회의 모습을 실현하려고 모인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모여 모두가 각자의 것을 나누며 열렬히 기도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던 공동체, 역사적으로 모든 수도 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초대교회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을 실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왔습니다.


공동체 : 수도생활의 이상이 실현되는 공간

역사적으로 수도자들의 공동체가 처음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4-5세기 무렵입니다.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승인하면서 더는 순교의 월계관을 얻을 수 없었던 신자들은 광야에 나가 개별적으로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은수자들 가운데 특별한 은사가 있는 수도자들이 생겨났으며, 그들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베네딕토 규칙서」, 「바실리오 규칙서」, 「아우구스티노 규칙서」 등 복음정신에 따라 수도 공동체를 운영하고자 하는 다양한 규칙서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수도자들은 공동체를 단순한 인간적인 모임 이상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거쳐야 하는 ‘덕의 수련장’ 또는 ‘사랑의 학교’로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게 하는 못자리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수도 공동체는 수도자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구체적인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서원하는 정결, 청빈, 순명은 수도 공동체를 통해서 교회를 위한, 더 나아가 인류 공동체를 위한 봉사로 확장됩니다.

정결 서원의 본질은 수도자가 온전히 하느님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내딛게 되는 사랑의 첫 걸음은 자신이 몸담고 사는 수도 공동체의 회원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가 얼마나 하느님과 세상을 사랑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랑의 질과 밀도는 공동체의 회원들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가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청빈 서원의 본질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세상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나누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나눔의 정신 또한 그 첫 단추는 공동체 회원들과 나누는 생활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마지막으로 순명 서원의 본질은 장상에 대한 순명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가운데 참된 자유인으로 거듭나는데 있습니다.

수도자가 하느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자신과 함께 사는 수도회 장상들 그리고 회원들과의 관계입니다. 수도 공동체는 이러한 서원생활의 완성을 이루게 하는 못자리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수도자가 지향하는 완덕의 삶이 실현되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유교의 경전 가운데 하나인 「대학(大學)」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저는 진정한 수도자로 거듭나려면 다음과 같은 자세로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수신사공 사교성신의(修身仕共 仕敎成神意)’, 곧 수도자는 먼저 자신을 닦아서 성화하고 공동체를 섬기며 이를 바탕으로 교회에 봉사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와 인류에 대한 봉사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전에 그는 먼저 자신을 성화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수도 공동체에 봉사하고 함께 사는 형제자매들을 섬겨야 합니다.

어느 수도자가 수도자로 잘 살고 있는지는 그가 얼마나 공동체 안에 뿌리내리고 그 공동체 회원들과 더불어 복음적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는지,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건강한 인격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수도자는 공동체 성소를 사는 사람

이렇듯 수도자에게 수도 공동체는 자신의 수도생활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토대입니다.

교회에서 수도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자 이를 수도회의 ‘창립자 정신’에 따라 실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요소가 이루어지는 근본 바탕은 수도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수도자는 ‘수도 공동체 성소’를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수도성소로 부름받은 성소자가 교회가 허락한 정식 수도자로 거듭나려면 자신이 입회한 수도회로부터 그 수도 공동체 회원으로 살 수 있는지를 판별하는 시험기간을 거쳐야 하며, 그 공동체에서 공동체 성소가 있다고 최종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본인이 아무리 하느님을 사랑하고 수도생활에 대한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다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수도 공동체에서 다른 수도자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한다면 그는 수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만일 잘못 식별되어 수도자로 받아들여졌지만 공동체에 큰 해를 끼친다면, 그는 함께 사는 회원들을 위해 자신의 수도성소를 재고해야 합니다. 다른 회원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능력은 수도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축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각 개별 수도자들에게 이 건강한 공동체 감각이 부족하다면, 수도 공동체는 하루가 멀다하고 늘 불화와 갈등 속에서 홍역을 앓는 가운데 마침내 좌초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각 수도회에서는 ‘양성’을 중요시하고, 그 양성과정을 통해 성소자가 수도 공동체에서 다른 회원들과 더불어 조화롭게 사는 가운데 수도성소를 꽃피울 수 있는지의 여부를 엄격하게 보는 것입니다.


건강한 공동체 감각

그렇다면, 건강한 공동체 감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쉽게 말해,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하고 사랑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다른 성격을 지닌 수십 명의 수도자가 사는 수도 공동체에는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도자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을 이겨내면서도 그것을 건강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심성을 지녀야 합니다.

곧, 자신과 더불어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이나 갈등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가운데 주님 안에서 늘 새롭게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심성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진심으로 수도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심성이 필요합니다.

사실, 수도 공동체가 하느님을 몸 바쳐 사랑하는 성인들이나 천사들만 사는 이상적인 조직처럼 보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성격과 견해를 지닌 사람들이 끊임없이 갈등하며 마치 연옥의 고통을 미리 맛보는 것과 같은 생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수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는 그런 상황을 잘 소화하는 가운데 다른 회원들과 ‘더불어’ 수도자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건강한 인성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을 넘어 함께 사는 회원들을 배려하고 끊임없이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들과 더불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교회와 인류를 위해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수도자에게 ‘공동체 생활’은 운명과도 같습니다. 그것은 한 수도자에게 많은 어려움도 주지만 동시에 그가 자신의 개별 성소 그리고 교회와 세상에 대한 봉사를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지지대가 되어줍니다.

결국 수도성소는 그가 속한 수도 공동체 안에서 실현되고, 교회와 인류 공동체에 대한 봉사를 통해 완성된다고 하겠습니다.

* 윤주현 베네딕토 - 가르멜수도회 사제.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현재 가르멜수도회 대구수도원 원장,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저서와 역서를 펴내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5월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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