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신앙의 기쁨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3-11 ㅣ No.1777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신앙의 기쁨

 

 

세상의 기쁨

 

사람은 누구나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우리가 어떤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지, 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지 곰곰이 살펴보면, 그 기쁨의 이유와 모습은 다양합니다. 우리의 오감이 즐거울 때 우리는 소소한 기쁨을 느낍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던 것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기뻐 환호합니다.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해보면, 기쁨의 원천 역시 다양합니다. 물질과 감각에서 얻는 기쁨, 성취와 업적에서 오는 기쁨, 관계에서 발생하는 기쁨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세상의 기쁨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 사라져 갑니다. 영원히 지속하는 기쁨은 없습니다. 기쁨의 원인과 환경이 소멸하면 기쁨도 스러집니다. 또한, 기쁨은 주로 우리의 감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덕스럽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물질주의적 자본주의 세상은 점점 마약 같은 기쁨만 양산하고 있습니다. 물질주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데서 오는 내적이고 고요한 기쁨보다는 외형적이고 물질적이고 쾌락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소비주의와 개인주의의 확산 속에서 사람들은 “안이하고 탐욕스런 마음과 피상적인 쾌락에 대한 집착과 고립된 정신”(‘복음의 기쁨’, 2항)으로 살아갑니다. 물질과 재화가 주는 기쁨은 한계가 있습니다. 물질과 재화의 총량은 제한되어 있고, 자본주의는 물질과 재화를 소수의 사람들에게 몰아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점점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찬 사람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2항)

 

후기 자본주의 시대는 모두에게 물질주의적 기쁨의 조건이 갖춰지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을 점점 세상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많은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행복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핑계와 불평거리를 찾으려는 유혹을 받습니다.”(7항) 기쁨의 추구가 오히려 불평과 분노를 낳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물질적 성장과 기술의 발전은 쾌락의 기회를 증대시켰습니다. 하지만 욕망과 감각의 쾌락이 확대된다고 해서 참된 기쁨이 확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적 물질주의 쾌락은 진정한 기쁨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 시대는 다시 한번 진정한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쁨

 

성경은 구원의 기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서들은 희망하고 고대하던 메시아에 대한 기쁨을 노래합니다. “스바니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구원의 기쁨이 넘치는 잔치 한가운데에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신다고 말합니다.”(‘복음의 기쁨’, 4항) 구약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기쁨은 “우리가 소소한 일상 안에서 날마다 느끼는 기쁨”(4항)입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주시는 구원의 초대에 응답하는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4항)

 

신약성경 역시 구원의 기쁨을 숱한 사건과 예시를 통해 들려줍니다(‘복음의 기쁨’, 5항 참조). “기뻐하여라.”(루카 1,28) 라는 천사의 인사, “내 마음이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뜁니다.”(루카 1,47) 라는 성모님의 노래,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라는 예수님의 선언은 구원의 기쁨에 대한 분명한 증언입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뵈었을 때 그들은 기뻐하였고(요한 20,20), 박해 속에서도 기쁨에 가득 차(사도 13,52)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거행했습니다(사도 8,39; 16,34). 이처럼 성경은 구원의 기쁨, 즉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기쁨,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 복음을 전하는 기쁨에 대해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기쁨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생겨납니다.”(‘복음의 기쁨’, 1항) 구원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함께 생의 여정을 걸어가고,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기쁨입니다. 신앙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흘러나옵니다.”(7항)

 

진정한 기쁨은 어떤 외적 조건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기쁨은 어떤 성취를 통해 얻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의 기쁨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은총의 선물로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총의 기쁨은 예수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유명한 정의에 따르면,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이 명제를 ‘복음의 기쁨’에서 직접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7항)

 

막막한 이승의 여정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기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생에서 우리가 맞이하는 많은 고통과 슬픔이 이 신앙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을 때때로 방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물질적 쾌락의 거대한 유혹들이 참 신앙의 기쁨을 망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 곁에서 우리를 끝없이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느낄 수 있게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신앙의 기쁨이 더디지만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확고한 신념으로서, 극심한 비탄 속에서도 서서히 되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복음의 기쁨’, 6항)

 

신앙의 기쁨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지만, 우리의 노력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기쁨은 선물이며 초대이기 때문에, 그 선물과 초대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과 태도가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어디에 있든 바로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그분과 만나려는 마음, 날마다 끊임없이 그분을 찾으려는 열린 마음을 가지도록 권고합니다.”(‘복음의 기쁨’, 3항)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참 기쁨은 오직 주님만이 주실 수 있고, 주님을 통해서만 오고, 주님과 함께함에서 발생합니다.

 

때때로 막연하고 막막하게 여겨지는 이승의 삶 안에서 주님을 알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신앙 안에서 주님께 질문을 던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늙어가는 요즘 확연히 깨닫습니다. 세상의 모든 기쁨들은 다 지나갑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만이 영원합니다. 주님을 찾고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신앙인 모두가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3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986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