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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검은 사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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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1-24 ㅣ No.909

[영화 속 신앙 찾기] 검은 사제들



우리 본당 신부님에게 ‘검은 사제들’ 영화를 보셨는지 물어보았다.

신부님 : 그건 너무 비현실적이야.

나 : 좀 그렇죠. 크크크.
그런데 어떤 부분에서요? 구마의식이나 뭐 그런 거요?

신부님 : 강동원 얼굴로 사제를 할 리가….

나 : 크크크.

필자가 가입한 밴드에 올라온 글이다. 이 글을 읽고 매우 재미있어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영화 ‘검은 사제들’이 제작된다고 했을 때,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배우 강동원이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예고 포스터’가 공개되었을 때 역시 주관심사는 ‘사제복을 입은 강동원’이었다. 누리소통망 서비스(SNS)에서는 너나없이 사제복이 그리도 잘 어울리는 강동원에 대한 찬사가 빗발쳤다. 강동원에게 사제복을 입힌 것은 ‘신의 한수’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강동원은 의도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가톨릭과 무관하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 그는 공지영 작가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송해성 감독, 2006년)에서 사형수 윤수를 연기해 사형제도에 대한 비판여론을 환기시켜 주었다. 이 작품은 제16회 가톨릭 매스컴상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8년 뒤, 제24회 가톨릭 매스컴상에서 ‘두근두근 내 인생’(이재용 감독, 2014년)이 영화부문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는데, 강동원은 이 영화에서 철부지 착한 아빠로 출연해 관객의 눈시울을 붉히게 하였다.

그 강동원이 ‘검은 사제들’(장재현 감독, 2015년)에서는 부제품을 받은 성직자로 등장해 초현실적 상황에 직면해서 의심과 불안, 혼돈과 두려움에 사로 잡히다 사악하고 위험한 악령에 맞서 이를 극복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편영화 ‘12번째 보조사제’의 확장판

‘검은 사제들’은 장재현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그가 2014년에 만든 26분짜리 단편영화 ‘12번째 보조사제’는 전주국제영화제, 가톨릭영화제 등에서 상영하여 호평을 받았고, ‘검은 사제들’의 동기가 되었다.

‘12번째 보조사제’에서도 구마의식을 하는 신부(박지일)와 보조사제(이학주)가 등장하는 기본 구성은 같다. 다만 보조사제의 마음속 깊은 곳에 드리워진 어둠, 그 두려움의 원인이 군대 폭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사실 이러한 설정이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더 개연성 있고 설득력 있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군대 폭력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자행되며 그 때문에 젊은 병사들이 어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잘 봤지 않은가?

선임병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구타당하던 악몽 같은 기억을, 부마자의 악령이 불러내자 보조사제가 두려움에 싸여 뛰쳐나가는 설정은 그래서 좀 더 현실적이다.

‘검은 사제들’은 이 부분을 최준호 부제(강동원)의 트라우마(사고 후유 정신장애), 바로 여동생의 죽음으로 설정하였다. 사나운 개에게 물어뜯기는 어린 여동생을 버려둔 채, 무서워 도망친 일은 끊임없이 죄의식과 악몽으로 되돌아와 그를 괴롭힌다. 마음 속 어둠을 부마자의 악령이 알아채고 이를 끌어내자 최 부제는 다시 도망친다.

그러나 두 영화가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다르다. ‘12번째 보조사제’에서는 신부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은 인정하고 안고 가라. 그러나 도망치지는 말아라.”

이에 비해 ‘검은 사제들’은 최 부제의 자기 극복의 의지와 용기를 부각시킨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여동생의 환영을 보고 나서다. 어두운 골목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여동생을 마주하면서 최 부제는 저토록 어두운 곳에 여동생을 놔둘 수 없다고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고통 받는 부마자에게 돌아가 자신을 나약하게 하고 두렵게 한 그 실체와 대면하고자 한다. 돌아온 최 부제에게 김범신 신부(김윤석)가 묻는다. 앞으로 평생 술 없이는 잠들기 힘들고, 악몽에 시달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에 들어설텐데 괜찮은지를 말이다.

