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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이콘산책1: 생명의 빛 -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模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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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1-08 ㅣ No.1036

[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1) 생명의 빛 -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模像)


너무나 생소했던 이콘과의 첫 만남

 

 

<그림1> 구유의 아기 예수(부분), 프레스코화, 칠리스 지방의 성 마틴 성당, 스위스. 아기 예수를 싸서 구유에 누인 모습이 물고기의 모습처럼 보인다.

 

 

연재에 들어가며

 

우리는 하느님의 이콘이고, 그분의 그림자입니다. 그 그림자가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큰 영광이겠습니까? 또한, 그분과 친구가 되어(요한 15,14-17참조) 함께 산책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왜 이콘은 그렇게 써져야 했는지를 설명하려 합니다. 

 

초대 교회부터 신앙인들에게는 하느님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간절한 염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표현하려는 염원이 사회적으로 하느님의 형상을 금지하는 유대교와, 시대적으로는 신들의 형상이 난무하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권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으로는 두 문화의 사이에 나름대로의 출구를 찾아야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성을 취해 인간 세계에 오셨다는 새로운 믿음을 통해, 그 믿음으로 임마누엘 하느님의 표현이 가능하다고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 교회 미술은 그 얼굴을 표현하기 위한 염원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콘(聖畵像)은 초대 교회 때부터 그려져 왔기에, 동방 교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보다는 그리스도교의 미술이라고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서방 교회에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이콘이 지금은 점차적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콘이 지금처럼 한국 천주교회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콘 전시회가 종종 열리고, 이콘에 관한 책들도 발간되었지만, 아직도 이콘에 대한 이해는 그리 넓지 못한 것을 느껴 왔습니다.

 

이콘을 처음 보는 사람은 이콘의 인물이 무뚝뚝하고 낯설다고 말합니다. 이콘에는 ‘말씀’을 이해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상징과 신학, 철학적 개념이 포함되어 있어 일반적인 미(美)의 기준에서는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그러한 이콘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필자의 생각,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대어 앞부분에 언급한 다음, 본 내용을 설명하였습니다. 또한, 학문적 주석이나 참고문헌에 대한 각주를 생략하고, 이해를 돕기 위한 부분만 각주를 달았습니다.

 

이콘 설명 전반부에는 하느님의 형상을 그릴 수 없었던 그리스도교의 염원과 그 가능성과 찬반의 논란을 설명하려 합니다. 더 나은 이콘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과 이콘에 적용된 상징적 표현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을 서술합니다.

 

후반부에는 이콘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성사실(聖史實) 이콘 중 몇 편을 설명하는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끝으로 성화상에 관한 공의회의 개최 내역과 내용을 부록으로 첨부합니다.

 

이콘이 담고 있는 하느님을 향한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이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거룩한 성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모자이크, 성 소피아 성당, 이스탄불, 튀르키예

 

 

꽃길을 걷다

 

꽃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꽃길을 의미하지는 않아도 ‘스스로 꽃길을 걷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해마다 콩을 심으면 비둘기가 콩 싹을 쪼아 먹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그물망을 치고, 푸르대콩, 밤콩, 쥐눈이콩과 흰콩을 파종했지요. 이번 장맛비에 떡잎 말고도 본잎이 두 잎이나 나온 콩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콩밭은 푸른 들판처럼 색깔이 아름답습니다. 콩밭으로 향하는 길은 좌우가 온통 꽃으로 덮여 있습니다. 실은 그 길은 파밭입니다. 그 파밭에 꽃씨들이 떨어져 겨울나기가 된 꽃들을 뽑기는 아까워 남겨 두었던 것이, 이제는 꽃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계절에 따라 입어야 할 옷들을 챙겨 입었고, 나름대로 자녀들도 잘 자라주었습니다. 살면서 크고 작은 질병과 사고들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것은 누구나 겪는 과정입니다. 지금은 소박하나마 식사를 제때 할 수 있으니, 내 인생도 꽃길을 걸어온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닮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를 낙원 꽃밭에 세워 두셨습니다. 그 후 하느님께서는 원죄 때문에 낙원에서 내보낸 그 사람을 못 잊어 하셨습니다.

 

교부 니사의 그레고리오(332?~395?)는 그분께서 스스로 사람이 되시어 사람 가까이 오심을 아름답게 표현하였습니다.

 

“처음,

그가 아직 낙원에 있을 때,

샘물을 마시며 꽃 속에 서 있었는데,

그는 숲 속에서 자연으로 꾸미는 불사의 몸이었다.

(중략)

그러나 사탄의 간여를 통해 죄악으로 깨어나고,

동시에 수많은 탐욕으로 커지는 동안,

영혼은 멸망으로 넘어져 갔다.

그러나 거룩하신 그분이 오시고,

우리의 영혼에 봄을 가져다주시며,

바람에 겁을 주시고 바다에 명령하시길

조용히 해라! 가라앉아라!

곧바로 모든 것은 가라앉고 평정을 가져오신,

그리고 우리의 본성을 다시 고유한 꽃으로 꾸미시는 그분….”

 

 

하느님의 추억

 

한국 전쟁 이후 어렵게 지냈던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책갈피 속에 사이사이 함초롬히 깃들어 있습니다. 그때는 당시 어린아이들에게 배고픔은 일상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저 그러려니 지나가고,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가는 것에 더 흥미로웠습니다.

