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5일 (금)
(녹)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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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신앙: 성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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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12-12 ㅣ No.569

[교부들의 신앙] 성탄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사건을 일반적으로 ‘성탄’(聖誕)이라고 표현합니다. 신학적으로는 하느님의 영원하신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뜻으로 ‘육화’(肉化)라고 하기도 하고, 영원으로부터 하늘 나라에서 성부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성자 예수님께서 땅으로 내려오셨다는 뜻으로 ‘강생’(降生)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치릴로 성인은 ‘육화의 신비’가 우리 신앙의 핵심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께서 우리의 인성을 받아들임 없이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 천상의 빵이신 분께서 굶주린 이들을 먹여 주시려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교리 교육」, XII,1.8.13).

 

성인은 예수님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이 우리 구원에 핵심적인 사건이라고 설명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시지 않으셨다면, 그분께서 우리의 인성을 받아들이시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하느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나약하고 불완전하며 죄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인간의 본성만으로는 영원하신 하느님과 함께 살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신 예수님께서 인성을 받아들이심으로써 이제 우리도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강생의 신비에서 그리스도의 ‘겸손’을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겸손이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 죄로 인해 넘어진 인간에게 손을 내미신 것입니다. 우리는 넘어졌고, 그분은 넘어진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 그분의 자기 낮춤은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분의 인간적인 탄생은 겸손하면서도 경이로운 사건입니다. 겸손함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이요, 경이로움은 동정녀에게서 나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동정으로 그분을 잉태하시고, 동정으로 낳으셨으며, 낳으신 이후에도 동정으로 남아 계셨습니다”(「신경 해설」, III,6).

 

 

예수님의 인성과 겸손

 

구약 성경은 하느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넘어진 인간에게 끊임없이 손을 내미신 역사입니다. 그 역사의 절정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사건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겸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강생의 신비에서 예수님의 ‘겸손’을 강조하면서도 그 신비의 핵심에는 ‘성모님의 동정 잉태와 출산, 그리고 그 이후로도 동정’이신 경이로운 사건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사실 성모님의 동정 잉태와 출산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처음 거론한 것이 아니라, 이미 초세기 교부들에게서 한결같이 나오는 증언이었습니다. 이레네오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정 마리아는 순명으로써 자신과 인류 전체를 위한 구원의 원인이 되셨습니다. … 하와의 불순종이 묶어 놓은 매듭을 마리아의 순종이 풀었고, 처녀 하와가 불신으로 맺어 놓은 것을 동정 마리아가 믿음으로 풀었습니다”(「이단반박」, III,22,4).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자 예수님의 ‘두 가지 탄생’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분께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사건은 그분의 두 가지 경이로운 탄생, 곧 신적인 탄생과 인간적인 탄생을 깊이 생각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첫 번째 탄생은 어머니 없이 아버지로부터 이루어졌고, 두 번째 탄생은 아버지 없이 어머니로부터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시간을 넘어서 이루어졌고, 두 번째는 시간의 충만함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영원으로부터 이루어졌고, 두 번째는 적절한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육신 없이 성부에게서 이루어졌고, 두 번째는 육신과 함께, 그러나 어머니의 동정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이루어졌습니다”(「설교집」, 214,6).

 

 

신적인 탄생과 인간적인 탄생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예수님의 탄생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는 …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이 고백처럼 예수님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성부 하느님에게서 나셨습니다. 요한 복음에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1,1-3).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설합니다. “누구의 ‘말씀’입니까?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아들 자신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 없이 계신 적이 없습니다. 아들 없이 계신 적 없던 분께서 아들을 낳으셨습니다. … 시작이 없이 나신 분에게는 처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들이고 나셨습니다”(「설교집」, 196,1).

 

예수님의 신적인 탄생에서 인간적인 탄생으로 넘어가려면 ‘왜 말씀이 사람이 되셨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그 답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병든 우리의 본성은 치유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다시 일어서야 했고, 죽은 인간은 다시 살아나야 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좋은 것들을 잃은 사람은 이를 다시 찾아야만 했으며, 어둠에 갇혀 있던 사람에게 빛이 비춰져야만 했습니다. 사로잡혔던 우리는 구원자를 기다렸습니다. 갇혀 있던 우리는 구조를 기다렸고, 노예였던 우리는 해방자를 기다렸습니다. 이러한 이유들이 과연 하느님께 하찮은 것이었을까요? 인류가 이처럼 불행하고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었으므로,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를 찾아오시게 할 정도로, 이러한 이유들이 하느님을 움직이게 할 만하지 않았겠습니까?”(「대 교리교육」, 15,3)

 

예수님의 ‘신적인 탄생’으로 우주 만물이 창조되었고, ‘인간적인 탄생’으로 우주 만물이 구원되었습니다. 우리는 교부들의 전통에 따라서 성자 예수님의 ‘영원으로부터의 탄생’과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사람이 되신 탄생’을 둘 다 믿고 고백합니다. 영원으로부터 성부 하느님에게서 나신 성자 예수님께서는 마구간에서, 가난한 가정에서 비천하게 태어나셨습니다. 순박한 목동들이 이 사건의 첫 증인들입니다. 이 가난에서 하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교회는 이날의 영광을 끊임없이 노래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노래할 것입니다.

 

* 장재명 파트리치오 - 부산교구 신부로 울산 우정성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로마 아우구스티노 대학에서 교부학과 교부신학을 전공하였다.

 

[경향잡지, 2019년 12월호, 장재명 파트리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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