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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봉헌생활의 해 르포 봉헌된 삶: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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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05 ㅣ No.519

봉헌생활의 해 르포 ‘봉헌된 삶’ -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본당과 지역사회로 찾아가는 ‘영적 위로자들’



박 베로니카 수녀가 서울 전농동본당에서 새 신자 성경모임반을 진행하고 있다.


수도공동체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사회 곳곳에서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수도자들의 모습은 그 존재만으로도 신자들 신앙생활에 큰 힘이 된다. 수도자들 또한 녹록찮은 세상살이를 딛고 구원 희망을 키워가는 신자들 모습에서 내적 쇄신의 힘을 얻는다.

일반 신자들이 ‘봉헌된 삶’의 모범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장, 바로 본당공동체이다.

한국교회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게 ‘본당 중심의 수녀상’이 자리 잡고 있다. 박해시대 후, 본당을 기반으로 하는 교구들이 세워지면서 한국교회가 수녀회들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요청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한국교회 안에서 ‘본당 사도직’의 요청과 원의에 가장 먼저 응답한 수도회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관구장 신정애 수녀)였다. 세월을 거듭하며 수녀회의 본당 사도직은 이웃들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하고 ‘영적 위로자’의 몫을 확대하는 방향에서 더욱 큰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수녀들의 삶과 영성을 통해, 수도원 울타리를 넘어 지역 사회 곳곳으로 번지고 있는 수도영성, 그 본연의 기쁨을 나눠본다.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가 운영하는 충남 논산 쌘뽈요양원에서 한 수녀가 노인생활자를 돌보고 있다.



이삭 줍는 애덕의 수녀들

수녀회 성소담당으로 활동한 지 10여 년. 세상 밖에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이 어떻게 실현되는지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 싹을 틔웠다.

“저희 수녀회는 본당을 중심으로 가난한 이웃들을 돕고 교육을 지원하는 활동으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선배들 삶의 모범을 저도 따라가고 싶었지요.”

박 베로니카 수녀(옥경·서울 전농동본당)는 본당 소임지로 이동한 첫날, 본당 신자들과 함께 봉헌했던 첫 미사의 감동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활기찬 성가 소리와 정성스럽게 성체를 모시던 신자 한 명 한 명 모습이 박 수녀의 신앙생활에 새로운 자극이 됐다. 본당 사목 협조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신자들이 성경 말씀에 많이 주려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 요즘엔 박 수녀가 가장 신나게 달려가는 곳은 새 영세자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 교리실이다.

김 수산나레아 수녀(옥숙·서울 신당동본당 부설 근화유치원 원장)는 평소 쌓아온 상담 역량을 유치원 학부모 등을 위해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다.

본당 부설 유치원 원장이라는 소임은 전교를 할 수 있는 기회, 냉담교우들을 신앙으로 이끌 기회를 끊임없이 만들어준다. 내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학부모들에게 다가가기에도 큰 부담이 없는 입장이다. 비신자 학부모들도 수도자를 더욱 신뢰하고 먼저 상담을 청하곤 한다. 김 수녀는 특별히 상담을 통해 이웃들과 보다 깊이 있는 만남을 이어가고, 스스로도 낮아지는 기회를 끊임없이 얻을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장 데레지아 수녀(재희·서울 반포4동본당)는 매주 본당 인근 노인요양원을 방문한다. 가장 낮은 자리가 어디인지 시선을 넓히고, 그들 곁에 찾아가 함께 있는 삶이 본당 사도직에서 실현해야할 첫 역할이라고 식별한 덕분이다.

 

말씀으로 무장된 수도자로 거듭나기 위해 성경공부는 필수다.



“본당을 스스로 찾아오기 어려운 이들에게 문을 활짝 열 뿐 아니라, 밖으로 직접 찾아나가 기쁜 소식을 알려주는 역할이 지금 이 자리에서 제가 해야 할 소명입니다.”

장 수녀의 활동을 보면서, 신자들도 너도나도 지역사회 어르신들을 돕는데 나서고 있다. 이웃과 이웃, 특히 가난한 이들과의 다리가 되어주는 삶, 장 수녀가 본당 사도직을 하면서 얻는 가장 큰 기쁨이다.

김 아녜스골롬바 수녀(용자·서울 명동본당)는 초등학생부터 청년들, 학부모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신자들과 만나면서, 그들이 신앙공동체에서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어 하는지를 체험했다. 요즘 김 수녀의 매일매일은 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을 향해 열린 마음 자세를 갖는 시간이다. 오랜 기간 학교 교사로서 활동해온 역량도 본당 신자들과 만나고 상담 등을 제공하는데 큰 힘이 된다.

신 엘리사벳 수녀(정수·서울 명동본당)는 하느님을 찾기 위해 예비신자 교리반을 찾아오는 이들의 모습에서 하느님을 향한 희망을 새로 느낀다. 신앙을 키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을 보며, 더 이상 신앙을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게 됐다. 명동본당의 경우 한국교회의 대표라는 명성과 이미지만으로도 멀리서부터 찾아오는 신자들이 꽤 많은 편이다. 낯모르는 이들이 한데 모여 본당공동체를 일궈 서로의 삶을 나누고 격려와 위로를 전하는 모습은 신 수녀에게도 깊은 성찰 기회를 제공했다.

