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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ㅣ구역반

소공동체 활성화 우수사례 수상작: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는 소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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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9-23 ㅣ No.109

[소공동체 활성화 우수사례 수상작]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는 소공동체

 

 

소개의 글

 

안녕하십니까. 4지구 정릉동 성당 12구역 구역장, 이석훈 데레사입니다. 저는 14세가 되던 해 봄, 청주교구 주덕성당 유동공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부모님과 오빠 두 분이 모두 신자이며, 특히 큰 오빠는 공소회장을 맡아 저를 주님의 종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20세에 서울로 왔으나 직장일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다행히 선배 언니의 권유로 JOC(가톨릭노동청년회) 활동을 하며 신앙을 다졌고, 나중에는 2년 연속 섹션 회장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27세에 외인인 남편과 관면 혼배를 하고 요셉과 세례자요한 두 아들을 하느님께 선물로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후 정릉동 성당의 반장을 시작으로 구역장을 8년간 하였고, 길음동으로 이사를 하여 살았습니다.

 

정릉을 떠난 지 6년만인 2002년, 정릉동 성당으로 다시 전입하자마자 12구역장을 맡아 교우들 얼굴 익히랴, 실태파악하랴,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구역장을 맡은 지 1년 후에는 남성구역장마저 공석이 되어 어려움이 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주님의 은총과 인도하심으로 여기며 8년째 12구역장을 하고 있습니다.

 

 

남성 모임 활성화

 

남성 모임 활성화는 모든 구역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저희 구역은 재개발로 분리 독립된 아파트 지역의 외곽이다 보니 세대수는 많지만 분산되어 있습니다. 또한 생활이 어려우신 분들이 많으며 형제님들도 몇 분 안 계십니다.

 

남성 모임 활성화를 위하여, 저는 먼저 여성 모임 때마다 함께 기도하며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였습니다. 이에 구역 야유회를 계획하고 냉담 교우와 열심하지 않은 남성 교우를 꾸준히 방문하면서 반장님들과 구역 신자들이 한 가지씩 음식을 준비하여 예정된 야유회를 성사시켰으며, 그곳에 형제님들 여섯 분이 함께 하셨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남성모임 대표를 뽑고 첫 모임을 가졌지만, 그 후의 모임에는 겨우 두 분만이 참석하여 위태로운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고, 다음 해 다시 야유회 모임을 갖는 것을 계기로 여성 반장님들과 기도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형제님들께 다가가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하여 남성 모임의 필요성을 인식시켜 드리고 격려하였습니다. 이에 한 분은 레지오 단원으로도 입단하여 냉담 교우를 찾아 방문하며 열성적으로 활동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저도 매우 흐뭇하였고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항상 저희와 함께 해주시고 이끌어 주신 주님께 새삼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냉담 교우 모시기

 

2008년 본당 신부님께서 새로 부임하시면서 냉담 교우 줄이기를 사목방침으로 정하셨습니다. 이에 냉담 교우 명단을 파악한 결과 우리 구역은 125명 중에서 21명으로 17%나 되었습니다. 냉담 교우 비율을 3%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전 구역 신자들에게 2명씩 짝을 지어 냉담 교우 1명씩 배당을 주고 집중적으로 기도하며 방문토록 하였습니다. 특히 자연스럽게 만나고 일상적인 대화를 통하여 스스로 마음을 열도록 적극 권유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며 거의 한 해가 지나자, 한두 명씩 고해성사를 보겠다고 나서는 분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부활시기에는 온 가족이 고해성사를 보는 경우도 있어, 더욱 열심히 방문하고 친교를 나누며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와 청원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결국 2년 만에 3%가 줄었습니다. 2010년에는 냉담 교우 수를 한 자리 수로 내려가게 하자는 목표를 세웠고 열심히 활동한 결과 13명으로 줄었습니다. 2011년에는 냉담 교우들을 인도하기 위해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합니다.

 

 

어려운 이웃 돌봄

 

우리 구역은 고령의 노인들과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호적상 남편과 아들이 있어 정부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할머니가 계신데 폐지를 주워 겨우 생활하시기에 자주 방문하고 반찬도 해다 드리고 본당의 빈첸시오회에 연결하여 도움을 드렸습니다.

