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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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교리문답 해설 (17): 성사일반과 세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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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7-03 ㅣ No.31

제 3 장   성사(聖事)  ****  <일반론(一般論)>

 

 

  이제 가톨릭 교리를 설명하는 내용도 종착역을 향해서 갑니다.  그러나 오늘부터 다루게 되는 성사는 우리 사람들이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설명합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대상에게는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갖는 일반적인 특성은 눈에 보이는 것을 먼저, 확실한 것으로 생각하는가 봅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런 한계를 지닌 인간에게 하느님이 다가오실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한 것이 성사입니다.  성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하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358-204. 성사는 무엇입니까?

<답> 성사는 예수께서 친히 정해주신 유형한 표적으로서, 그 표시하는 은총을 이루어주는 것입니다.

 

  제 3 편, 은총을 받는 방법에 나오는 성사(聖事)에 대한 내용에는 눈에 보이는 형태의 여러 가지 일을 나열합니다.  이런 요소들은 어디까지나 보이는 것을 먼저 찾고 생각하는 인간들을 위한 방법이지, 그것을 인간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하느님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면서 가끔씩 구체적인 적용방법은 변화합니다. 물론 인간의 판단에 따라서 교회의 이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죠.

 

  눈에 보이는 어떤 특성들이 있는지 성사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세례성사는 사제가 신앙인의 길을 걸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라는 말과 더불어 물과 기름을 사용합니다.   견진성사는 하느님의 능력을 받는 성사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우리가 받는 성사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주교님이 오셔서 집전합니다.  그 대상자의 세례명을 부르면서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시오. 평화가 그대와 함께’라고 말하며 기름을 이마에 바릅니다.  고해성사는 화해성사라는 이름으로도 부릅니다. 고해성사의 과정은 길게 설명이 필요합니다만,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제가 고해소나 유사한 장소에서 하느님과 화해를 원하는 고해자의 잘못을 듣고 적당한 훈계를 한 다음, 그가 실천할 일을 지정하고 화해를 선언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아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불만과 의혹을 제기하는 성사가 바로 이 고해성사이기도 합니다.

 

  성체성사는 눈에 보이는 작은 밀로 된 빵을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믿겠느냐고 믿고, 그렇게 인정하는 뜻으로 ’아멘’이라고 응답하면서 예수님의 몸을 손으로 받아 모시는 성사입니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준비할 일은 몸과 마음의 준비를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 병자성사는 아픈 이에게 하느님께서 함께 고통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함께 기도하며, 기름을 바르는 성사입니다. 신품성사는 하느님의 일을 이 세상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을 특별한 예식으로 선발하는 성사입니다. 물론 이 성사를 받는 이들은 신학교라는 특수한 교육을 거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혼인성사는 인생의 출발에 하느님의 이름으로 축복의 인사를 보내는 성사입니다. 자신의 정성과 전존재를 담은 반지를 상대방의 손가락에 끼워주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드리는 이 반지를 나의 사랑과 신의의 표지로 받아주십시오’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성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힘을 우리가 볼 수 있고 느끼게 해주는 감각의 요소를 지닙니다. 이러한 성사의 가짓수로 교회가 인정한 것은 일곱 가지입니다.  예전에는 하느님의 업적을 느끼게 하는 모든 요소를 성사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만, 지금은 일곱 가지만을 ’성사’로 인정하고 설명합니다.

 

   성사로서 받는 하느님의 힘과 작용에 대한 내용입니다.  눈에 보이는 일곱 가지의 표징을 통하여 우리이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힘은 앞서[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바 있는 성화은총[=은총]과 도움의 은총에 관한 것입니다.  말 그대로의 은총은 하느님의 힘으로 우리에게 와 닿는 힘이고, 도움의 은총은 우리가 하는 준비에 따라 그 축복의 힘이 달라진다는 것을 말하는 은총입니다.

358-205. 성사로써 받는 은총은 몇 가지 있습니까? : <답> 성사로써 받는 은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 성화은총을 주거나 더해 줌이고, 성사은총이니, 각 성사의 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도움의 은총을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358-206. 성사는 어떻게 은총을 이루어주게 됩니까? : <답> 성사는 행하는 예절의 힘으로 아무 장애가 없는 이에게 은총을 이루어 줍니다.

 

  다음은 성사에 대한 일반적인 분류입니다. 성사의 가짓수와 각각의 성사 가운데서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구별합니다.  

358-207. 성사는 몇 가지 있습니까? : <답> 성사는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즉 세례, 견진, 고백, 성체, 병자, 신품, 혼인입니다.

358-208. 7성사 중에 죄인이 받는 성사는 어느 것입니까? : <답> 7성사 중에 죄인이 받는 성사는 세례와 고백입니다.

358-209. 7성사 중에 의인이 받는 성사는 어느 것입니까? : <답> 7성사 중에 의인이 받는 성사는 그 나머지 다섯 가지입니다.  즉, 견진, 성체, 병자, 신품, 혼인입니다.

