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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가정의 위기: 진단과 해결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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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2-19 ㅣ No.798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준비하며] 가정의 위기 : 진단과 해결방안



가정을 생각하며

가정이란 무엇일까? 사전에 따르면 가정은 부부 · 자식 · 부모 등 가족이 공동생활을 하는 조직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으로 성립되어 왔던 가정은 천생연분의 남녀가 백년가약을 맺고 사랑을 가꾸어 가는 보금자리이자 안식처로 여겨져 왔다. 원초적인 공동체인 가정은 신생아가 처음으로 접하는 사회로 인간관계의 출발점이었으며, 개개인의 인격이 형성되는 장이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단위로서 한정된 자원으로 호혜적이고 자발적인 돌봄을 통해 구성원 간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일상생활의 영위, 인간다운 삶, 공동체의 문화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가정은 치열한 경쟁과 사회적 위기상황에서도 우리를 지키는 힘이며, 삶의 질을 유지하고 개선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단위인 가정이 건강하면 그 사회도 건강하고, 가정이 병들면 그 사회도 병들게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가정은 위기를 맞고 있다. 생산과 소비의 중심이었던 가정은 잠자리만을 제공하는 반쪽짜리 하숙집으로 전락하였고, 격화된 경쟁구조는 가정의 안식과 휴식기능을 빼앗아버렸다. 또한 산업화와 물질주의의 확산은 가정의 종교적 기능을 약화시킴으로써 세속적 인간관계에 치중하도록 만들어버렸다.


가정의 위기

가정은 성적 욕구의 충족, 출산과 양육, 안식처의 제공 등과 같은 본질적 기능과 질서유지, 종교나 제사의식, 생산과 소비, 오락 등과 같은 비본질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 전통적으로 대가족제도 아래에서는 가정이 이 두 가지 기능을 적절히 수행해 왔으나, 핵가족화하면서 수행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가정의 비본질적 기능은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 기능마저도 위협받고 있다.

가정이 처한 위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구조적인 측면에서 가정의 외형적 변화와 심리적인 측면에서 구성원 간의 내적 유대감의 상실을 지목할 수 있다. 먼저, 가정의 기능적 위기는 가정의 외형적 구조가 흔들리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는데, 가족구조의 변화와 해체가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가족구조의 변화는 전통적인 대가족제에서 핵가족제로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 핵가족제도 아래에서는 부부 간 노동의 분화로 남편은 밖에서 돈을 벌고, 부인은 안에서 가사활동을 하는 것을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하였으나, 맞벌이부부가 증가하면서 자녀양육을 외부에 위탁하는 가정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경제력이 없는 노인들은 양로원 같은 외부 기관에 의탁하여 생활하고 있다.

핵가족제도 아래에서는 부부의 상호의존도가 매우 높아지면서 조그마한 변화만으로도 가정의 해체위기가 닥치게 된다. 사별, 이혼, 별거 등으로 가족 자체가 와해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한 부모 가정 비율은 9.4%로 2011년 OECD 국가 평균 9.1%보다 높으며, 노인가정의 비율도 전체 가정의 54.1%, 홀로 사는 노인가정의 비율만도 20.2%이다.

지난 25년 동안 이혼가정은 4배나 증가하였으며, 미혼가정은 2배가 증가하는 등 가정의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미혼가정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기러기 가족이라는 자녀교육을 위해 부부가 별거하는 특이한 형태의 가정도 늘어나고 있다. 쇼터(Edward Shorter)의 말처럼 현대사회의 핵가족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가정은 이처럼 외형적으로 해체의 위기에 놓여있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으로도 유대의 상실이라는 위기상황에 놓여있다. 가족 구성원 간의 대화와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구성원 간의 심리적 유대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부모와 자녀의 하루 평균 대화시간 35초’, ‘자녀와 매일 5분 대화하기’ 같은 담론들이 출현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자녀교육에 열정을 갖고 지원하고 있는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자녀와의 하루 평균 대화시간은 16분에 불과하다는 보고도 있다.