 

모든 것이 궁핍했던 시절, 시골 아이들에게는 철마다 산에 먹을 것이 있었습니다. 이른 봄에는 메싹이나 삐리, 칡뿌리가 있었고, 묘소 주위에 피어난 까치밥을 따서 손바닥 위에 비벼 입 숨으로 불어먹기도 했습니다. 5월이면 떨어진 감꽃을 부지런히 주워 모아 풀 꿰미에 꿰어 목에 걸고 하나씩 뜯어 먹으며 친구들과 뛰놀았습니다. 남의 밭에 들어가 무 한 개를 뽑아들고 후다닥 달아나 우적우적 씹어먹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어른들은 건성으로 야단을 치셨지요. 먹을 것이 주 관심사였지만, 어린이답게 순수하고 걱정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낮에는 해와 구름을 쳐다보고, 밤에는 달과 별들도 헤아렸습니다.

 

봄, 가을마다 신부님께서 공소에 오셨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신부님이 오신 날, 어머니께 잡혀 처음 고해성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정도 사실상 고문이었지요. 찰고(察考, 기도문이나 문답 외우기)를 해야만 고해성사 표를 주시는데, 잘못한 죄를 신부님께 낱낱이 고해야 하는 고해성사가 더 걱정거리였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에 두 손을 얹고 고해성사를 하러 방에 들어가면, 의자에 앉아계신 신부님과 나 사이에는 대발이 쳐 있었습니다.

 

“죄 고백해 봐.”

“… 엄마 말을 안 들었어요.”

“또.”

“남의 밭에서 가지를 몰래 따 먹었어요….”

 

기어들어 가는 모깃소리로 아뢰면, 신부님께서는 큰 소리로 “뭐라고 안 들려! 더 크게 말해” 하며 쩌렁쩌렁 큰소리를 치셨습니다.

 

‘내가 너무 큰 죄를 지었나 봐….’ 찰고를 하기 위해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문답을 외워야 했는데, 신부님 주변에는 어른들이 앉아 계셨습니다.

 

“천주경(주님의 기도) 외워 봐.” 기도문 외에 교리문답을 이것저것 물어보시는데, 문답 중에 “사람은 누구이뇨?”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났느니라”라고 대답하자, 그다음 질문은 “천주는 누구시뇨?”이었습니다. “천주는 만선만덕(萬善萬德)을 갖추신 순전한 신이요, 만물을 창조하신 자시니라.” 그 외에 하느님에 관한 질문이 있었는데 “지극히 아름다우시고…. 무시무종(無始無終)하시고” 등 대답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어머니의 성화로 문답을 외우기는 했어도 당시로는 만선만덕이 무엇이고, 무시무종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할아버지 모습으로 연상되는 하느님께서 어째서 지극히 아름답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의 문답이 교회의 신학과 철학이 연결되어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2> 그리스도와 메나, 템페라, 57 x 56 cm, 콥트 이콘, 6세기, 바위트 수도원, 이집트. 바위트의 수도원장인 메나와 그리스도의 이콘으로 ‘나의 친구 메나’라는 내용처럼 아주 친근한 듯 예수님의 오른팔이 메나의 어깨에 올려져 있다. 머리와 후광이 유난히 크게 그려지고,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8,5)를 연상시킨다.

 

 

참 이상한 그림, 이콘

 

필자가 독일에서 처음 이콘(ICON)을 보았을 때, 참 이상한 그림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극히 ‘아름다우신 분’의 얼굴 모습도 약간은 평면적인 데다가 이목구비가 어디엔가 맞지 않는 듯한…. 약간은 울긋불긋한 불교의 탱화와 비슷한 모습도 비쳤습니다. 머릿결도 단순하고, 눈은 크고, 코는 좁고, 입도 작고, 살결은 황토색에서 갈색 사이의 어색하기만 한 이 그림은 무엇일까?

 

내가 아는 성화는 성탄 카드에서 본 성가정의 모습이었습니다. 아기 예수의 환한 빛과 합장하는 성모 마리아와 지팡이를 들고 경건하게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성 요셉의 모습이었습니다. 라파엘로와 다빈치 또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성화가 익숙한 나에게 이콘은 너무나 생소했습니다. 환하고 뽀얀 피부에 통통하고 귀여운 아기 예수에 익숙해진 우리 눈에 흰 천으로 붕대 두르듯 꽁꽁 감겨, 네모난 나무상자 안에 바짝 마른 북어처럼 누워있는 아기 예수의 모습이란! <그림1>

 

독일 쾰른대학교의 비잔틴학 교수인 닛센(Wilhelm Nyssen) 신부님은 동유럽에서 찍은 여러 종류의 이콘 사진을 마치 대단한 작품처럼 크게 확대해 전시회를 열면서 참 좋은 그림이라고 열광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 그림이 좋다는 것이지?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하시고 사람을 만드셨으니, 사람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닮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본다면 하느님은 원형(原型)이시고, 사람은 영광스럽게 하느님의 이콘이 된 것입니다. <그림2>

 

이콘(E-ICON, κωυ, ИКОНа, 성화상<聖像>)은 그리스어에 어원을 둔 ‘닮다’라는 의미인데, 차츰 ‘닮은꼴’, ‘그림’, ‘모상(模像)’, ‘닮은 상’, ‘닮은 모습’, ‘모습’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주로 나무판 위에 그려진 동방 교회의 신학·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그림’, ‘상(像)’, ‘모습’으로 불립니다. 영어로는 ‘아이콘’으로 읽기 때문에 요즈음은 미디어에서 ‘이미지’란 의미로 자주 사용합니다. 그 사람은 ‘민주주의의 아이콘’, ‘정의의 아이콘’ 등의 상징적 의미로 쓰기도 합니다.

 

왜 이콘의 얼굴은 평면적일까? 옷의 주름도 간결하고 평행선 흐름처럼 그리고, 왜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을까?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즉 ‘사실적이지 않게’ 하기 위해, 사실적 표현을 피하고자 그렇게 그렸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뒤에서 설명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월 7일, 김형부(마오로, 전 인천가톨릭대학교 이콘담당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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