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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선교와 문화: 문화의 교류에서 나타나는 역동성과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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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09 ㅣ No.362

[선교와 문화] 문화의 교류에서 나타나는 역동성과 원리

 

 

문화의 충돌과 융합 

 

문화는 만남을 통해 상호 교류한다. 일반적으로 두 문화가 충돌하면 그 유기체성으로 말미암아 상호 역동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를 통해 긍정적으로는 상호 공존을 위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여 풍요로워질 수도 있지만 항상 그렇게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문화에도 약육강식의 원리가 적용되어 대(大)와 다(多)가 지니는 폭력성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환경이라면 상호 견제하면서도 융합을 통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문화와 충돌하면 희석되거나 대체(정복) 된다. 문화의 충돌과 융합에는 나름의 원리와 공식이 있으니 이를 이해하게 되면 복음 선교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파국을 최소화하고 좀 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문화 간 만남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경우를 살펴보자. 

 

우선 희석(dilution, 稀釋 또는 淡化)은 말 그대로 물타기식 수법이다. 자신보다 강력한 문화를 만났을 때, 정복이나 대체할 능력이 없다고 느낄 때 대체로 희석이라는 안전한 방법을 택하게 된다. 한 예를 들어 보자. 에페소는 강력하게 토착화된 아르테미스(Artemis) 여신의 판도였다. 아르테미스는 출산의 여신으로 다산을 기원하는 모든 에페소 사람들의 갈망을 채워 주었다. 또 달의 신이라고 불리며 모든 부녀자들의 신인 동시에 남성들에게는 순결의 화신으로 각인된 강력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바오로 사도가 복음을 들고 에페소에 들어갔지만 그 강력한 여신의 세력에 전교가 쉽지 않았다. 이 아르테미스의 존재와 역할을 희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성모 마리아였다. 에페소 출신의 요한은 에페소 전 지역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아르테미스의 언덕 꼭대기에 성모 마리아를 모셔와 집을 지어 드렸다. 요한 묵시록을 보면 성모 마리아가 ‘달을 밟고 서있는 여인’(묵시,12,1 참조)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아르테미스의 존재를 극복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에페소 거리의 끝자락에 에페소 공의회(431년)가 열린 성모 대성전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성모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Theotokos)’으로 선포한 곳이다. 물론 에페소 공의회는 당시 키릴 주교와 네스토리우스 주교의 인성적 그리스도론에 대한 입장 차이로 뜨거웠던 논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열린 것이지만 성모신심을 통해 아르테미스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리스도교의 염원이 담긴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만에도 아르테미스에 버금가는 처녀신으로 ‘천상 성모 마조(瑪祖)’가 있다. 대만에서의 천주교 선교가 제자리걸음에 있는 이유 역시 강력한 마조 토착 신앙 때문이다. 마조의 탄생일에는 신자들마저도 성당에 가기보다 재미있는 축제에 참여하는 경향이 많은데, 종교학적으로 보면 마조의 세력을 희석시키지 않고는 대만 선교의 전망은 불투명할 것으로 본다. 필자가 대만에서 선교사로 활동할 때 그곳 천주교 신자들이 성모군(聖母軍)이라 불리는 레지오 마리애에서 매우 열심히 활동했는데, 신자들의 마음속에는 마조의 강력한 힘을 극복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본다. 

 

두 번째로 고려할 경우는 문화의 정복(conquer, 征復)이다. 또는 대체(replace, 代替)라고 말하는 이 경우는 외래문화와 토착 문화 사이에 힘의 균형이 깨져 강력한 힘을 지닌 문화가 폭력적으로 상대를 통할하는 것이다. 정복은 일반적으로 문화 비중의 극명한 차이 속에서 발생하는데, 정복당한 문화는 소멸에 이르게 된다. 마야, 잉카, 아즈텍, 앙코르 와트 등의 문화가 정복되어 사라진 문명의 예다. 

 

서로마에서 그리스도교가 아폴로(태양신) 중심의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태양절을 예수 탄생 축일로 바꾼 것은 문화의 정복 곧 대체인 셈이다. 원래 12월 25일은 동지 이후 해가 다시 커지기 시작할 때를 기념했던 ‘정복되지 않은 태양(Unconquered Sun)’이라는 로마인들의 축제일이었다. 로마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교도의 태양신을 섬기는 이 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대체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떠오르는 태양에 비교했고, 여기서 태양신의 탄생일을 정복한 성탄절이 생긴 것이다. 

 

중국에는 강력한 한자 문화권이 형성되어 있어 외부에서 들어온 문화들이 쉽게 살아남지 못한다.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왔지만 결국 중화사상에 흡수되어 선종(禪宗)으로 변질되었다. 또 당나라 때 들어온 경교는 중국 문화 속에서 교류와 융합을 추구했지만 오히려 중화의 강력한 문화 속에 흡수되어 소멸했다. 명말청초에 천주교가 중화의 영역에 들어와 재기를 노리지만 현재까지도 강력한 중화 문명과 사상에 위축되어 있는 상태이다. 