358-210. 일곱 가지 성사 중에 일생에 한번만 받는 성사는 무엇입니까? : <답> 일곱 가지 성사 중에 일생에 한 번만 받는 성사는 세례와 견진과 신품인데, 이 성사를 다시 받지 못하는 것은 영혼에 없어지지 아니하는 인호(印號)를 박아주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톨릭의 성사는 일곱 가지로 구별합니다. 더 많은 종류가 있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지금처럼 일곱 가지로 정리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하느님께 나아가고, 하느님이 사람에게 다가오는 방법이 어찌 일곱 가지 방법만 있겠습니까마는 구별에 대해서 그 과정을 생각하고 질문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내용을 알아듣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의 순서일 것입니다.

 

  성사는 인간에게 하느님이 다가오시는 방법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방법입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말할 수 있겠지만, 교회에서 정한 방법이 그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대상에 대한 것이 208항과 209항의 내용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죄인과 의인을 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경우 판단은 성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판단내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죄인이요, 선인이라고 구별할 기준은 애매 모호합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하여 그렇게 선언할 순 없습니다.  하느님께 최초로 다가가기 위해 자신에게 남아있을 지도 모를 잘못을 먼저 씻어내고 하느님의 뜻을 수용하는 첫 번째 성사는 세례성사이고, 생활하다가 자신의 의지로 하느님에게서 벗어났을 때 다시 돌아설 수 있고 그 마음과 자세를 일정한 절차에 따라 올바르다고 인정해 주는 성사가 고해성사[화해성사]입니다.  이것이 죄인으로 구별하고, 자인(自認)하는 사람들이 받는 성사입니다.

 

  다음 나머지 다섯 개의 성사는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한 자신의 자세를 올바로 돌아보고, 그 준비가 된 사람들이 수용하는 성사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규정입니다.  자신의 삶을 돌이켜서 아무런 부담감이 남지 없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해서 바라볼 그때도 부끄러움의 수준이 용인(容認)될 수 있을 때, 그때라야만 성사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인호(印號)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도장’이라고 이해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인호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일차적인 표식이 되고, 그에 합당하지 못했을 때 악령의 괴롭힘을 직접 받는 곳이라고 옛날 그림교리서[요리강령]에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인호는 한번 밖에 받지 못합니다.  한번 선택된 사람은 그 선택을 보호하고, 그 선택이 맺는 열매를 가꾸어가야 하는 것뿐입니다.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고자 한다면 대부모라고 부르는 관계가 필요합니다.

358-211. 세례와 견진성사 때, 대부 대모를 세워 신친(神親)을 맺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세례와 견진성사 때 대부·대모를 세워 신친(神親)을 맺게 하는 것은 대부·대모가 대자·녀를 타당히 잘 가르쳐 교우 본분을 잘 지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관계 역시 눈에 보이는 부모의 역할과 유사하기는 해도, 같은 관계는 아닙니다. 신앙인의 부모가 되어 올바른 신앙의 길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대부모의 일입니다.  대부모를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회성의 행사를 치루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그에 따르는 관계와 그 의미를 바르게 알아듣는 일이 필요합니다.  신앙인의 부모로 움직이는 행동과 그 자녀로 움직이는 행동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제 1 절  세례

  성사의 첫 번째 항목은 ’세례’에 대한 것입니다. 세례는 입문 성사입니다. 그리스도교회의 구성원을 태어날 때에 받는 성사가 바로 이것입니다.

358-212. 세례는 무엇입니까? : <답> 세례는 물로 씻는 예절인데, 이 성사를 받는 사람은 원죄와 본죄의 사함을 받고 그 죄벌까지 온전히 면함을 받으며 천주의 자녀가 되고 천주교회의 지체가 되고 다른 성사 받을 자격을 받습니다.

358-213.세례성사가 구원을 받기에 필요합니까? : <답> 세례성사가 구원을 받기에 필요한 것이니,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무라도 만일 물과 성령으로 다시 새로 나지 아니하면 능히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례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물로 씻는 예절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목욕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같은 형상(形相)의 일로 이루어지더라도 그가 갖는 의미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기 위한 것이기에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예절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지었던 죄의 영향에 따라, 사람이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인 ’원죄(原罪)’의 고리를 끊고, 이제는 선(善)의 방향으로 사람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 사람을 입문성사인 세례성사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고, 그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라 살 것을 강조하고 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기로 시작한 사람에게 하느님은 함께 계시기에 당신의 생명에 참여할 힘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 힘은 또 다른 성사,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한 성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에 이르게 하는 힘도 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설명하는 말로 성서에 나오는 것은 요한복음 3,5의 말씀(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과 19,34(군인 하나가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의 내용을 꼽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필요한 것이 물과 성령을 씻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던 분은 피와 물을 이 세상에 돌려주십니다, 그 피와 물은 새로운 생명의 힘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받는 세례는 새로운 생명으로 가기 위한 시작일 뿐입니다. 그 길로 계속 가느냐 아니냐의 구별은 우리가 알아듣고 움직이는 모습에 따라서 다가올 삶의 결실입니다.

