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가톨릭 교리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사랑의 실천으로 이해하는 삼위일체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30 ㅣ No.424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사랑의 실천으로 이해하는 삼위일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주교 신자가 기도할 때 가장 먼저 하는 행위는 ‘성호경’을 바치며 십자를 긋는 일이다. 개신교 신자들과 달리, 천주교 신자들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나, 묵주기도를 시작할 때나, 미사를 시작할 때나, 다른 일반적인 기도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성호경’을 바치며 자신의 몸에 십자를 긋는 것이다.

 

십자를 그으면서 바치는 기도문(성호경)을 보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은 성호경을 그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신앙을 고백한다.

 

성호경을 바치면서 십자를 긋는 행위를 보면, 먼저 왼손은 배꼽 주변에 얹고 오른손 끝부분을 이마에 찍으며 “성부와”, 그리고 가슴에 찍으며 “성자와”라고 말한다. 이는 하늘에 계신 성부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성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을 상징하여,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수직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왼쪽 어깨와 오른쪽 어깨를 찍으며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말하는데, 이는 성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시어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를 영원토록 지켜주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수평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천주교 신자들이 어디에서나 성호 긋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지만, 성호 긋기를 창피해 한다면 이는 곧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배반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 교리

 

‘삼위일체 교리’는 천주교 4대 교리 가운데 하나이다. 천주교 4대 교리는 ‘천주존재, 삼위일체, 강생구속, 상선벌악’을 말한다. 그래서 천주교회에서는 ‘비상세례’라고도 하는 ‘대세’를 줄 때, 이 4대 교리를 묻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이 삼위일체 교리를 무척 이해하기가 어려운 교리로 인식하고 있는 듯한데, ‘삼위일체’ 교리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교회의 교리책이나 신학서적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하나의 실체(substantia) 안에 세 위격(persona)으로서 존재하시는 하느님의 신비를 삼위일체(Trinitas)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 하느님이 세 위격으로서 존재하시는데, 이 위격들은 하나의 하느님 본성(natura)이시고, 하나의 하느님 본질(essentia)이시며, 하나의 하느님 실체이시라는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삼위일체의 신비를 더욱 구체화하고 세분화하면서 내재적 삼위일체(Trinitas immanens)와 구세경륜적 삼위일체(Trinitas  oeconomica)로 구별하여 이해하고 있다. 내재적 삼위일체는 인간 역사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영원으로부터 내재하시는 하느님의 실재를 가리키며, 구세경륜적 삼위일체는 구체적인 인간 역사 안에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실재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교회의 규정화된 설명은 역시 단번에 이해하기가 어렵다. 누군가는 ‘하느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라면 세 분의 하느님이지 어떻게 한 분이신 하느님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마치‘1+1+1=3’이지, 어떻게‘1+1+1=1’이 될 수 있는가 하며 의심을 가질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1+1+1=3’이라고 배웠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1+1+1=1’이 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게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세 개의 물방울이 모여도 물방울은 하나이고, 세 개의 물줄기가 만나도 물줄기는 하나이다.

 

삼위일체의 교리 내용은 한마디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역사 안에서 언제나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데, 하느님의 사랑이 ‘삼위일체’로 드러나셨다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 ‘성부’께서는 아름다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 ‘성자’를 보내주시고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지니게 하시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으며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까지 하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고아’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려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성령’을 보내주셨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성부 · 성자 · 성령의 모습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면서 우리 인류를 끊임없이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의미가 담긴 신앙고백이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 내용이다. 그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사랑이신 하느님’이라고 우리는 고백할 수 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사랑이신 하느님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무런 조건 없는 헌신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인 것처럼, 하느님도 우리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을 보여주는 분이시다.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래서 ‘하느님’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사랑’이고, 우리에게 제일 좋은 가치관이 되고 계명이 되는 것이 ‘사랑’임을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있다”(마태 22,37-40).

 

그래서 성당에서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사랑’이고, ‘사랑을 어떻게 하면 잘 실천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원수까지도 사랑하십시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까지도 사랑하십시오.’ 교회는 우리에게 ‘사랑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고, ‘사랑하라.’고 지시하고 있으며, ‘사랑하는 방법들’을 찾아 실천하도록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의 신앙 대상은 ‘하느님’이시다. 그 하느님은 사랑이신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사랑은 삼위일체로 잘 드러났다.

 

하느님은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아무런 차별 없이 똑같은 사랑을 주시는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잘난 사람에게나 못난 사람에게나, 많이 배운 사람에게나 못 배운 사람에게나, 좋은 자동차를 가진 사람에게나 털털이 자동차도 갖지 못한 사람에게나 아무런 차별 없이 똑같이 햇빛을 내려주시고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는 사랑이신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시는 ‘차별이 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분이시다. 하느님은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랑, 차별을 둔 사랑을 하지 않으시고, 모든 이에게 모든 사랑을 똑같이 베풀어주시는 보편적인 사랑을 하신다.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는 우리 신앙인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하고 차별이 없는 사랑을 실천할 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내고 증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하기가 힘들다면, 차라리 이제부터는 ‘사랑받도록’ 노력해 보자. 사랑은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무언가를 받으면 내어놓기가 쉽지 않겠지만, 사랑은 다르다. 그래서 사랑을 받은 만큼 사랑하기가 쉬워진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는가? 하느님으로부터, 가족들로부터, 이웃 형제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누군가가 왜 나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있는가?

 

 

사랑의 실천으로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해야

 

우리 신앙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삼위일체 교리’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할 교리다. 탁상공론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교리가 아니라, ‘사랑의 실천’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교리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들부터 진솔하게 ‘사랑하면서’ 삼위일체 교리를 몸으로 익혀 나가야 하겠다.

 

나와 가장 가까운 이웃 형제들로부터 ‘사랑받으면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체험해야 하겠다.

 

* 배승록 프란치스코 - 대전교구 신부. 1991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프랑스 파리 가톨릭 대학교에서 교부학을 전공하였다. 솔뫼 피정의 집 관장을 역임하였고, 지금은 서산 동문동성당 주임 겸 서산지구장, 대전 가톨릭 대학교 교부학 교수로 있다.

 

[경향잡지, 2011년 4월호, 배승록 프란치스코 신부]



5,401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