오늘날에는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기보다는 스마트폰에 의존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자주 접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의 대화내용을 보면 더 안타깝다. “집에 왔니? 어디니? 밥 먹었니?” 등과 같은 간단하고 형식적이면서 아이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수준의 대화들이 오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대화를 소통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형태의 대화는 시간 부족 때문이라기보다는 대화의 소재 부족 탓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없다 보니, 공유하는 문화가 없고, 공유하는 문화가 없으니 대화의 소재가 단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세대차이라는 말로 표현되고 세대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화는 삶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러한 삶이 자연스럽게 공유되지 않으니 인위적인 조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법을 배우고, 아버지학교가 생기고 부부교실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들은 오늘날 우리의 가정이 스스로 호흡하지 못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하는 식물인간과 같은 상태에 처해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정의 위기 진단

이처럼 가정이 해체되고 심리적 단절과 갈등이 야기되는 원인은 공동체성이 상실되고 개인주의가 그 영역을 무차별적으로 확산해가고 있음에서 찾을 수 있다. 개인주의는 경제우선주의와 학벌에 기초한 입신출세주의 교육관을 통해서 그 영역을 더욱 확장해 오고 있다. 그리고 이를 추동하는 힘은 효율과 경쟁만을 앞세우는 성장제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경제우선주의는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의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부유층은 자신들의 무한한 욕망으로 자본의 힘을 확장하고 있으며, 빈곤층은 벗어날 수 없는 가난과 씨름하고 있다. 특히 양극화의 심화로 점점 확대되는 빈곤층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치솟는 주거비와 교육비는 서민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렇다보니 결혼을 회피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노부모를 부양하는 일은 무거운 짐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현실에서 가정의 핵심적 기능 중의 하나인 출산 역시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신생아 출생률은 1.19명으로 세계 최저수준이며, 저출산의 이유가 교육비와 육아부담 등과 같은 요인 때문이라는 사실은 가정이 무거운 짐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현실에서 가족 간의 대화가 활발하게 일어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제문제와 더불어 학벌에 기초한 입신출세주의 교육관은 한국의 가정을 위기에 몰아넣는 또 다른 핵심요인이다. 한국사회의 독특한 현상인 ‘기러기 가족’ 문제는 교육이 가정을 어떻게 해체시키는 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교육, 특히 대학 입시는 그동안 한국의 가정에서 중요한 가치였던 효, 예, 사랑, 화목, 공동체의식 등을 밀어내고 있다. 입시라는 담론이 가정의 모든 활동을 지배하고 정당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수험생을 둔 부모는 집안행사에 참석하지 않아도 면책이 된다.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의 행위나 잘못도 모두 입시 때문이라면 정당화되는 것이다.

또한 교육비는 다른 비용보다 높은 투자 우선순위를 갖게 된다. 부모의 역할 역시 이기적인 존재인 학부모로 대체되며, 도덕이나 양심보다는 성적이 우선시되고, 점수가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는 기제이다. 그러다 보니 가정이 제대로 기능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동력의 이면에는 앞만 보고 달려온 성장제일주의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동반성장보다는 경쟁과 승리만을 강조하는 것이 성장제일주의다. 질보다는 양을 강조하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며, 오로지 강자만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성장제일주의가 이기주의에 기초한 무한경쟁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문득 10여 년 전 만난 적이 있는 기러기 아빠의 독백이 생각난다.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모든 기러기 아빠의 꿈처럼 화목한 가정은 가능한 것일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답은 간단하게 보인다. 이기주의를 버리고 공동체정신을 갖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물질주의에 매몰되어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깨닫는 일이 필요하다. 물질에서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그러한 가치를 가르치고 실천해 왔다.

그렇지만 모두가 복음화하지 않고서는 그러한 가치가 구현되기 어렵다. 그래서 사회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고 국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이기주의에 기반을 둔 성장제일주의 정책과 사회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

국가는 구성원인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결혼이나 출산을 미루어야 하는 가정,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깨어진 가정, 양육이나 교육 때문에 자녀를 낳지 않는 가정, 입시 때문에 억압받고 꿈을 펼치지 못하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가정이 많은 사회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행복한 사회의 전형인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을 보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효율과 경쟁을 앞세우기보다는 평등과 복지를 먼저 생각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주거와 교육의 영역에서 복지가 실현될 때 가정은 원초적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회복하기 시작할 것이다.

* 이두휴 미카엘 -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교수이며 한국교육사회학회 상임이사로 있다. 한국현대사회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5년 2월호, 이두휴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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