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가톨릭 교리

생활 속의 교리: 창조주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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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30 ㅣ No.1470

[생활 속의 교리] 창조주 하느님



세상의 기원에 대해 인류는 나름대로 과학적, 철학적, 종교적인 방법으로 답을 찾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과학적으로 우주의 생성시기와 크기, 생명체의 등장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철학과 종교를 통해서 세상의 존재 의미를 찾아보기도 하였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신은 없으며 세상은 우연히 생겨났다.’고 하였고, 범신론자들은 ‘세상과 세상 모든 것이 신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원론자들은 ‘선한 신(들)과 악한 신(들)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83-285항 참조).

「성경」에서는 창세기 첫 장부터 전지전능하시고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이 세상을 보시고 좋아하셨다고 합니다(1,1-31 참조). 또한 교회는 우리가 피조물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생활 : 창조

우리는 ‘창조적’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존에 없던 좋은 아이디어를 ‘창조적’이라고 합니다. ‘창조’라는 말에는 ‘새로움 ? 없던 것을 있게 하는 것’이라는 개념과, ‘만듦’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최근에 작곡가 한 분을 만났습니다. 예전에 시디(CD)의 음악을 듣다가 곡이 좋고 정겨워 ‘누가 만든 곡이지?’ 하며 이름을 찾아보았는데, 시디에 나오는 곡의 대부분을 한 사람이 작곡하였습니다.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하며, 이분은 도대체 어떤 분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오셨고, 무슨 마음으로 작곡하시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또한 음악을 들으면서 그분의 마음과 삶을 그려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저와 함께 사는 수도회 신부님께서 이 작곡가와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을 통해 그분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신부님께서 그 작곡가가 제 축일 때 수도원을 방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만남은 기쁨을 가져다주는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직접 그 작곡가를 만나면서 그분의 삶과 음악에 대한 사랑을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곡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가 자주 들었던 곡을 만든 이를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영광이자 행복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위대한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을 만든 사람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직접 만나지는 못하여도 그 사람을 느끼게 됩니다. 그 작품이 그동안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이라면 어떻게 이런 것을 만들었을지 그 사람에 대해 감탄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직접 만나기라도 한다면 더 큰 흥분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만드신 분이 하느님이시라고 믿는 이들은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름다운 석양,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 향기로운 꽃을 보며, 이러한 것들을 만드신 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나 뵙고 싶어집니다.


교리 : 창조주 하느님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성경」의 이 첫 말씀은 세 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다. 영원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외의 모든 것을 비로소 존재하게 하셨다. 당신 홀로 창조주이시다. … 존재하는 것 전체‘(하늘과 땅’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는 그것들에게 존재를 주시는 하느님께 달려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90항).

만물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교리는 모든 사람이 던지고 있는 질문, 곧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리스도교가 제시하는 근본적인 응답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인 이는 그에 따른 세계관을 형성하게 됩니다. 곧 세상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세상 자체는 없는 데서 생겨난 피조물일 따름이며, 결코 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인간의 죄와 존재의 결핍으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 만물은 근본적으로 좋으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선하심과 사랑을 나누시려고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를 위해 섭리하신다는 점입니다.

하느님의 섭리와 피조물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어서 미소한 것에서부터 세계와 역사의 큰 사건들까지 모두 보살핀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03항). “피조물들의 다양한 완전성(진 · 선 · 미)은 하느님의 무한한 완전성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조물의 완전성을 근거로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41항).


말씀 : 섭리와 피조물을 통한 깨달음

“지난날에는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민족들이 제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좋은 일을 해주셨으니, 당신 자신을 드러내보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곧 하늘에서 비와 열매 맺는 절기를 내려주시고 여러분을 양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주셨습니다”(사도 14,16-17).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든 믿지 않는 이든, 이 세상의 창조주로서 그들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이러한 섭리를 통해 우리는 그분의 손길을 느끼며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편, 우리는 피조물을 통해서도 하느님을 만납니다. 피조물에게서 어떤 신비로움과 경탄을 느끼게 될 때가 그렇습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은 기쁨으로 채워져, 하느님께서 피조물을 보시며 가지신 바로 그 통찰을 얻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

고통으로 가득 찬 나의 삶에 크나 큰 ‘선’의 손길을 느낄 때 우리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또한 피조물을 보고 좋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 뒤에 계신 더 큰 아름다움이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만나려면 삶 속에서 하느님 섭리의 손길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피조물에게서 선과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의 창조 교리에 따른 세계관을 갖추어야 합니다.

· 내 삶의 좋은 순간을 돌아보며 그분의 섭리를 느껴봅시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돌아볼 때는 거기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크신 계획을 신뢰하여 봅시다. 그리고 내 삶에 대한 그분의 손길을 느끼며 그분께 감사드립시다.

·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봅시다. 그것을 보며 경탄해 봅시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말고, 이렇게 좋은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찬미의 마음을 더욱 높여봅시다. 이 경탄과 통찰의 순간, 하느님께서 바로 내 앞에 서계십니다.

· 뚜렷한 그리스도교 세계관을 가져봅시다. 이 세계관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다스리고 계시는 창조주시라는 것, 피조물에 나쁜 것은 없다는 것,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며, 영원히 행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 고성균 세례자 요한 - 도미니코수도회 수사. 단순하고 즐겁게 형제들과 어울려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현재 한국 도미니칸 평신도회 영적 보조자 소임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9월호, 고성균 세례자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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