 

세 번째로는 융합이 있는데 문화의 밀도가 상호 균형을 이루거나 줄다리기를 하는 긴장 속에서 타협점을 찾아내어 공생하는 경우이다. 건강한 문화 교류는 서로에게 풍부한 생명력과 이상을 제공하여 상호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 한 예로 켈트십자가를 들 수 있다. 켈트십자가는 십자가가 태양(원)과 겹쳐진 모양인데, 이는 성 패트릭에게서 전래되었다고 한다. 성 패트릭이 드루이드교의 태양신을 숭배하는 아일랜드 토착민들에게 십자가를 알리기 위해 그리스도교의 십자가와 이교도의 원형을 합쳐 만들었다고 한다. 문화의 융합과 공존은 이 켈트십자가처럼,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모습으로 상부상조할 수 있게 한다. 

 

 

노자화호설에서 본 아전인수식의 종교 선교 전략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아전인수식 선교 전략을 지니고 있다. 곧 모든 종교와 문화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가려는 이기적인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불리할 때는 상대에게 달라붙고 유리할 때는 떨어져 독립성을 추구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유일주의적 배타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종교가 지니는 절대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종교적 이익을 위해 도모하는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보자. 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래되기 시작할 때 불교는 중국 문화 안에서 유교가 지니는 공고한 위치와 역할을 ‘큰형님’으로 이해하였고 이에 대한 승복으로 인해 유·불간의 충돌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도교는 유교에 비해 형성된 시기가 늦고 중국 사회에서 지니는 위치와 비중이 공고하지 못한 탓인지 언제나 불교의 경계와 경쟁의 대상이 되어 잦은 충돌이 일었다. 이 도·불의 충돌 관계 속에 ‘노자화호설(老子化胡?)’이라는 아전인수식 선교 전략이 몇 백 년 간 지속되었다. 

 

먼저 도교 측에서 노자는 죽지 않고 서쪽으로 푸른 소를 타고 사라졌다는 신화를 이용하여 ‘노자화호설’을 만들었다. 곧 도교의 창시자인 노자가 인도에 가서 무지한 인도인들을 구도하기 위해 석가모니로 환생한 것일 뿐이니 불교는 사실 원종교인 도교의 아류에 해당할 뿐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백성들에게 설명한 것이다. 인도에서 들여온 불경은 노자가 석가모니로 환생하여 가르친 일종의 노자의 환생설법이니 중국인들이 여기에 혹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한편 처음 중국에 전래된 불교는 외래문화적 색채를 줄이고 민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같은 ‘노자화호설’로 역공을 전개한다. 내용은 같지만 해석의 입장은 극명히 다르다. 불교 측에서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불교의 교리와 경전은 사실 중국의 성현인 노자에 의해 전개된 것이기에 불교를 배타적으로 대하기보다는 도교와 같은 차원에서 불교를 수용하여야 마땅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불교가 외래 종교라는 이질감을 극복하려는 선교 전략에서 나온 아전인수 격의 해석이다. 

 

이러한 노자화호설은 마태오 리치의 선교관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태오 리치가 중국에 들어와 처음에는 승복을 입고 불교에 편승하려 했지만 실상은 유교가 대세라는 것을 알고 과감히 유화(儒化) 정책을 취했다. 뒤를 이어 온 모든 천주교 선교사들은 친유배불(親儒排佛) 정책을 견지하게 된다. 마태오 리치는 천주교가 중화의 땅에서 살아나려면 중국 문화, 특히 공맹사상과 조상 숭배의 특성을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 소위 ‘리마도우규칙(利瑪竇規矩)’이라는 방향을 설정하였다. 그러나 유교 사상을 연구하다 보니 천주교 사상에 부합하는 것과 부합하지 않는 요소를 발견하여 그것들을 합유(合儒)와 초유(超儒)로 구분하였는데, 이러한 태도 역시 밑바닥에는 선교학적인 전략에 기인한 것이다. 곧 유교의 성분 중에서 선유(先儒, 초기 선진유학)는 취하고 후유(後儒, 송명의 성리학)는 버리는 취사선택을 하여 선교에 유리하게 만들었다. 이를 위해 마태오 리치는 신화를 위조하기까지 한다. “고대 중국의 역사에 보면 한나라 명제가 이미 서방의 천주교에 대한 소식을 듣고 사신을 서쪽으로 파견하여 성경을 구해오라 하였는데 귀국 도중에 모함에 빠져 불경을 가져와 중국에 널리 퍼뜨리게 되었다.”(천주실의 제8편). 들어보면 노자화호설과 닮았다. 마태오 리치가 이러한 거짓 이야기를 꾸며낸 목적은 선교의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이다. 곧 과거 중국 사신이 가져온 불경은 사실 위경(?經)이고, 예수회 선교사들이 가져온 성경이야말로 진경(?經)이기에 중국인들은 이제라도 천주교 교리를 배척하지 말고 올바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로서, 종교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히 아전인수식의 설법이라 할 수 있다. 

 

문화와 선교는 칼의 양날과 같은 관계다. 칼을 갈 때 두 면을 고루 갈아야 칼이 잘 든다. 어느 한 면만 갈게 되면 날이 넘어, 갈면 갈수록 오히려 더 무뎌진다. 선교를 위해 문화가 필요하지만 성급한 마음에 선교의 날에 무리수를 가하게 되면 문화의 날이 무뎌져 결국 양쪽 모두 실패하게 된다. 선교를 신앙의 차원에서 교회론적으로, 신앙적으로만 이해해 왔던 과거 식민주의 시절의 선교적 오류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땅끝까지 제86호, 2015년 3+4월호, 김병수 대건 안드레아 신부(한국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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