각 본당 사목현장에서 활동 중인 수녀들은 큰 역할과 자리를 차지하려 하지 않는다. 농부가 수확한 후 미처 거두지 못한 이삭들을 줍는 작은 자세로, 본당 사목자와 평신도들이 미처 채우지 못한 본당공동체의 필요를 채워주고, 공동체에 힘과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이면 족하다.

 

- 한 수녀가 괴산 바오로 공부방에서 아이들과 책을 읽고 있다.



영적 위로자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서원자 534명(2015년 4월 현재) 중 본당 사도직을 맡고 있는 수는 126명에 달한다. 현재 서울관구의 주요 사도직은 본당 전교활동 뿐 아니라 교육과 의료, 복지, 해외선교 분야에서 활발하게 펼쳐진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활동의 뿌리는 본당 주변 여성들을 모아 시작한 교육사도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96년 프랑스 샬트르교구 내 작은 본당 첫 주임을 맡은 젊은 사제가 뿌린 씨앗이었다. 이후 1888년 여성 수도회로서는 가장 먼저 한국에 진출한 후에도 수녀회는 본당 내에 세워진 학교와 시약소에 파견돼 교육과 의료 사도직 등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일제의 사립교육령에 따라 수녀들이 더 이상 학교 교사로서 활동할 수 없게 됐다. 더욱이 본당 설립과 협력자 부족 등의 시대상황과 맞닥뜨리며, 본당 사목 협조자 활동은 보다 중요한 역할이 됐고 지금의 전교수녀 형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우리는 교회의 유익과 이웃의 필요를 위하여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진 애덕의 수녀들이다”(수녀회 총회 문헌 중)는 수녀회 영성을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이 한국교회에도 스며들고 한국교회가 성장과 변화를 이뤄가면서, 본당 사도직 활동에서도 새로운 식별이 요청됐다.

사실 본당 사목 현장에서는 성과주의와 기능주의 등의 잣대로 수도자의 역량을 평가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왔다. 사회 변화에 따라 수녀들에게 보다 전문화된 활동을 요구하며, 평신도의 활동과 견주는 현실도 갈등과 상처를 가져왔다. ‘수녀들은 본당에 가도 할 일이 없다’는 극단적인 평가를 듣기도 했다.

 

젊은이들과 나눔시간을 갖고 있는 수녀들.



간혹 수도자들 스스로도 사제가 1위, 수도자가 2위, 평신도들이 3위라는 교회 구성원들의 미숙한 서열의식에 휩쓸리기도 했다. 겸손하고 우직하게 살아왔지만, 그 이면에서는 기능인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점도 나타났다. 본당 사목자와 평신도들의 필요와 원의에 깨어 있지 못하고, 과거 교회가 수도자들에게 요구했던 기능 등에 연연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수도자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적 빛을 전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릴 실정이었다. 수도자들은 시대적 전환기에 깨어 있지 못해, 그런 오류를 종종 범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수녀회는 이러한 위기가 바로 죽음을 넘어서 부활을 얻는 파스카 영성에 새롭게 도전하는 기회라고 강조한다. 안정되고 편안하기까지 한 자리, 일종의 특권이 되어버린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서 수도자 본래의 삶, ‘복음의 기쁨’을 살아내는 ‘존재적 증거자’로서 교회에 머물 기회가 주어졌다는 말이다. 특히 ‘봉헌생활의 해’를 지내며 복음삼덕에 보다 충실할 수 있도록, 더욱 섬세한 영적 감각을 키우는데 최우선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결의도 다졌다.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관구장 신정애 수녀는 “‘모든 이의 모든 것’으로 교회와 이웃의 필요에 응답하는 과정이 더 이상 기능인의 모습이 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말씀으로 무장해 영적 위로를 전하고, 가난한 이들을 직접 찾아가 함께하는 것이 이 시대 수도자들이 실천해야할 대표적인 몫”이라고 역설했다. ‘복음의 기쁨’을 사는 존재 자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 수녀회는 최근 몇 년 동안 말씀으로 더욱 단단히 무장된 수도자를 양성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수녀회 모든 공동체가 매일 묵상하는 렉시오 디비나를 ‘예수님의 얼굴을 찾아서’라는 이름의 말씀노트에 기록하며 마음에 새기고 있다. 본당으로 파견되는데 가장 필수적인 역량도 ‘말씀’을 충실히 사는 모습이라고 조언한다.

또한 수녀회의 대표적인 영성인 겸손과 단순성, 새로운 위기에 적극 대응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성을 실현할 때 고유한 수도영성이 더욱 활짝 꽃 필 것이라고 전한다.

“성모님의 마음, 바오로의 열정으로! 수녀들은 동정 마리아를 그들의 보호자로 삼고, 사도 바오로를 본받아 그리스도 중심의 영성과 파스카 영성을 산다.”

 

[가톨릭신문, 2015년 5월 3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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