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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다른 종교를 존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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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10 ㅣ No.1223

[복음살이] “다른 종교를 존중합시다”



2014년 8월18일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명동성당에서 타종교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생은 혼자 갈 수 없는 길”이며 “우리는 형제들이다. 서로 인정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가자”고 종교 간의 대화와 화합을 강조하셨습니다. 교황님은 또한 지난 1월15일 스리랑카 방문을 마치고 필리핀으로 향하는 항공기 안에서 이슬람 과격 집단의 테러와 관련하여 “신의 이름으로 학살 행위를 자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종교를 모욕하거나 조롱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함께 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타종교에 대해 개방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환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는가?’라는 오랜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거나, 구원이 없다는 완고한 태도를 여전히 고수하는 보수주의자들도 존재합니다.

가톨릭교회는 타종교에 대해 공식적으로 어떤 입장인지, 그리고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고 타종교를 존중해야 한다면 선교활동은 불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 대해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개신교 교단에서는 아직도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입장을 지니고 있고, 가톨릭교회도 30~40년대까지는 그런 입장을 공식적으로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이미 하느님을 알지 못하더라도 사랑을 실천하고 선한 삶을 산 이들의 구원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었고, 1962~65년에 개최되었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결정을 통해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도 구원될 수 있다’는 것과 ‘타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는 것이 공식적인 교회의 가르침으로 인정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도 구원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 <계시헌장> 16항은 유다인도 하느님이 주신 선물과 소명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구원 계획은 창조주를 알아 모시는 사람들을 다 포함하며, 그 가운데에는 무슬림도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유다인 뿐 아니라 무슬림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간직하고 있고 유일하신 하느님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어둠과 그림자 속에서 미지의 신을 찾고 있는” 사람들도 하느님과 가까이 있다고 말합니다.


구세주께서 모든 이들을 위해 오셨고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고 계시기에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이전에 살았던 모든 인류, 또는 그리스도를 알 수 없었던 우리나라의 선조들을 포함한 비그리스도교 문화의 사람들 중에서 진실하게 양심을 지키며 사랑의 삶을 살았던 선한 이들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 있음을 분명합니다. 


계시헌장은 같은 항에서 “하느님의 섭리는 자기 탓 없이 아직 하느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사실 그들이 지닌 좋은 것, 참된 것은 무엇이든지 다 교회는 복음의 준비로 여기며, 모든 사람이 마침내 생명을 얻도록 빛을 주시는 분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타종교 안에서 발견되는 좋은 것들은 곧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총이며 참된 복음과 영원한 생명을 위한 준비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은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20세기 신학자인 칼 라너 신부(1904-1984)의 ‘익명의 그리스도론’ 이론을 공의회가 수용하였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칼 라너는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원하신다”(디모1서 2, 4)라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신학을 전개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하느님을 지향하도록 창조되었고, 인간이 자신의 완성을 위해 행하는 모든 행위 이면에는 하느님의 능력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무의식중이더라도 하느님의 자기 전달인 ‘은총’ 안에서 살고 있고, 그것을 수용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긍정하는 신앙의 행위가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자신을 수용하고 타인에게 자신을 내어주면서 그것을 가능케 하는 하느님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웃에게 향하는 사랑은 하느님께 향하는 사랑과 다르지 않는 신앙의 행위가 됩니다. 라너는 사랑을 실천하는 이는 비록 그리스도를 몰랐더라도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 안에서 그리스도를 함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므로 그를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인류는 하느님의 자녀

그렇다면 굳이 그리스도교로 이끄는 선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계시헌장> 17장은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상기시키며 선교가 교회의 우선적인 사명임을 강조합니다. 교회가 선교활동을 하는 이유는 진리의 선포를 통하여 각 민족들의 고유한 의례와 문화에 있는 선한 것을 보존할 뿐 아니라 이를 치유하고 승화시키며 완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교령> 7항은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만 아시는 길로, 자기의 탓 없이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끄실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선교활동은 곧 하느님 뜻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하느님의 한 백성으로서 형제적 화합을 이루기를 원하신다고 말합니다. 


<비그리스도교 선언> 2항에서 공의회는 각 종교가 지니고 있는 긍정적인 것을 언급하면서 “가톨릭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고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어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의회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선포하면서도, “지혜와 사랑으로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과 대화하고 협력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을 증언하는 한편, 다른 종교인들의 정신적 도덕적 자산과 사회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증진”하라고 권고합니다.


결론적으로 타종교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태도는 하느님은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며 모든 이를 사랑하시고 구원의 길로 초대하시기 때문에, 주님 구원의 은총은 가톨릭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교회가 적극적인 선교를 중요시하는 것은 단지 세례를 주고 교세를 늘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만백성이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함으로써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며, 동시에 이를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인류의 일치와 참 평화를 이루게 하려는 지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비그리스도교 선언> 5항에서 모든 인류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보편적 형제애를 강조하며 “인종이나 피부색, 신분이나 종교를 이유로 한 온갖 인간 차별과 박해는 그리스도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이를 배척한다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3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가톨릭대학 종교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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