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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의 사목환경과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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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2-23 ㅣ No.84

 

 

의정부교구의 사목환경과 진로

 

 

의정부교구의 설립은 교회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이다. 새 천 년 들어 처음 설립된 교구라는 점, 장차 남북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질 경기도 북부의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경계가 설정되어 통일 한반도를 지향하고 있는 점, 항시 서울대교구의 변두리에 불과하였던 곳이 이제 주인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관례를 깨고 자발적으로 교구를 선택한 사제들이 사목을 시작하게 된 곳이라는 점 등이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무엇보다 필자 자신이 의정부교구 소속 신자이고, 이곳에서 십사 년을 살다보니 교구 설정 뒤의 삶이 여러 면에서 달라졌음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필자가 피부로 느끼는 것은 사제들의 사목하는 태도에서 나타나는 변화이다. 물론 이전의 사목자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교구 설정 뒤에 사제들의 적극적이고 성의 있는 사목태도가 신자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는 소식을 여러 본당 신자들로부터 듣고 있다. 접경지역에 있는 본당들에서 이런 소식이 더 많이 들리고 있다. 신자들 말로 잠깐 거쳐 가는 곳으로만 생각하는 본당을 이제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목자들이 오게 되니 안심이 되고 함께할 마음이 절로 난다고 한다.

 

필자 자신도 사제들의 강론 내용이나 준비 자세에서 변화를 실감한다. 사제들이 함께 모여 노래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함께 모든 짐을 나눠질 결의를 확인하는 모습에서도 이 교구가 결코 작지 않고, 어느 교구 못지않게 큰 자산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이 글의 목적은 문제의 지적보다 이러한 희망적 분위기와 표징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교구의 사목적 미래를 함께 설계해 보려는 데 있다.

 

 

교세 성장이 가장 활발할 것에 대비한 사목정책 수립

 

현재 한국 천주교회의 여러 교구 가운데 교세 성장이 앞으로도 계속될 교구를 꼽으라면 필자는 수원교구와 의정부교구를 꼽는다. 수원교구는 국가, 지방자치 단체, 기업 등의 역내 개발계획을 볼 때 앞으로도 계속적인 인구성장이 예상되어서이고, 의정부교구 역시 대규모 인구증가가 예상되는 개발계획들이 수립되고 있어서이다. 새 복음화를 통한 새 신자의 확장도 있겠지만 상당수의 신자는 다른 지역, 특히 서울대교구 관내 인구의 이동이 이 양 교구의 전입신자 증가를 초래할 것이다. 막연한 희망일지 모르지만 위의 여러 계획과 인구이동을 감안할 때 의정부교구는 교세가 현재의 두 배 정도로 성장할 것이다.

 

의정부교구의 사목방향이 현재의 규모가 아니라 십 년 이내에 두 배로 성장할 것을 예상하여 설계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인구 증가는 장차 남북교류가 활성화될 개성공단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새 도시가 들어설 서부지구(고양, 파주지역)에서 가장 클 것이다. 통일 한반도에서도 발전 축은 한반도의 서쪽 허리지역이 중심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의정부교구는 그 허리에서도 중심에 있다. 이미 이를 내다보고 엘지 필립스에서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공장을 관내에 짓고 있다. 직원이 사만 명에 가족을 포함하면 최소 십오만 명 이상의 인구가 이 지역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 한다. 서쪽이 과잉 비대하게 될 의정부교구는 동부, 중부, 서부가 현저하게 성격을 달리하고 있으므로 현재와 같은 지구제가 실질적인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시작부터 이러한 전망 하에 전체 교구 사목계획과 별도로 지구별 사목계획이 수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통일 한반도의 선교 전진기지 구축

 

현재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한반도의 서부지역과 동부지역에서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동부지역은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의 상봉이 주된 교류 이유가 되는 반면, 남북의 심장부가 자리하고 있는 서부지역은 정치, 경제, 문화적인 교류가 중심이 될 전망이다. 실질적인 남북교류가 이 서부지역을 통해 이루어지리라는 것이다. 접경지역에는 여전히 고향을 북에 두고 온 실향민들이 살고 있고, 반세기 동안 남북 양측이 중무장한 군대를 주둔시킨 데다 외국 군대까지 주둔하다 보니 여러 곳에서 살풍경한 광경을 볼 수 있다.

