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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종이책 읽기: 높은 데서 사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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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7-12 ㅣ No.171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높은 데서 사슴처럼



오랜만에 다시 읽은 「높은 데서 사슴처럼」은 지난 1월 영신수련 피정 중에 보았던 장면하나를 다시 기억하게 해주었다. 눈이 많이 온 날 무엇엔가 끌리듯 산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눈 쌓인 제법 높은 언덕에 눈을 맞으며 날랜 다리로 춤추는 노루들을 보았다. 천국이 있다면 ‘여기다.’라고 생각했었다. 바로 그 장면이 다시 내 눈앞에 펼쳐지며 내 영적 여정을 돌아보게 하였다. “하느님은 내 다리를 암사슴의 다리마냥 날래게 해주시고 높으나 높은 곳에 나를 세우셨나이다.”(시편 17,34 : 하바 3,19)

이 책은 우리에게 건네시는 영원한 목자이신 주님의 ‘높은 데서 살라.’고 하는 초대를 담고 있다. 수많은 어려움과 장애들, 고통과 슬픔을 벗삼아 일상의 삶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매순간 체험하고 있으리라. 그 높은 데, 그 곳은 그야말로 완전한 사랑이 온전히 드러나 자신 안에 있는 두려움이 아무것도 아님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니 언젠가 누구나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그곳을 향해 떠나겠다는 결심으로 목자의 손을 잡을 때 이미 시작된다.

이 책의 저자인 한나 허나드는 우리 안에 있는 여러 감정들, 특히 부정적인 감정들을 의인화해서 자신의 창조주인 목자를 따라서 사는 삶, 보다 드높이 초대받은 영적인 삶에 대한 갈망과 그 영적 여정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와 깊이는 다를지언정 내면에 깊이 숨어있는 ‘두려움’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사는 곳은 수치의 골짜기이다. 두려움은 사실 많은 양떼를 기르는 목자 밑에서 일했는데 친구이자 동료인 자비와 평화와 함께 떨림의 마을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면서 목자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두려움은 자신의 외모의 결함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혼자서 고민하며 창피하게 여겼다. 그녀는 한쪽 다리가 몹시 짧아 절뚝거리고 입이 비뚤어져서 보기 흉할 뿐만 아니라 일그러진 표정에 말도 어눌하였다. 이런 자신의 결점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목자의 다른 일꾼들처럼 아름답고 우아하고 튼튼한 다리를 갖고 일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두려움은 무서움의 가문에 속해있고 친척들은 불길한 예감과 우울함, 심술궂음, 비겁함 등이다.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두려움에게 벌어졌는데 가문의 수장인 무서움이 그토록 싫어하는 비겁함과 결혼하라고 강요한 것이다. 평생을 두려움 속에 사는 것도 힘든데 비겁함과 한 가족이 되어 그 친척들을 지척에 두고 사는 삶을 상상해보며 그녀는 절망에 빠져든다. 그러다가 목자와 늘 만나던 아름다운 연못가에서 목자를 만나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이 수치의 골짜기에서 달아나 저 높은 데로 갈 수 있다면!”하고 말하자마자 목자는 “네가 이런 생각을 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고 초대한다. 두려움은 희망도 잠시, 다시 절망에 빠진다. 자신의 다리는 어렵고 위험한 가파른 산을 지나 높은 데로 가는데 장애만 될 뿐이라는 것을…. 목자는 그런 그에게 길동무를 소개한다. 바로 쌍둥이 자매인 슬픔과 고통이다. 이미 목자는 사랑의 씨앗을 그의 마음에 심었고 그 씨앗은 심겨진 순간부터 고통을 느끼게 했지만 슬픔과 고통의 손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되도록 떨어져서 걸었는데 비겁함이 쫓아오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낮추어서 아래로 내려가는 골짜기의 시냇물의 즐거운 노래, 발아래 융단처럼 피어있는 아주 작은 꽃들은 몸을 낮추어야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 그리고 목자가 알려주는 몇몇 사람밖에 이해 못하는 위대한 진리는 인간의 영혼 속에 가장 아름다운 것, 마음속에서 사랑의 내적 응답을 할 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조용하고 평범하고 숨은 삶이라는 것이다. 높은 데가 저기 빤히 보이는데도 광야와 사막의 험난하고 지루한 길을 지나야 하고, 때로는 돌아가고, 때로는 다 올라간 길을 도로 내려가던 그 외롭고도 고단한 긴 여정의 길, 탈곡된 밀알이 곱게 빻아져 가루가 되어 빵이 되는 과정, 가장 귀하고 간택된 보석들은 이집트의 용광로에서 단련되고 정화된 것들임을 발견한다.

그의 친척들은 집요하고 고통스럽게 그를 절망에 빠트려 다시 수치의 골짜기로 데려가려고 틈만 나면 그를 경멸하고 모욕한다. 정말 견디기 힘든 도전자들이었는데 자존심, 씁쓸함, 원망과 자기 한탄이었다. 그는 그때마다 거기에 머물지 않고 목자를 소리쳐 불렀다. 수치의 골짜기, 상처의 절벽, 상처의 산, 험담의 산, 증오의 산, 위험과 고난의 숲을 거칠 때마다 제단을 쌓고 자신을 바쳤다. 그러나 그동안의 모든 노고를 송두리째 포기해야 하는 잃음의 골짜기에서도 과연 목자를 따라나설 수 있을까? 정말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까지 들지만 그는 거기서 자기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목자가 약속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목자 자신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깨닫게 된다. 고통의 한 단계를 지날 때마다 매우 작은 아름다운 꽃을 만나는데 그 이름은 ‘기쁘게 받아들임’과 ‘사랑으로 참아냄’이었다. 그리고 그는 기름부음을 받고 드디어 산 위의 무덤에 자신을 놓았다. 그리고 모든 인간적인 욕망과 본성적인 사랑으로 배배틀린 자신을 보았을 때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그것을 뽑아낼 수 없음을 깨닫지만 더 이상 절망은 그의 것이 아니다. 제단에서 사제의 도움으로 스스로 제물이 되고 봉헌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토록 바라던 새 이름을 받게 된다. 이제 두려움이 아니라 은총과 영광인 것이다. 슬픔과 고통도 기쁨과 평화라는 이름을 받게 되고 은총과 영광은 자기 친척들을 연민으로 바라보고 사랑으로 말을 건넬 수 있는 용기로 다시 태어난다. 마치 그의 목자가 그가 높은 데서 살게 된 모습으로 늘 그를 대하고 사랑해주었듯이. 그리고 진정으로 아가서가 말하는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변화된 두려움을 보면서 읽는 내내 우리가 빠질 수 있는 모든 유혹의 종류들, 약함들, 그리고 한도 끝도 없는 목자의 사랑의 방식과 우리를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단련시키는 과정은 희망으로 부풀게 한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목자를 믿는 것이고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고통은 목자를 따르는 길에서 사랑으로 변화되는 소중한 재료이자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는 진리가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

[월간빛, 2013년 7월호, 김계선(에반젤리나 ·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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