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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부활과 희망: 다시 시작하기에 딱 좋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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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4-23 ㅣ No.103

[경향 돋보기 - 부활과 희망] 다시 시작하기에 딱 좋은 시간


마흔세 살이 되었을 때, 나는 내 삶에 지쳐있었다. 평범함에 실망했고, 의미 없는 일상적 반복에 숨이 막혔고, 미래 없음에 좌절했다. 먹고사는 것은 그럭저럭 해결되었으나 무엇을 위해 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삶은 표류하는 배 같았다. 수단은 있으나 목적이 없는 삶, 그나마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의 수단인 밥벌이마저 위협받고 있을 때 얼마나 당황하게 되는지를 말이다. 나는 혁명이 필요했다. 그 나이는 혁명하기 딱 좋은 나이였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푸른 바다를 찾아 떠난 처녀 이야기

어느 마을에 젊은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푸른 바다를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마침내 집을 떠나 바다를 찾아가게 되었다. 일렁이는 넓은 바다를 그리며 계곡의 조약돌 위를 쏜살같이 흐르는 작은 시내를 따라 긴 여행을 떠났다.

그 처녀는 여행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잠깐 쉬었다 가라는 사람도 있었고, 더 이상 계속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처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목표가 있었기에 그녀는 계속 갔다.

어느 날, 처녀는 몹시 지친 상태로 큰 사거리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은 높은 산을 앞에 두고 네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이 처녀는 어느 길이 바다로 가는 길인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길이 다 불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오랫동안 그곳에 앉아있었다.

도시로 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함께 가자고 했으나 그녀는 거절했다. 가까운 숲으로 가는 외로운 방랑자가 함께 가자고 했으나 그녀는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가고 싶은 곳은 바다이지 숲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몇 주가 지나고 계절이 바뀌었지만 그녀는 그 사거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떤 농부를 따라 작은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농사일을 도와주며 그곳에서 몇 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 처녀의 가슴은 바다로 가득 찼고 바다로 가고자 다시 네 갈래의 길이 만나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그곳에서 서성이며 어찌할 바를 모르다 세월이 흘러 또 다른 마을로 물건을 팔러 가는 한 아낙을 만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아낙을 따라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그 마을은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서 바지와 셔츠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에는 여전히 바다를 향한 그리움이 남아있었다. 더 이상 그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그 처녀는 길을 떠나 그 사거리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이제는 그 처녀에게 아주 친숙한 곳이 되어버린 사거리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 어느 길이 바다로 가는 길인지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처녀는 중년이 되고 이내 머리에는 흰 머리카락이 늘어갔다. 그녀의 등도 서서히 굽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침내 큰 사거리가 갈라지는 앞에 우뚝 선 산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 산에 오르면 어느 길이 바다로 가는 길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높은 산은 이미 할머니가 된 그녀에게 쉬운 길이 아니었다. 가파른 능선을 따라 점점 더 높이 고독한 길을 올랐다.

산꼭대기의 밤은 너무도 추웠다. 어쩌면 산꼭대기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 올랐다. 그리고 탈진한 몸으로 드디어 산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그녀는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에 압도되었다. 오랫동안 산정에 앉아 저 밑에 자신이 출발한 커다란 사거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부터 산의 좌우로 네 갈래의 길이 굽이굽이 갈라져 나가고 있었다. 하나는 대도시를 향해 뻗었고, 또 한 길은 숲속으로 나있었고 , 다른 한 길은 그녀가 농부를 도와 농사를 지었던 작은 마을로 이어졌다. 그리고 나머지 한 길은 그녀가 바지와 셔츠를 만들어 팔던 시장이 있는 그 마을이었다. 이제 노파가 되어버린 처녀는 산정에 서서 몸을 떨었다. 네 갈래 길은 산을 에둘러 나가 넓은 평원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 아득히 멀리 반짝이는 수평선이 펼쳐진 바다까지 곧장 이어졌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다시 사거리로 내려갈 힘이 없었다. 아무 길이나 골라 끝까지 갔었더라면…. 하지만 그녀는 아무 길도 선택하지 않았고, 어떤 길도 끝까지 가보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그렇게 그리던 그 바다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보라 일으키는 바닷물에 온몸을 담그고 그 바다 냄새에 흠뻑 빠져드는 일은 평생 단 한 번도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꿈이 이루어지려면


