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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협동조합의 모범 몬드라곤협동조합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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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1-19 ㅣ No.209

사회적 협동조합의 모범 ‘몬드라곤협동조합공동체’ - 세계 최고의 협동조합 몬드라곤 이야기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사회적 경제’의 새로운 가능성 입증


스페인 북부 피레네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산악도시 몬드라곤(Mondragon). 몬드라곤은 스페인 공업도시 빌바오에서 50㎞, 지명을 딴 영화제로 널리 알려진 산세바스티안에서 100㎞나 떨어진 외진 산골이다. 이 산골 도시에서 자본주의 병폐인 ‘이기주의’ ‘배금주의’를 넘어서는 기적의 행진이 벌어지고 있다.


■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 몬드라곤

아침이면 후안 루이스 아레기(57)씨는 이웃에 사는 에나르 카노(37)씨를 자신의 차에 태워 함께 회사로 향한다. 벌써 10년 넘게 해온 일이어서 자연스레 몸에 익었다. 두 사람이 함께 출근하는 곳은 세계 최대의 협동조합이라 불리는 몬드라곤협동조합공동체(Mondragon Corporation Cooperative·MCC). 아레기씨는 MCC 재무담당이사로, 카노씨는 MCC 산하 금융기관인 ‘카하 라보랄(노동인민금고)’ 지점에서 일하고 있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두 사람을 비롯한 MCC 종사자들은 모두 자신이 하는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50여년 전 퇴락한 광산촌락이던 몬드라곤을 첨단을 걷는 전원형 공업도시로 탈바꿈시켰을 뿐만 아니라 스페인 내 연간 매출규모 7위, 일자리 창출규모 3위의 대기업에 다니고 있어서가 아니다. 바로 따뜻한 예수님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하느님 나라를 자신들의 손으로 일궈가고 있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MCC는 몬드라곤 시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사실상 몬드라곤 주민들의 삶과 일체화돼 있다. 몬드라곤 시 인구 2만5000여 명 중 노동가능 인구는 1만3000명 정도. 이 가운데 3분의 2가량인 8300여 명이 MCC 조합원이다. 이들은 돈이 필요하면 ‘카하 라보랄’(Caja Laboral)에서 대출을 받고 같은 MCC 산하 소비협동조합인 ‘에로스키’(Eroski)에서 각종 생활용품을 산다. 또 1964년 설립된 사회복지조합인 ‘라군 아로’(Lagun Aro)에서 건강보험과 노후복지 혜택을 받으며 조합원 자녀의 상당수는 MCC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몬드라곤기술대학을 졸업한 뒤 MCC에 취직한다.

에나르 카노씨는 “MCC가 없는 삶은 몬드라곤에서는 생각하기 힘들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몬드라곤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몬드라곤 주민들은 저녁이면 시내 곳곳의 선술집에서 포도주잔을 기울이며 격의 없이 공동의 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도 화제에 오를 때가 있지만 좀 동떨어진 먼 나라 얘기로 들린다.


■ 기적은 사랑에서

몬드라곤 공동체가 누리고 있는 풍요와 평화는 50여년 전 난로와 취사도구를 만드는 조그만 공장에서 시작됐다. 1956년 11월 12일 몬드라곤 시내의 한 주물공장. 수십 명의 마을주민이 모여 MCC의 모태가 된 ‘울고르’(ULGOR)라는 생산협동조합의 탄생을 자축했다. 울고르는 지역주민들이 모은 1100만 페세타(당시 환율로 36만1604달러)를 자본금으로 설립한 MCC의 첫 협동조합이었다.

스페인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MCC는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Jose Maria Arizmendiarrieta) 신부가 1941년 첫 사목지로 몬드라곤교구에 부임해오면서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아리스멘디 신부는 스페인 내전 후 인구의 80%가 떠나 황폐화된 몬드라곤에 마을 아이들을 위한 기술학교를 세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패배의식과 공포에 젖어있던 주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직접 학생들에게 철학과 신학, 사회학 등을 가르치면서 학교 울타리 밖에서도 약 2000여개의 공부모임을 이끌며 청소년 교육에 헌신적으로 매달렸다. 그의 노력으로 그리스도정신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대거 배출됐다. 하지만 정작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생산협동조합이었다. 자신이 키운 제자들 가운데 5명을 선발해 지역주민들의 성금을 모아 설립한 첫 협동조합이 바로 울고르다.