 

한편 몸이 불편한 자매님이 남편의 실직까지 겹쳐 이혼 직전의 위기에 처해 있어 그 가정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본당 빈첸시오회에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 후 남편이 일용직 근로자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그 자매님의 건강도 회복되어 함께 일을 하게 되었고 남편도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본당 단체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상가(喪家) 돌봄

 

구역장 일을 하며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상가를 돌보는 일입니다. 특히 냉담 교우들이 위령회(연령회)의 도움으로 무사히 상을 치른 후 자녀들이 성사를 보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 하느님의 은총을 피부로 느끼며 힘이 절로 납니다.

 

한번은 성가복지병원에서 수녀님이 대세를 주셨다며 저희 성당으로 연락을 하였습니다. 반장님들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가니 문상객도 거의 없고 분위기가 몹시 쓸쓸하고 허전하였습니다. 가족은 아들 1명뿐이었고 별거하던 부인은 늦게야 왔습니다. 저희들은 장례 절차와 미사에 대해 설명하였고, 아들은 모든 절차를 저희에게 맡겼습니다. 그래서 장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상주와 동행하며 돌보아 드렸습니다. 장례 후 성당에서 만나자는 상주의 전화를 받고 만남을 가졌는데, 아버지를 위해 49일까지 매주 1회씩 연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여 미사 지향을 신청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입교에 대해 설명하고 전하였더니 직장 관계로 교리반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젊은 청년이니 인터넷 교리로 안내하여 현재도 지속적으로 돌보고 있습니다.

 

 

선교 활동

 

오래전에 우리 구역 신자 할머니 한 분이 울면서 딱한 사연을 전해왔습니다. 작은 아들은 40세가 되었는데 결혼도 하지 않고 어머니의 속을 썩이고, 남자가 생겼으니 헤어지자는 큰 며느리에게 충격을 받은큰 아들이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평생을 하반신 마비의 불구로 살아야 한다고 하며, 설상가상 그 와중에 큰 며느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할머니는 망연자실 그저 한숨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했습니다. 저 또한 분노가 솟구쳐 어떤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몰라 할머니 손을 잡고 한동안 함께 울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이럴 때일수록 주님께 의지하여 힘을 내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큰 아들의 생명을 거두지 않으신 것은 분명 큰 뜻이 있을 것이라는 굳은 신념으로 차분하게 할머니를 도울 방법을 구역 반장님들과 의논하였습니다. 우선은 하반신 마비로 실의에 빠진 큰 아들의 마음을 풀어드려 새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남성 교우들과 함께 1년여 꾸준히 방문하며 우리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간절한 기도로 헤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가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굴도 내밀지 않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얼굴을 보이며 주님의 기도를 함께 따라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놀라, 이것이야말로 진정 하느님의 위대한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분은 통신교리로 영세까지 받았으며 병자 영성체를 하며 기뻐하였습니다. 그 후 몇 번의 병자 영성체를 더 받고는 하느님 곁으로 편안히 가셨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를 포함하여 우리 구역 식구 모두는 간절한 기도로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 구역 공동체에 어려움이 있을 때 한 마음으로 뭉치는 원동력이 되곤 했습니다. 저 역시 구역장을 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큰 보람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치는 글

 

구역장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가보니 4, 5번 척추가 빠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8시간 동안 수술을 하고 척추에 6개의 심을 박아 고정을 시켰습니다. 그 후 무리하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주님께서 회복시켜 주셔서 지금까지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13년 전에는 보수적이고 완고한 성격의 남편이 세례를 받았고, 제가 구역장 제의를 받았을 때에 남편에게 상의를 하니 ‘하느님의 뜻이라면 해야지’라며 흔쾌히 동의를 해 주어 편안한 마음으로 8년째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힘들다고 투정을 부린 적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며느리처럼 자상하고 고맙게 대해주시는 할머니들과 친정 엄마처럼 잘 따르며 한 마음으로 협조해 주는 우리 구역 공동체 식구들이 힘을 실어 주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도 힘이 닿는 한 구역 식구들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할 생각입니다.

 

주일 낮 미사 후 성당 마당으로 나가면 “할머니!”하고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오는 손자 스테파노를 끌어안을 때 정말로 행복합니다. 미숙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힘과 넘치는 축복을 내려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

 

[소공동체길잡이, 2011년 9월호, 정릉동 성당 이석훈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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