 

간혹 남북관계가 격앙될 때마다 가장 먼저 위기의식을 느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서부전선에서 중부전선까지 이어져 있는 이 지역은 말 그대로 한반도의 민족 모순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이런 특징이 다른 어느 교구보다 의정부교구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북한선교를 준비하는 많은 수도회들과 교회의 기구들이 의정부교구 관내에 선교 전진기지를 구축하고, 실질적인 준비를 해나가는 곳이 될 수 있도록 교구는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고 기회를 열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중심과 주변이 존재하지 않는 사목

 

교구 관내 북부지역과 춘천교구 인접지역은 서울대교구 시절 첫 주임이 발령받는 지역이었다. 이러한 본당들에서 신자들이 교구를 원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왜 이런 지역은 중견 사제들이 부임하지 않는가? 왜 우리 본당은 새 주임사제들에게 시행착오의 대상이어야 하는가? 이것이 신자들의 원망 섞인 질문들이었다. 이 문제는 대부분의 교구가 경험하고 있는 일일 터이다. 신자들은 이 세상의 차별이 천주교 안에서도 예외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때 마음이 아프다. 경륜이 있을수록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에서 상처받은 신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왜 경륜 있는 사목자들은 큰 도시의 큰 본당만 가야 하는가? 이 질문에 의정부교구도 예외일 수 없다.

 

필자는 관내 북부지역을 자주 돌아다녔기 때문에 지역민들이 갖는 정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편이다. 이 지역은 대대로 농사를 지었던 토착민, 전쟁을 피해 월남한 피난민, 고향을 떠났다 도시에서 실패하여 몸과 정신이 망가진 귀향민, 병으로 망가진 몸을 회복하려고 온 휴양환자, 이러저러한 이유로 숨어든 사람, 군인가족에 이르기까지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경륜 있는 사목자와 좋은 수도자들이 다른 어느 곳보다 필요하다. 이런 분들이 제대로 배려 받는다고 느낄 때 이 지역에서 새 복음화는 놀라운 성과를 거둘 것이다. 이미 교회를 등졌던 신자들도 하나둘 돌아올 것이다.

 

다른 교구도 비슷한 사정을 갖고 있는 지역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새로이 출발하는 교구가 그것도 많은 젊은 사제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며 오셨으므로 다른 어느 교구보다 이런 꿈이 이뤄질 가능성이 더 높아야 할 것이다. 이 지역에서 신자들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면 의정부교구는 희망이 있는 곳이다.

 

 

사제들이 많은 장점을 살리는 교구

 

신설 교구가 중견 교구와 비슷한 사제 수를 갖고 출발한다는 것이 갖는 장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선 사제 일인당 신자 수가 적어지는 만큼 신자들은 사제들과 더 많은 접촉기회를 갖게 된다. 사제 수가 적어서 감당하지 못했던 사목 과제들도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짐은 물론이다. 대부분의 본당에서 사제들 사이의 수직적 위계가 사목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떨어뜨리는 데 반해 의정부교구에서는 보좌신부의 명칭을 부주임으로 변경하고 협동사목의 틀을 구상하고 있으니 기존의 한계를 상당부분 극복할 수 있을 터이다. 물론 한 본당에 수장이 둘이 있어서는 안 되는 법, 결국 수직적 위계는 불가피하게 요구되지만 과거와는 분명히 여러 면에서 달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긍정적인 기대를 갖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항시 양면이 있는 법이다. 교구에서 발생하는 모든 업무를 사제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숫자라는 점은 두 가지 면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하나는 모든 일이 사제 중심으로 갈 수 있다는 면에서 그동안 한국교회가 이룩해 온 평신도들의 높은 참여 전통을 약화시킬 수 있는 점이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부득불 선택한 측면이 있지만 어려울 때부터 함께 일하는 모습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 다른 하나는 수도자와의 관계설정 문제이다. 사제들이 활동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기존 수도자들의 활동영역과 중복되게 마련이다.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교회의 소중한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비단 본당수녀만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남녀 수도회 공히 새로운 가능성의 땅에서 재정문제를 넘어서 함께 협력하는 모델을 창출할 때만이 의정부교구의 장점을 장점으로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본당, 풍성한 신앙의 교구