이 이야기는 슬프다. 독일의 롤란트 퀴블러라는 작가의 ‘네 갈래 길’이라는 동화를 줄이고 다시 각색한 것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점에서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나는 20년 동안 직장인이었다. 그러다가 마흔세 살의 어느 날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가가 되었다. 마흔여섯에 회사에서 나와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이 길은 유쾌하고 꽃이 많고 꿀이 달콤한 길이었다. 정답게 속살거리며 흐르는 개울도 많고 무엇보다 이야기가 많은 길이었다. 점점 갈수록 이 길이 즐겁다. 나는 내 삶이 기쁨으로 충만한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면 곧 그런 기쁨으로 내 삶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끼곤 한다.

봄이 있는 이유는 인생을 다시 시작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꿈이 이루어지려면 도중에서 그만두지 말 일이다. 이야기 속의 처녀처럼 다시 그 사거리로 되돌아와 의심하고 서성이느라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끝까지 가자. 끝에서 길들은 서로 만나게 되고 그 길은 우리가 바라는 곳으로 인도할 것이다.

봄이 다가오는 동안 나는 두 장의 편지를 쓴다. 하나는 봄처럼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또 한 장은 인생의 가을이 깊어가는 분들게.


청년들에게 쓰는 편지···

청춘은 시시한 위로를 원치 않습니다. 청춘은 위대한 힘이니까요. 누구도 이때처럼 푸름으로 빛난 적은 없으니까요.

꿈을 꾸세요. 꿈이 현실 속으로 침투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현실만이 현실이 아닙니다. 견고한 현실의 틈을 깨고 그 사이에 아름다운 꿈이 하나 자라게 하세요. 싱싱한 꿈, 그것 또한 구체적 현실이니까요.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을 찾아가세요. 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지금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요리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지금 요리를 시작하세요. 꿈은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곳에서는 결코 꽃을 피워낼 수 없답니다. 꿈이 있는 곳, 그곳으로 가세요. 그곳에서 몸도 마음도 영혼도 모두 거세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활용하세요. 가장 단단한 곳에 기둥을 세우세요. 강점 위에 모든 것을 건설하세요. 그것이 튼튼한 삶을 만들어내는 방법입니다. 자신의 강점을 알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먼저 강점이 아닌 것은 모두 버리고, 남은 것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몇 개만 골라 집중 계발하세요. 그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면 능히 유쾌하게 먹고살 만합니다.

세계의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사물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이해하세요. 자연을 대하는 법, 아이들을 교육하는 법, 생각하는 법, 음식을 만드는 법, 말하는 법, 심지어 숨 쉬는 법의 차이를 감지해 보세요. 한 분야에서 성공한 훌륭한 아이디어를 다른 분야에 적용하여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배우세요. 사람 사는 다양성을 배움으로써 자신의 벽을 넘어서는 가장 좋은 법은 여행입니다. 더욱이 여행은 즐거운 일이고 배낭을 메고 세계를 누빌 시간은 아마 이때가 최고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돕게 하세요. 그들이 나를 도울 수 있도록 그들을 먼저 도와주세요. 좋은 동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대신 늘 자신과 경쟁하세요. 그러면 다른 사람과의 적대감을 줄일 수 있답니다. 자신에게 또 동료에게 오랫동안 정성을 다하세요. 이것이 휴먼네트를 만드는 비결입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무궁무진한 재료와 힘이 있습니다. 마치 눈부신 빛과 같습니다. 이것을 찾아내어 직업화시킬 수 있다면, 만일 지금 하는 일이 존재의 핵심을 이루는 가장 나다운 일이라면, 세상은 살 만한 것이 되고, 기쁨에 가득 찬 나날이 될 것입니다.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작정 미래로부터 성공을 빌려오지 마세요. 거짓 희망은 우리를 속입니다. 판도라의 상자 속에 담겨있던 모든 불행들과 함께 섞여있던 것이 바로 ‘희망’이었던 것을 기억하는지요.

