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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한국교회와 새로운 복음화8: 계시헌장 해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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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3-10 ㅣ No.258

[공의회는 진행 중… 한국교회와 새로운 복음화] (8) 계시헌장 해설 (하)


하느님께서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시다

 

 

서론은 지난 호로 대신하고 바로 계시헌장 본문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계시헌장은 개신교와 논쟁의 여지를 담고 있는 ‘계시의 원천들’이라는 말로 시작했던 초안과는 달리 계시 그 자체에 대한 가능한 한 보편적인 이해에서 출발하고 있다.

 

 

제1장 계시 그 자체

 

계시의 본질과 목적에 관한 제2항은 계시헌장에서 가장 아름답고 특징적인 시각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그 핵심은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고’라는 구절에서 알아볼 수 있다. 계시의 본질은 바로 하느님의 자기 계시인 것이다.

 

이러한 계시 이해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트리엔트공의회나 제1차 바티칸공의회와 비교해 보는 것이 좋다. 계몽주의 이래 계시 진리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있는 진리들과 대비되었고, 계시는 인간이 스스로의 이성으로 알 수 없는 어떤 정보들을 하느님께서 알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전 공의회들의 가르침을 특징짓고 있었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했을 때에는 계시에 대한 신앙의 응답 역시 계시를 통하여 드러난 초자연적인 진리들에, 즉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것들에 인간의 지성이 동의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계시 이해는 한마디로 명제적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전후하여 계시를 대인격적 만남 또는 대화로 보는 신학이 발전하였는데, 여기에서 계시는 일차적으로는 하느님에 대한 어떤 사실들이 아니라(명제적 이해) 신비이신 하느님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인격적 이해),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하느님과 관련된 신비들을 알려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가 계시를 통하여 만나는 것은 우선적으로는 하느님의 권위로 보증된 일련의 진리들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기 계시’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이다. 계시헌장 5항에서 말하는 신앙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둔다면, 이렇게 이해된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지적인 동의만이 아니라 인격 전체의 전적인 응답이어야 한다. 머리와 마음과 행동, 그 모두로써 하느님께 응답하는 것,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순종’을 드리는 것이 신앙인 것이다.

 

1장에서 한 가지를 더 지적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계시의 충만’(2항)이시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당연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대해 알려 주시는 계시의 전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바로 계시가 되신다는 말은 앞서 말한 인격적인 계시 개념과 연결된다. 「주님의 말씀」 (2010)에 이르면 태초로부터 계셨던 아버지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강생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를 드러내 보이신다는 측면이 더욱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한복음 1장 참조), 계시헌장에서 이미 이러한 방향을 향한 전환이 나타났던 것이다. 

 

 

제2장 하느님 계시의 전달

 

2장의 주제는 성전이다.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계시는 성령의 작용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전달된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동 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조언에 힘입어 배운 것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7항)해 주었는데 이것이 성전이고, 이러한 성전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말씀이 전달된다.

 

계시헌장 초안의 제목이 ‘계시의 원천들’이었다고 했는데, 트리엔트공의회와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성경과 성전이 그 ‘원천들’이라고 말했었다는 것과 비교한다면 성경과 성전이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솟아 나온다”(9항)고 말하는 계시헌장은 의도적으로 ‘두 원천’이라는 표현을 피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 계시의 원천이 성경과 성전이라는 말보다는 계시가 성경과 성전 안에 담겨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뿐만 아니라, 성경과 성전은 그 기원을 볼 때 서로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에서는 이 점에 더욱 주목하여, 오히려 성경이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성전) 안에서 형성되었고 그 전통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사도들과 함께 생활하시던 때부터 성전은 생겨나고 있었고 그 전승 안에서 성경이 기록되었으니, 성전은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없고 오히려 성경이 형성된 모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 덧붙여 둔다면, 이 장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교리 상으로 차이를 보이는 부분들에 대해서 뚜렷한 결정을 유보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제3장 성경의 영감과 그 해석

 

가장 특징적인 부분들을 설명했으니 이제 헌장의 다른 부분들은 간략하게 살펴볼 수 있겠다.

 

3장은 이전의 문헌들 특히 「성령의 영감」에서 다루어진 부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다. 성경 형성 과정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발전하면서 제기된 성경의 저자 문제에 대하여 헌장은 하느님께서 성경의 저자이시고 그분께서 인간 저자들이 ‘참 저자로서’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셨다고 말한다(11항). 교부들 이래로 있어 온 전통적인 영감 이해, 즉 하느님께서 성경을 구술하셨다거나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표현에 비하여 인간 저자들이 ‘자기의 능력과 역량을 이용하는 사람들’임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인간을 통하여 인간의 방식으로’(12항) 말씀하셨다는 것은 ‘아버지의 말씀께서 인간 육신을 취하신 신비’와 비길 수 있다(13항 참조). 이러한 인간적인 요소 때문에 성경 해석과 관련해서도 문학 유형 등을 고려하는 학문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사람이 되신 말씀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보듯 인간의 말 안에 담긴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그러나 성령을 통해 쓰여진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성경 해석의 원칙이라고 하겠다. 계시헌장에서는 지나친 인간적 해석에 대한 경계를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방금 인용한 구절의 ‘그러나’는 이미 그러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학문적인 성경 연구에 대한 수용은 계시헌장으로 완결되었다고 볼 수 있겠고, 「교회 안의 성서 해석」(1994) 이후의 교도권 문헌들은 거기에 따를 수 있는 결점을 보완할 것을 요청하는 추세를 보인다. 

 

 

제4장 구약성경

 

구약성경의 중요성과 신구약 성경의 일관성을 말하고 있는데, 너무 간략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마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구약이 신약을 준비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18항) 외에 구약 자체의 고유한 가치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데, 개신교와 가톨릭의 관계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특히 이 관계 안에서 구약성경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의 정당성을 논하려 한다면 좀더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하여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2001)는 구약성경에 대한 유다교의 해석과 그리스도교의 해석이 각각의 전통(성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두 가지 해석이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갖는다고 깊이 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제5장 신약성경

 

신약성경의 탁월성과 사도적 기원을 말한 다음 특별히 복음서의 역사성을 말하고 있는데(19항), 그 ‘역사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성경 해석 전반에 대해 말하고 있는 12항에 비추어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제6장 교회 생활과 성경

 

이 부분은 단순한 권고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신학적 원리들이 담겨 있다. ‘성경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는 신학적 근거는 13항에서 말했듯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말로 기록한 성경이 성사적인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또 성경이 신앙의 최고 규범이며 교회의 삶이 성경으로 양육되어야 한다는 것 역시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교리적인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24항에는 “성경 연구는 신학의 생명(영혼)과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이전의 문헌들에서도 사용되었던 것이지만 실제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신학이 이를 실천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신학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지적해 둘 구절이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계시를 통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이시라면 그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신학이 계시를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계시헌장 해설을 마치면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성경 번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신자들이 성경을 가까이하게 된 것과 더불어 신학이 이전보다 훨씬 분명하게 성경에 뿌리를 두고자 하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 특별히 큰 기쁨을 표시하고 싶다.

 

[가톨릭신문, 2012년 3월 11일,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수녀회·한국 가톨릭교리신학원 가톨릭신학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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