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월 8일(주일)-연중 5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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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2-06 ㅣ No.587

연중 5 주일 (다해)

 

        이사 6,1-2ㄱ.3-8    1고린 15,1-11        루가 5,1-11

    2004. 2. 8.

주제 : 나는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한 해의 첫 달을 보내고, 우리는 다가올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정한 24절기의 하나이겠지만, 입춘을 지내면서 마음과 집의 단장도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지난 한 주간을 지냈다면 그 사람은 봄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살아있기만 하다면, 봄은 옵니다.  그러나 준비한 사람에게 다가오는 봄과 무작정 기다리기만 한 사람에게 다가오는 봄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야기를 신앙에 대해서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연중 5주일입니다.  연중 주간이라고 정해놓고 그 순서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만, 오늘 우리는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우리들 각자가 가진 신앙의 자세를 돌이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복음과 독서를 읽고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을 생각하셨습니까?  제가 이러한 생각을 했다고 해서 여러분도 같은 생각을 가져야한다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직업이 어부였던 베드로는 고기잡이에 관한한 전문가였을 것입니다.  그는 밤을 새워 고기를 잡다가 소득도 없이 그물을 걷고 있었는데, 고기잡이의 전문가도 아닌 예수님이 잠시 그 배를 사용한 다음 많은 고기를 잡게 한 것을 보고 갑자기 인생의 행로가 바뀝니다.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하던 고기잡이 어부 생활을 집어치우고 사람을 또 다른 어부의 길로 나선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을 변하게 하는 요소는 그렇게 갑자기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기회는 여기에 와 앉으신 여러분 누구에게나 올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 순간이나 기회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내 뜻대로 현실을 해석하고 나서 탓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 때문에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놀라운 체험을 한 것은 이사야 예언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하여 갑작스레 하느님과 천상을 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놀라운 사실을 경험하자 이사야는 자기 생활을 돌이켜보고 삶의 반성이 담긴 소리를 합니다.  “큰일 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 입술이 더러운 사람들 틈에 끼어 살면서 만군의 야훼, 나의 왕을 눈으로 뵙다니.......”  하지만 하느님은 자신의 삶을 뉘우치는 사람의 목숨을 거둬 가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깨달은 이사야는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전하겠다고 나섭니다.  흔히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핑계와 이유를 대고 행동하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엊그제 있었던 부산시장의 힘겨운 선택(=자살. 2/4)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만, 그 사람은 지극히 이기적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그 현실에서 자신만을 위한 길 밖에는 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장은 자기가 남긴 유서에서 ‘자기에게 다가오는 세상의 짐을 모두 감당하기가 어려워 이 길을 택했노라’고 썼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이기적인 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내 이기심을 드러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 있을지 따로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서 안타깝다는 연민의 소리를 듣는 것과 그가 합당한 일을 했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손쉬운 일은 어린아이라도 잘합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은 사람답게 자기 권리를 누리고 살았으면, 신경을 써서 선택하는 삶에서도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 행동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신앙인의 길은 결코 편하거나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못된 소리를 한다고 해서 신앙을 내던지기도 하고, 내 스스로가 선택한 일에 대해서 괜히 화를 내고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으려고도 하며, 신앙인이면서 신앙이 없는 사람으로 행동하는 것을 커다란 권리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일에 통하는 원리하나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풍파에 휩쓸려서 내 의지 없이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 독서와 복음서를 통해서 들은 이사야예언자나 바오로사도나 어부였던 베드로가 보여준 삶의 모습이 우리에게 의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예언자가 편하게 살 줄 몰라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겠다고 자원했을까요?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좋고 아름다운 표현을 찾을 줄 몰라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 팔삭둥이(=똑똑하지 못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라고 했을까요?  물과 고기에 관한한 전문가라고 자부했을 베드로가 무엇 때문에 자신보다 전문가가 아닌 듯이 보였던 사람의 말 몇 마디에 자기 경험과 지식을 모조리 내던지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을까요?

 

세상 삶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기 이외의 다른 대상의 말을 모두 무시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알아듣고 실천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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