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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새로운 세기를 맞는 수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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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8 ㅣ No.13

새로운 세기를 맞는 수도자

 

 

우리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세대로서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시점에 서있습니다. 한편으로 무척이나 가슴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고, 또 그 변화가 옛날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기에 더욱 두려워지기만 합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수도자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생각해 보면 더욱 막막합니다. 우리가 원하든 않든 간에 새로운 천년기는 다가오고 있고, 우리는 그 도도한 시대의 흐름을 거부할 길이 없습니다. 여기서 뒤를 돌아보면서 한탄만 한다고 도움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고, 해결될 것도 없습니다. 무언가 할 일을 찾아야 하고, 새로운 세기를 위해 무언가 공헌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해서 우리 수도자는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옛것에만 매달리려고 하거나 초진보주의적으로 새것만 추구하면서 옛것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자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수도자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시대가 바뀌었고,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수도자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고, 수도자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며, 수도생활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외형에 관한 것이므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이러한 외적인 삶에 관해서 지침을 잘 내려주고 있는 교회의 가르침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입니다.

 

 

변해서는 안되는 것

 

수도자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시대의 표징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교회정신이 필요합니다. 교회정신은 교회의 가르침에 귀기울이고, 그 가르침을 충분히 숙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사회의 요구에 민감하게 귀기울일 때에, 우리는 복음정신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이웃사랑을 제대로 실현하여 나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사회가 너무나 급속도로 변화하고, 가치관이 변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방향을 잃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변해야 할 것은 변하지 않고, 변해서는 안되는 것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진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변하는 것입니다. 복음정신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수도생활은 결코 변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수도자는 내적으로 더욱더 복음적이어야 하고, 그 모습도 복음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수도자는 이 세상의 빛이고, 소금입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빛이 밝음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잃거나 변해서는 안될 첫째 부분은 복음삼덕이라고 부르는 수도정신입니다. 정결과 청빈, 순명 정신은 반드시 우리가 고수해야 할 부분이며, 적극적으로 사랑의 도구로 사용해서 복음정신과 영원한 가치들을 증언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수도정신이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나타나면서 수도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게 정결한 삶을 사느냐, 청빈한 삶을 사느냐, 순명하는 삶을 사느냐를 늘 연구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근간인 정결, 청빈, 순명의 복음권고는 늘 변함없이 남아있습니다. 정결을 통해 최대의 사랑을 행하고, 청빈을 통해 최대의 부를 얻을 수 있음을 알고, 순명을 통해 최대의 자유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수도생활을 통해 아름답고 가치있는 삶, 충만한 삶,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증언하여야 합니다.

 

수도자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 수도자는 세상을 인도해야 하며, 세상의 인도를 받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알고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은 세상의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가르치고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잃거나 변해서는 안될 둘째 부분은 순수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입니다. 우리 나라처럼 종교가 다양하게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많은 경우 믿음의 바탕이 그리스도교적으로 순수하지 못하고 상당히 혼합주의적입니다. 이래가지고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도자로서, 주님의 도구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복음의 토착화는 요원할 것이며, 새로운 세기에 대비해서 무언가를 하고자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도 내 자신을 잘 모르고 믿음의 바탕이 흔들리는데, 어떻게 남을 가르치고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잃어버리고 변해서는 안될 셋째 부분은 참된 인간성입니다. 수도자는 참 인간의 밑바탕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태가 인간성을 말살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더욱 중요하고 절대적인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 가치관, 인격, 성품을 갖추지 못하고서 하느님 사업을 한다고 덤벼들면 들수록 하느님의 사업을 해치는 결과가 될 뿐이겠지요. 만일 생명을 경시하는 세상 풍조에 나 몰라라하고 맡겨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올바르고 건전한 세계관, 인생관이 참으로 필요하고 참 인간으로서 덕목들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합니다. 아니면 수도자는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전락해 버리고 말겠지요. 또 하느님의 사랑은 하나의 구실밖에 되지 않고,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변해야 할 것

 

우리가 버려야 하고 변화되어야 할 부분과 의식은, 한국교회에서 수도자의 권위의식과 세속정신 그리고 부르주아적인 자세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당연히 반복음적입니다.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하나의 병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이기도 합니다. 수도회 자체가 병에 걸려있는 경우이지요. 이럴 때 수도자 개인은 자신의 병을 알아차리기가 무척 힘듭니다. 이러한 것들은 수도자를 직업인으로 변질시키고, 수도생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만들고 시대의 징표를 읽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버려야 하고 변화되어야 할 두번째 의식은, 세상을 가르치고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알고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연히 복음선교와 사회참여 의식은 점점 희박해질 수밖에 없고, 각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소극적으로 구현하려고 하는 경향이 짙어집니다. 사실 수도회마다 고유한 카리스마가 있고, 이 카리스마에는 사회를 개혁하는 요소가 있고, 복음정신에 충실한 정신들이 있습니다. 본연의 카리스마를 심화하고 카리스마에 충실한 사도직 계발에 전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도자는 굳이 새로운 세기가 아니더라도 한결같은 쇄신을 전제로 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새 세기를 앞둔 오늘에 와서는 더욱 그러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온통 큰 변화를 겪으면서 우리를 뒤흔들어 놓더라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켜나갈 줄 알고,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새 세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새로운 세기에는 새로운 영성과 새로운 성인이 필요합니다. 새로움에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영성을 만들어낼 줄 아는 새로운 성인으로 태어나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경향잡지, 1999년 9월호, 백기태 암브로시오(성 바오로 수도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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