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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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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1-05 ㅣ No.632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1) 들어가며 (상)


복음 따라 살아가려 수도생활 시작

 

 

기도 중인 수도자.

 

 

가톨릭신문 수원교구는 2020년 새 기획으로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를 마련한다. ‘영성의 부재’라는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여러 형태로 그리스도를 삶의 모범으로 삼고 좇았던 수도회들의 영성은 하느님의 복음 가치를 삶으로 구현해 가야 하는 모든 신앙인에게 하느님께 더 나아가도록 하는 윤곽을 제시할 것이다.

 

교구에 진출한 수도회들의 영성을 소개하기에 앞서 2회에 걸쳐 수도회와 수도생활의 역사, 수도영성 등에 대해 알아본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매월 퀴즈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수도생활의 시작

 

수도생활은 창설자의 생애와 영성을 따라 하느님 사랑을 특별한 방법으로 증거하며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초기교회 수도자들은 이 사랑 때문에 사막이나 광야로 나아갔고 복음을 철저하게 살고자 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하느님을 찾는 것이라고 할 때 이런 수도자들은 그리스도교 영성의 토대를 이뤘다. 수도회의 영성을 안다는 것은 그렇게 복음을 살고 그리스도를 따랐던 다양한 길과 영성을 배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수도생활은 복음을 더 철저하게 삶으로 드러내려는 열망에 기원을 두고 있기에, 사도 시대부터 이미 동정 신분을 통해 수도 생활이 시작됐다고 본다. 사도행전 21장 8~9절에서 일곱 부제 가운데 하나인 필립보의 딸 중에 결혼하지 않고 여자 예언자로 주님 일에 헌신하였다는 대목이 그렇다. 또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한 요한 세례자와 동정 생활의 종말적 의미를 알린 바오로 사도는 수도자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수도생활은 2세기 중엽 여러 지역에 현존하던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거의 동시 자발적인 형태로 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이집트 사막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한다. 이렇게 싹을 틔운 수도 생활은 팔레스티나 동부와 시리아 등지에서도 형성됐고 동방과 서방으로 두루 퍼졌다.

 

특히 은수자들 가운데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는 ‘수도승들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복음적 생활은 제자들을 통해 전 교회에 퍼졌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된 베네딕토 성인은 서방교회 수도자들의 선조다. 처음에는 은수자였으나 529년 몬테 카시노에 수도원을 설립하고 「베네딕도 규칙서」를 펴냈다. 이 규칙서는 서방교회 수도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베네딕토 성인을 정점으로 수도생활의 전통이 수립된 것으로 평가된다.

 

베네딕토 성인 이후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까지를 ‘수도자들의 시대’로 부르는데, 이 시기에 수도자들은 교회 내외적으로 큰 역할을 했고 지적·예술적·경제적·문화적 차원에서도 적지 않은 몫을 남겼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1월 1일, 이주연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2) 들어가며 (하)


사도생활단 · 재속회 등 다양한 모습

 

 

- 수도회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모해왔다. 사진은 2014년 ‘성 베네딕도 유럽의 수호성인 선포 50주년’을 기념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모인 봉헌회원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9세기 말부터 10세기 초에 걸쳐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은 쇠퇴해 갔다. 클뤼니 수도원을 중심으로 수도 생활에 대한 쇄신 운동이 일었고 이는 교회 쇄신에까지 힘을 미쳤다.

 

이런 상황에서 베네딕도회 내에서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이 일어나 여러 수도승원들이 연합회를 구성했다. 대표적으로 1098년 몰렘의 아빠스 성 로베르토에 의해 시작된 시토회를 들 수 있다.

 

시민 교육의 등장과 이단적 사상 발생 등 12세기 후반부터 유럽 사회가 변화의 시기를 겪으면서 사회적인 변화와 요청에 부응하는 수도회가 생겨났는데 그것이 바로 탁발수도회다. 대표적인 예가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가르멜회, 아우구스티노회 등으로 이들은 재산을 소유하지 않으면서 동냥과 희사에 의지하여 살았고 명상 생활과 함께 사목 직무나 사도직을 수행했다.

 

특히 프란치스코회를 세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삶의 원칙으로 삼아 ‘소수성’과 ‘가난’을 강조하는 영성을 드러냈으며 수도자들의 겸손하고 열렬한 생활은 기성 교회에 실망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아울러 교회 쇄신과 전교에도 큰 공헌을 했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교회가 어려움에 부닥치면서 예수회 등 교회를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수도회가 생겨났다. 예수회 설립자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전통적인 수도 생활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도 생활 형태를 시작했다. 수도원은 수도자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개념이 아닌, 복음 선포를 위한 전초 기지 역할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수도 신분의 필수적 표지로 여겨지던 수도복과 수도원 전례 등 수도자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미를 넘어서, 세상 안에 뛰어 들어가 가장 시급하게 여기는 일을 처리했다. 또 ‘영성 수련’을 고안했다.

 

여성 활동수도회의 효시는 이탈리아 메리치에 의해 창설된 우르술라회라 할 수 있다. 메리치는 가정에서 동정 생활을 하며 버려진 어린이와 여성들을 돌봤다. 이전까지 여성들은 봉쇄 생활 안에서만 수도 생활이 가능했기에 세상 안에서 수도 생활을 하려는 그녀의 이상은 많은 어려움과 도전을 받았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창설된 우르술라회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 급격히 세속화되어가던 유럽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복음적 봉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여러 창설자에 의해 여성 수도 생활은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며 시대가 요청하는 복음적 징표의 증거에 많은 몫을 남겼다.

 

근대에 와서는 수도회와 비슷하지만, 공식적인 수도 선서를 하지 않고 공동생활을 하는 단체, 사도 생활단이 생겼다.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파리 외방 전교회, 메리놀 외방 전교회,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등이 대표적이다.

 

재속회는 프랑스 대혁명 후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이 요청되면서 탄생했다. 기존 수도회처럼 복음을 살기 위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복음적 삶을 사는 것이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0년 1월 5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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