초창기 자금과 기술력, 경영능력 등의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울고르는 시간이 흐를수록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경영적으로도 안정되어 새로운 협동조합들의 설립을 지원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MCC는 260여개의 협동조합형 기업들이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의 4개 부문을 포괄하는 하나의 기업 집단으로 성장했다. 2010년 현재 전체자산 53조원, 제조업·유통업 부문의 한 해 매출 약 22조원, 전체노동자 8만5000명, 해외에 80여 개 생산공장을 갖추고 있는 다국적기업(제조업 매출의 약 60% 해외 매출). 울고르 설립 이후 MCC는 순익 기준으로 연평균 7.5%, 일자리 창출 규모로 연평균 10% 성장해왔다. MCC의 현재를 보여주는 통계는 몬드라곤 공동체가 지닌 힘과 건강성을 대변해준다.

웬만한 대기업을 넘어서는 MCC에는 ‘회장’, ‘CEO’, ‘사장’, ‘대주주’, ‘재벌’ 등의 개념이 없다. MCC의 주인은 특정인이 아닌 출자를 통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MCC에 속한 공동체에서 직접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는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MCC에는 ‘해고’라는 개념도 없다. MCC 소속 사업체가 망하더라도 노동자들은 해고되거나 쫓겨나지 않는다. MCC에 속한 다른 사업체에서, 다른 일이 주어질 뿐이다. 중요한 점은 일자리가 남아서가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몬드라곤 공동체의 모습은 철저한 신뢰와 연대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몰아닥친 2008년 이후 전 세계 수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고 정리해고에 나서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몬드라곤은 단 한 명의 해고 없이 오히려 1만5000여 명의 신규고용을 창출하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사랑이 낳은 몬드라곤의 기적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가상 인터뷰]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

“사회 현실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바꿔야”


故 아리스멘디 신부.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삶을 산다는 것은 오롯이 그분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결단입니다.”

스페인의 기적, 협동조합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협동조합 연합체 몬드라곤협동조합공동체(Mondragon Corporation Cooperative·MCC)의 오늘을 있게 한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1915~1976)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함께 노력했던 결과일 뿐 혼자서 이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스페인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몬드라곤은 지금까지 절망의 땅으로 남아있었을는지도 모른다.

1915년 몬드라곤에서 50㎞정도 떨어진 마르키나에서 자영농장주의 맏아들로 태어난 아리스멘디 신부가 사제서품 후 41년 첫 부임지로 발령받은 곳이 아라사테-몬드라곤이었다. 그는 내전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는 광산도시 몬드라곤을 살리는 길은 정직한 노동과 교육뿐임을 직감했다.

“저는 눈이 한쪽뿐이지만 주님은 제게 더 큰 눈을 주셨고 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대화하라고 이끄셨던 것 같습니다.”

3살 때 사고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은 아리스멘디 신부가 주님이 주신 더 밝은 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만남이 중요했다. 신체적 장애로 운동에 소질이 없음에도 축구리그를 만들어 청년들을 규합하고 학부모들을 상대로 학교 설립운동을 펼쳤다. 처음에는 그를 ‘빨갱이 신부’로 봤던 이들도 하나둘씩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드디어 1943년 10월 지역주민들의 후원에 힘입어 1개반 20명의 학생으로 ‘기술전문학교’ 문을 연 그는 직접 학생들에게 철학과 신학, 사회학 등을 가르치며 교사요 예언자적 삶을 살았다.

“제대로 알 때 주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닮을 때 아는 것이 힘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앎에서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런 신념 때문일까, 협동조합과 교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인식되고 있다.

“사람은 사회 현실을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바꿔나가는데 기여해야 하며 이를 통해 참다운 인간으로 성숙할 수 있습니다. 노동은 하느님이 내린 벌이 아닌 창조와 협동으로 사회개혁과 인간 성숙을 실현하는 은총이자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아리스멘디 신부가 몬드라곤에 와서 사목을 시작한 지 15년이 지난 1956년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이 첫 번째 생산자협동조합 ‘울고르’의 탄생이었다. ‘울고르’란 이름도 그가 가르쳐온 제자 5명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생각’을 만들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고무시키는 것이 제가 한 일의 전부입니다.”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그들과 온갖 고통과 기쁨 등 모든 것을 함께해온 아리스멘디 신부는 “인간적 제도에 모든 것을 걸기보다는 시대의 징표를 통해 주님의 뜻을 읽어내는 눈길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몬드라곤은 여전히 진행 중인 실험입니다.”

아리스멘디 신부가 우리 곁에 있다면 또 어떤 실험에 나설지…. 해답은 이미 예수님을 닮아온 그의 삶 안에 들어있는 듯했다.

[가톨릭신문, 2013년 1월 20일, 서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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