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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상파울루: 성모님과 함께 이룬 브라질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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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30 ㅣ No.174

[해외 한인 공동체 소식] 브라질 상파울루 - 성모님과 함께 이룬 브라질 한인성당

 

 

천주교 브라질 한인본당은 초기 영농 이민자들 가운데 교우들을 중심으로 1965년 40여 명의 신자들이 일본인 요시무라 신부님을 모시고 첫 미사를 봉헌하면서 출발하였다. 어느 곳에서나 이민 초기의 어려움들은 많겠지만 우선 말이 통하지 않아 겪는 어려움이 가장 컸다. 그럼에도 서로 의지하여 어떠한 어려움도 이길 수 있도록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며 신앙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또한 이웃 원주민들과도 화목하게 지내며, 강한 의지로 어떤 일에도 근면 성실히 임함으로써 한국인의 좋은 이미지를 남기도록 노력하였다. 이민자들 앞에는 늘 어느 나라 사람인지가 따라붙기에,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또 한민족으로서 긍지를 인정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1966년 가톨릭 농업 이민자들이 도착하면서 교우 가정 수가 늘게 되었다. 인근 원주민 성당에서 함께 미사를 드리며 공동체를 이루어갔지만 농가 환경은 한국 사람들이 정착해 있기에는 너무 열악했다. 그래서 대부분 영농 정착을 하지 못하고 흩어져 대도시인 상파울루와 다른 도시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민 초기의 어수선한 환경에서도 남아 있는 교우들을 위하여 폰타 그로사 교구에서 농장 성당에 매주 신부님을 파견하여 한인 교우들만을 위한 미사를 드리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어로 진행되는 미사나 강론 말씀은 한인 교우들에게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대부분의 교우들이 농장을 떠나 상파울루로 이주하면서 신앙의 중심도 자연스레 그곳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상파울루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사용하는 한 성당을 빌려 미사를 봉헌했다.

 

 

성장하며 성화되는 본당

 

힘겹고 어려웠던 십여 년이 지난 1973년, 교우들의 오랜 소망이 이루어졌다. 부산교구 함영상 비오 신부님과 제 율리아나, 김안젤라 수녀님이 파견되어 오신 것이다.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국 교회 초기, 신자들 스스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각고의 노력 끝에 북경에서 파견되어 오신 신부님을 모시고 미사를 봉헌했을 때의 그 기쁨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한인 공동체는 교회법상 본당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소수민족의 한 공동체로만 인정되었다. 이에 1975년 5월 함 신부님께서는 당시 상파울루 대교구장이셨던 에바리스토 추기경님을 찾아뵙고 한인 공동체 현황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하여 교회법상의 본당으로 인준을 받았다. 함 신부님도 추기경님께 본당 주임신부로 임명장을 받고 창립 본당의 명칭을 ‘여왕이신 마리아 한인성당’으로 명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본격적인 한인들만을 위한 성당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다. 함 신부님은 성모님의 도움으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니, 한인성당 건립으로 성모님께 자녀로서 마땅한 효성을 드리자고 신자들을 독려하였다. 모두의 정성으로 창고와 공장으로 쓰던 건물을 사서 보수 공사를 하였다. 어느 성당 못지않은 훌륭한 성전으로 꾸며진 그곳에서 본당 주보이신 성모님을 모시고 봉헌한 첫 미사는 온 신자들의 정성과 감사의 눈물이 어우러진 큰 축제의 제사였다.

 

이민 초기 불과 몇 세대의 가족들로 시작했던 신앙 공동체가 지금은 3,800여 명이 넘는 공동체로 큰 성장을 이루었다. 초대 함영상 신부님께서 1983년 3월 귀국하신 뒤 네 분의 주임신부님의 사목이 끝나고, 1998년 대전교구 김종국 바르나바 신부님께서 부임하셨다. 교우 수가 늘어나 새로운 성당 건축의 필요성을 느끼신 신부님은 교우들과 합심하여 ‘묵주기도 백만 단 봉헌’ 운동을 시작으로 새로운 대지 구입과 성전 건립 계획을 추진하셨다.

 

이렇게 처음도 성모님의 도움으로 시작된 한인본당은 또다시 성모님의 크신 도움으로 한인촌을 이루는 봉 헤치로(Bom Retiro)에 현 성당이 위치한 부지(6,000㎡)를 사서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성전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2004년 5월 9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새 성전 봉헌미사를 드렸고, 이러한 기쁨을 허락하신 성모님께 모든 교우가 합심하여 4백만 단의 묵주기도를 봉헌하였다.

 

 

드넓은 땅 브라질의 중심에 우뚝 서서

 

공동체는 본당의 역사와 이민 초기의 엄청난 어려움 속에서도 성실하고 굳은 믿음을 지키며 선조들의 얼을 이어받은 후손들임을 기록하여 남기려고 500여 쪽에 이르는 본당 35년사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나간 세월을 뒤돌아보며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함께하셨음을 기억하고 되새기며 그 기쁨을 나누려고 해마다 5월에 본당의 날을 거행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우리 본당에서는 3명의 본당 출신 사제(이만용 요한, 유창선 요한, 구향림 다니엘)와 1명의 수도자(체칠리아 이네스 수녀)를 배출하였다. 2010년 12월 27일에는 5개의 공소 가운데 하나인 캄피나스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어 분가시키는 기쁨도 맛보았다.

 

특히 3년 남짓 우리 본당 보좌신부님으로 계셨던 안재현 사도 요한 신부님께서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셔서, 지난 2월 27일 캄피나스 대교구장이신 부르노 주교님 집전으로 ‘브라질 하상 성당’ 설립미사를 봉헌하였다.

 

현재 브라질 성 김대건 성당에는 네 곳의 공소가 있는데, 가깝게는 400㎞에서 멀게는 1,100㎞ 정도 떨어져있다. 1년에 두 번 정기방문(판공)에다 올해부터는 성모의 밤과 특강을 위한 두 번의 정기방문이 추가되는데, 여름과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성경 담당 수녀님께서 공소 신자들을 위한 성경 강의를 해오고 있다.

 

현재 본당은 이윤제 베드로 주임신부님과 두 분의 보좌신부님, 다섯 분의 수녀님과 함께 회장단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위령회는 초상이 있을 경우 연도부터 장례미사, 장지 수행 등 모든 일을 맡아 봉사하여 교포 사회에 큰 모범이 되고 많은 전교가 되기도 한다.

 

본당의 레지오 마리애도 하늘의 문 꾸리아 안에 22개의 쁘레시디움이 열심히 활동하며, 안나회, 성모회, 성가대, 신망애 장학회 등 여러 단체도 충실히 일하고 있다. 본당에서는 연중행사로 바자회를 열어 어려운 이웃 원주민과 양로원 등 필요한 곳을 찾아 도움을 주기도 한다.

 

또한 격년제로 교포 사회의 70세 이상 되시는 어르신 800여 명을 모시고 효도잔치를 하고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모든 교우가 단결하여 성장할 수 있었던 몇십 년의 세월은, 오직 주님의 안배와 성령의 역사하심과 여러 신부님과 수녀님의 지도와 노고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미의 광활한 땅 브라질의 중심에 드높게 우뚝 세워진 브라질 한인성당의 위상은, 우리의 후손들에게 신앙의 보금자리로 길이 자리매김하리라 믿는다.

 

성령으로 하나 되어 본당 주보이신 성 김대건 신부님을 본받으려는 한인공동체에 늘 넘치도록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 박영신 클라라 - 브라질 상파울루 성 김대건 성당 신자이다.

 

[경향잡지, 2011년 4월호, 박영신 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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