 

급격한 교세 신장이 예상되는 서부지구에서는 대규모 본당이 설립될 필요가 있지만 서부지구의 일부 지역과 중부, 동부지구는 작은 본당을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 필자가 사는 서부지구의 화정지역은 인구 수로 볼 때 앞으로도 여러 개의 본당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개발이 완료된 지역이라 새로 지을 땅이 없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지역에서는 건물을 임대하여 작은 규모의 성당을 개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큰 규모의 성당은 사목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손길이 잘 미치지 않기 때문에 소극적인 신자들이 늘어나고, 방관자도 많아진다. 신자 수가 사천오백 명인 본당에서 3분의 1인 천오백 명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보다 반으로 나눠 본당별로 천 명 이상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현재의 관내 대규모 본당이 이러한 방식으로 분할되는 것이 필요하다. 서부지구에는 이러한 방식이 필요한 반면 중부지구와 동부지구의 일부는 작은 본당으로 기존의 농촌 정서와 지역에 오래 산 신자들의 정서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울대교구 시절 급격한 신자 증가와 이 시기에 집중되었던 본당 수의 확장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교회의 자원 할당 우선순위가 건물과 토지에 집중되게 함으로써 정작 신자들의 영적 성장에는 소홀한 문제를 낳았다. 의정부교구는 앞서도 예측한 바이지만 급격한 신자 증가를 경험하게 될 지역이다. 과거를 타산지적으로 삼아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자들이 사목자를 존경하고 기뻐하면 선교와 사목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다. 신자들을 감동시키는 사목, 신앙을 풍요롭게 하는 사목, 신자들을 대접하는 사목, 그러나 길을 가리켜야 할 때는 냉엄할 수 있는 사목이 이뤄질 때 의정부교구는 양적 성장과 영적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될 것이다.

 

 

희망의 표지가 현실이 되려면

 

이제 갓 시작한 교구가 중견 교구들에서 보일 수 있는 안정감을 보일 수는 없다. 실제 교구의 움직임이 잘 감지되지 않는다.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안정된 모습을 보일 것이라 기대한다.

 

교회 안에서 비교적 정보에 밝은 편이다 보니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의정부교구와 관련하여 다른 교구의 사제들로부터 들은 이야기 가운데 새겨봄 직한 말이 있어 옮겨본다. “부디 처음에 어려운 조건을 선택하였던 자세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안정된다고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거나 상황이 어렵다고 쉽게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의정부교구를 선택한 사제들이 이 말씀을 더 깊이 새기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의정부교구는 작지도 부족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곳이다. 서울대교구 시절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열악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한국의 대다수 교구는 현재 의정부교구와 같은 삶을 살았고, 현재도 그렇게 살고 있다. 우리 자신의 상황이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새로 지어야 할 것, 들여놔야 할 것 등을 생각하면 의정부교구는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다. 그러나 의정부교구는 그 모든 필요를 감당하고도 남을 잠재력을 갖고 있는 곳이다. 현재의 조건 때문에 위축되거나 추구해야 할 목표를 축소할 필요가 없다. 다만 교구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 신자들에게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공유하고 신자들 자신의 목표로 삼을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겸허하게 이 목표에 동참해 줄 것을 권유할 때 목표는 현실이 될 것이다.

 

[사목, 2005년 1월호, 박문수(가톨릭대학교 인간학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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