다만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믿지 마세요. 그것은 미래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차용해 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미래가 와도 그 미래 역시 텅 비어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방황하세요. 모색하세요. 실패하세요. 그러나 두려워 마세요. 오늘에 걸려 넘어진 사람은 반드시 오늘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2막 인생이 깊어가는 분들께 쓰는 편지···

노화는 ‘갑자기 찾아와 사람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야생에서는 늙은 동물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전에 잡아먹히거나 병들어 죽게 마련이지요. 늙기 전에 죽음이 늙음을 처단해 버리는 것이지요. 자연을 떠나 보호받는 지대로 옮겨온 동물들만 늙습니다. 인간이 늙듯이 그것들도 늙습니다. 동물원마다 백발이 된 곰이 있고 엉덩이 관절에 문제가 생긴 말이 있고 관절염에 걸린 늑대가 있습니다.

늙어가는 것은 개인만이 아닙니다. 모든 민족이 늙어가고 모든 사회가 늙어갑니다. 자연이 문을 닫는 순간 사회도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아 사회는 인생행로에 개입하여 노화된 인간을 달리던 코스에서 축출합니다. 조직의 간부급 직원들은 그들에게 드리운 의심을 뒤집어엎으려고 몸을 혹사하여 충성을 바치지만 더 높은 곳에 있는 경영자들은 나이 든 사람은 일을 잘하기에는 너무 허약하고, 너무 느리고, 너무 잘 잊는다고 의심합니다. 그렇게 퇴직한 뒤 우리는 갑자기 늙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인간은 인간을 수리할 수 있습니다. 마치 자동차를 수리하듯이 말입니다. 가장 독창적인 생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이것을 이렇게 비유합니다.

“자동차가 낡으면 버려야 하지만 우리는 돈을 들여 자동차의 운명을 연기시킨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도 우리 자신을 수리하려고 노력한다. 분자에서 조직을 거쳐 전체 기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원에서 수리는 이루어진다.”

바로 이 수리 과정을 통해 인간은 참 신기한 법칙을 알아내게 됩니다. 1993년 「네이처」지는 천문물리학자인 리처드 고트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이 연구에서 “충분히 오래 산 것은 그렇지 못한 다른 것들보다 더 오래 살 확률이 점점 더 높아진다.”고 주장합니다. 80세를 산 노인은 90세를 살 가능성이 높아지고, 90세를 산 노인은 100세를 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고령에 이르러 죽을 위험이 줄어들고 다시 더 창의적이고 더 건강해질 확률이 늘고 있다는 뜻입니다.

두뇌연구가 볼프 징거 교수는 성인들의 두뇌도 학습이나 자기 암시, 기억력 훈련, 꾸준한 두뇌 사용을 통해 아주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합니다. 노인이 되어도 외부세계와의 정보교류의 능력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두뇌에 아주 효과적인 마이크로 외과수술을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령에 이르면 뇌파는 느려집니다. 그러나 그 약점을 경험이 대신할 수 있습니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모르는 지름길을 찾아냄으로써 젊은이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노화에 대한 바른 인식입니다. 젊다고 느끼는 것은 자기기만이 아닙니다. 젊고자 하는 의지는 살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삶의 달력을 개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생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시인인 고트프리트 벤은 이렇게 힘차게 말합니다.

“창조적 시대는 손자를 생각하지 않는다. 창조적인 시대는 자신의 내실을 위해 더 많은 표현과 형태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부족할 때만 손자를 들먹인다.”

모든 노인은 손자와 손녀를 끔찍이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인생으로 해낼 수 있는 것들에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쓰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노인이 사회적 다수가 되는 노령화 과정에서 노년을 창조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문화를 가진 개인과 사회가 성공하게 될 테니까요.

희망이 우리를 부를 때, 힘을 내 끝까지 가세요. 그 끝에 우리가 바라던 인생의 아름다움이 있을 것입니다. 끝까지 간 사람들에게만 길은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 구본형 바오로 -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소장. 저서로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시야, 너는 참 아름답구나!」 등이 있다. 기업의 CEO들이 뽑은 ‘최고의 변화경영이론가’로 활발한 강연을 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4월호, 구본형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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