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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종교철학ㅣ사상

종이책 읽기: 아주 특별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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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6-16 ㅣ No.168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아주 특별한 순간


새벽 5시 40분, 새벽미사를 가기 위해 시내 한복판에 있는 수녀원을 나서면 새벽을 맞이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가장 먼저 난장판이 된 거리의 쓰레기를 묵묵히 쓸어 담는 미화원 아저씨를 만난다. 그분들의 노고를 주님께 맡겨드리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토요일 새벽이 되면 거리는 아직도 취기가 가시지 않은 많은 남녀 청년들로 붐빈다. 그 거리는 더욱 각종 쓰레기가 난무한다. 그 젊음의 뜨거운 피는 갈 곳이 없어 추한 새벽 풍경의 일부가 되는 이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텅 빈 마음과 느린 발걸음에서 절망과 만난다. 어디에서도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까? 한순간의 젊은 혈기려니 하면서도 갈수록 늘어나는 숫자를 보면서 청년들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다. 아, 이럴 때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실까?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 이 예수님의 마음을 확인시켜준 책, 이때 만난 책이 「아주 특별한 순간」이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없이 이 세상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책은 우리를 그분의 자녀인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자캐오를 죄인이자 세관장으로 보는 우리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캐오의 이름을 부르시고 온전한 시각으로 바라보시는 바로 그 예수님이 그 청년들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한없는 연민과 기도의 마음이 되는 까닭이다. 그들 자신이 존중심을 가지고 자신을 대한다면 언젠가 그들의 삶도 변화될 것이고 예수님을 만날 것임을 희망한다. 마치 천 원짜리 돈이 아무리 구겨져도 그 가치라든지 정체성이 어디로 달아나지 않듯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가 하느님께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 당신의 인장이 새겨진 우리는 하느님 눈에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죄에 걸려 넘어져도, 구겨진 돈처럼 엉망진창으로 삶이 구겨져도 우리는 여전히 가치를 지니고 있고 하느님께서 살아계시는 한 하느님의 소중한 존재이고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기쁜 소식인가!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나 평판에 너무나 쉽게 좌우되고 비판이라도 받을라치면 부평초처럼 흔들리고 거품처럼 사그라지기 쉬운데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근본, 원천이 필요하다고 한다. 삶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초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치유피정을 지도하는 저자 안토니오 신부는 자신이 체코에서 경험한 것을 들려주면서 우리의 희망을 일깨우고 있다. 열세 살에서 서른 살까지의 청년 300명이 피정에 왔는데 그중 250명 정도가 마약을 하거나 약물중독 또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다시 말해 삶이 중간에 멎어버린 사람들이었단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정도로….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15년 만에 마약을 끊은 청년, 어머니와 화해한 딸 등 예수님이 마음을 어루만져 주신 것을 체험한 사람들의 변화는 놀라웠다. 이 기적의 비밀은 하느님 말씀과 성사에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교회에 다니면서 삶에 변화를 못 느끼는 것은 마치 뚜껑 닫힌 병과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닫힌 병뚜껑을 열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또 혼자서 열 수 없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닫힌 뚜껑을 열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해야 한다.

우리가 바치는 기도지향에 대해 새삼 강조하는 것이 반가웠다. 지금 모바일(휴대폰)로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 매일 기도지향을 바치며 9일 기도(54일 동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지향을 바치는 것은 작은 행위이지만 주님께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고 특히 매일 미사 중에 주님의 잔을 들어 올릴 때 성작과 함께 그 지향들을 들어 올리는데 믿음을 지니고 드리는 기도지향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모두 헤아려지기 때문이다. 믿음 안에서 투자를 해야 한다고…. 그것은 우리에게 위기가 닥칠 때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과 함께 머물렀던 시간은 영원히 남는다. 그 시간을 보낸 사람은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세상이 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질주를 한다. 특히 성공한 사람 앞에는 그 타이틀이 있다. 타이틀은 지나가는 것, 언젠가는 끝나는 것, 그래서 이 타이틀은 실망과 씁쓸함을 준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는 타이틀, 예수님의 제자, 하느님의 자녀라는 타이틀은 결코 실망을 주는 법이 없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그분, 군중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다리시는 그분께 가기만 한다면. 안토니오 신부는 성 아우구스티노가 「고백록」에서 고백한 그 유명한 말에 한 문장을 덧붙인다. “님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에 님 안에 쉬기까지 우리 마음은 찹찹하지(평온하게 가라앉지) 않삽나이다.”, “내 마음 안에서 쉴 곳을 발견할 때까지는 하느님, 당신도 쉴 수가 없었나이다.” 아버지도 아들을 만나기까지 쉬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문장을 만나는 순간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압도되고 감읍하는 전율을 느꼈다. 그렇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사랑하시나이까.

성경 한 권만 들고 치유 피정을 지도하는 안토니오 신부는 확실히 치유의 은사뿐만 아니라 말씀의 은사, 지식과 지혜의 은사를 받은 분 같다. 이 책에 실린 25개의 피정 강론은 쉽고도 이해가 빨리 되지만 그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영성의 핵심과 정곡을 찌르는 그 말씀은 우리를 주님의 사랑과 회심에로 초대한다. 특히 용서와 고해성사에 관한 부분은 얼마나 시원시원한지, 늘 무거운 돌이 가슴 근처에 내리누르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다 해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용서가 되지 않을 만큼 큰 죄는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과 희망인가. 그는 우리가 삶에서 결코 예수님과 떨어지지 말도록 강력하게 요구한다. 서품 받은 지 1년 만에 피정지도라는 소임이 떨어졌을 때의 두려움을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서 완전히 해방된 체험에 비추어 우리를 그분께 완전히 맡기도록 인도한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8)

[월간빛, 2013년 6월호,
김계선(에반젤리나 ·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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