이에 대해 최 부제는 에제키엘서 2장 6절을 인용한다.

“사람의 아들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 마라. 비록 가시가 너를 둘러싸고, 네가 전갈 떼 가운데에서 산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보고 떨지도 마라.”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라는 뜻을 가진 에제키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유배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이끈 예언자다.


이름은 징후다

‘이름이 징후(Omen est Nomen)’라는 말이 있다. 영화 속 주요 인물, 특히 사제들의 세례명은 나름의 뜻을 담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김 신부의 세례명은 베드로, 최 부제의 세례명은 아가토이다.

베드로는 어부로 예수님의 첫 번째 부르심을 받은 제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그분의 말씀대로 “사람 낚는 어부”(마태 4,19 참조)로 만들어 주셨다. 김 신부 역시 세례명대로 최 준호 부제를 ‘낚아’ 고통 받는 부마자를 구하려 한다.

아가토는 아마 알렉산드리아의 구마사제 ‘아가토(St. Agatho an Exorcist)’ 성인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영화에서 최 부제는 “남들 다 하는 거 하기 싫어서”라는 이유로 세례명을 지은 것처럼 말하지만(실제 그럴 수도 있다.), 이름은 그의 존재 증명이고, 징후로서 나타나기 때문에 적어도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감독은 최 부제에게 아가토 성인의 능력과 그의 신앙적 궤적을 부여해 준 것일 터이다.

이름의 중요성은 부마자의 몸에 숨어 있는 사령을 끌어내려면 그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는 대목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적 오컬트영화

‘검은 사제들’은 개봉 40일째(2015년 12월 15일 현재) 540만 명의 관객수를 돌파했다. ‘쌍천만 관객’이라는 단어가 나올 만큼 흥행이 잘된 한국영화가 드물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검은 사제들’의 흥행돌풍은 예사롭지 않다.

일단 영화산업에서는 비수기로 꼽는 11월 개봉작이라는 점, ‘오컬트영화(occultism movie : 초자연적 사건이나 악령, 악마 같은 소재로 다루는 영화)’는 장르의 성격상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려 흥행력이 크지 않다는 점, 특정 종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결코 흥행에 좋은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통상적 견해를 깬 데는 김윤석의 노련하고 힘있는 연기력, 강동원 스타의 힘, 여기에 신예 박소담의 이미지까지 가세하여 배우들이 제 몫 이상을 해준 것이 주효했다. 아울러‘엑소시즘(Exorcism, 구마)’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사제들의 치열함과 희생정신, 엑소시즘 과정에서 악령과의 대결을 긴장감 넘치는 구도로 끌어간 감독의 연출력이 관객들을 흡인한 것도 이 영화가 호평을 받는 이유이다.

가톨릭 구마예식을 통하여 ‘엑소시즘’을 다루기 때문에 영화에는 기도문이나 예식에 필요한 소품(성수, 성유, 소금 등), 성가 등이 등장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위해서 교황청에서 펴낸 「구마예식서」 등 가톨릭 구마예식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조사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소머리를 이고 굿을 하는 무당의 사진을 입수하여 영화 속에서 재현함으로써 한국적 샤머니즘을 결합, 한국적 형상의 오컬트영화를 만들어낸 상상력도 이채롭다.

이러한 요소들로 말미암아 ‘검은 사제들’은 장르 영화의 쾌감이 살아있는 대중영화로 안착하게 되었다. 특히 종교와 관련된 부분이 있으나, 종교적 설정의 중압감에 눌리지 않고 신앙이 있거나 없음을 막론하고 모처럼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자로서 이 영화를 주목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악의 존재와 그것을 퇴치하고 사람을 구원하려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이들의 존재를 환기시켜 준다는 점에서이다. 영화 속의 구마사제처럼, 때로 오해받거나 핍박받고 아무도 노고를(심지어 희생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 길을 가는 이들이 있음을 기억할 일이다.

* 조혜정 가타리나 - 영화평론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이며 가톨릭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1월호, 조혜정 가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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