 

  세례성사의 거행에 대한 내용입니다.  세례성사의 정상적인 집전자는 사제품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말하고 이야기하며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세상에 본보기를 보일 책임이 있고 그렇게 실천해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권리이자, 의무를 교회는 그들에게 부여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교회는 정상적인 집전자가 아닌 사람들이 세례를 거행할 수 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358-214. 세례성사는 누가 거행합니까? : <답> 세례성사는 교회의 사제가 정식으로 거행합니다.

358-215. 세례성사를 부득이한 경우에는 누가 거행할 수 있습니까? : <답> 세례성사를 부득이한 경우에는 아무라도 거행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과 함께 하는 예비자 교리에 대한 내용입니다.  세례성사를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올바른 생활을 위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꼭 알아야만 제대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알 것은 알아야 사람이 빗나간 길로 나아갔을 때에도 올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358-216. 세례성사를 어떻게 예비하여 받습니까?

<답> 세례성사 받기 위하여 아직 철이 나지 않은 어린이는 아무 것도 예비할 것이 없으나, 철이 난 어린이들과  어른들은 교리를 넉넉히 배우고 죄를 통회할 것입니다.

 

  유아세례에 대한 설명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생명을 받아 태어난 어린이에게 그런 사랑과 정성을 양육시킬 수 있도록 기회를 빨리 주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로서 할 일은 어린아이가 세례 받는 일로써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신앙의 분위기 안에서 계속 성장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더 커다란 의무이자 역할입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렇게 강조하지 않고, 사람이 적당한 수만큼 모이면 집전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358-217. 신자들의 자녀가 새로 태어나면 언제 세례를 주어야 합니까?

<답> 신자들의 자녀가 새로 태어나면 세례성사를 지체없이 주도록 해야 합니다.  되도록 3일 안에 주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임종 대세는 옛말로 ’비상세례’라고 했습니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몇 가지 사항만을 확인하고 급히 주는 세례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육신의 건강이 회복된다면, 그에게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올바로 교육을 받을 것을 강조합니다.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내용과 같습니다.

358-218. 외교인들에게 임종대세(臨終代洗)를 힘써 주는 것은 어떠합니까?

<답>외교인들에게 임종대세를 주는 것은 대단히 거룩하고 고마운 일이며, 가장 큰 선공(善功)이요, 기도가 되는 것이므로 힘써 할 것입니다.

  다음은 세례를 거행할 때 드러나는 모습에 대한 설명입니다.  앞서 간단한 설명에서 여기에서 표현하는 것을 가리켜 ’형상’이라는 말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물을 사용하는 것은 신학적인 용어로, ’질료’라는 말을 씁니다.  세례를 주는 정상적인 모습은 물로 이마를 씻으며 십자표를 세 번 긋고 ’형상’의 언어를 말로 하는 것입니다. 단순하고 한번 밖에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그 세례가 갖는 의미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 단순한 행위를 통하여 인간만으로 태어난 우리의 육신이 하느님의 생명을 간직하게 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358-219. 세례를 거행하는 규식은 어떠합니까? : <답> 세례를 거행하는 규식은 "(아무)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하면서 맑은 자연수로 이마나 머리를 씻으면 됩니다.

 

   세례명을 갖는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옛말에는 본명이라는 말을 썼습니다만, 요즘에는 세례명이라는 말을 더 선호합니다.  세례명을 받는 이유는 그 성인과 성녀들의 삶의 모범을 우리 안에 재현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부르기 좋다거나, 누군가에게 들어서라는 정도로 이름을 택하는 것보다는 내가 택하는 성인들의 삶을 알고, 그 삶을 본받기를 바라면서 이름을 택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입니다.

358-220. 세례받는 자들에게 성인 성녀들의 이름을 붙여 본명(本名)을 정하여 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답> 세례받는 자들에게 성인 성녀들의 이름을 붙여 본명을 정하여 주는 것은 그 성인을 주보(주보)와 모범으로 모시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례를 통한 우리 삶의 다짐은 무엇인가를 말하는 내용입니다.  단순한 물로 씻는 예식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지금은 단순하게 보이는 행동이 우리에게 엄청난 삶의 증언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세례라는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내려오고 다가오는 삶의 모습입니다.  악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이끌어대는 마귀를 끊고, 끊기를 노력하고 다짐하고, 교회의 교리를 올바로 믿고. 계명을 지키며 덕을 닦기로 약속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358-221. 세례를 받는 사람은 무엇을 약속하는 것입니까?  : <답> 세례를 받는 사람은 마귀를 끊고 교리를 믿어 증거하고, 계명을 지키며 덕을 닦기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지 않고 같은 효과를 내는 경우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비상시입니다. 말 그대로 세상이 올바른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때, 신앙인들의 삶에 엄청난 해악이 다가왔을 때, 신앙에 의하여 세례를 받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경우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름하여 혈세와 화세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세례의 방법은 수세입니다.  

358-222. 세례를 받지 못하고도 똑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까? : <답> 세례를 받지 못하고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는 혈세(血洗)와 화세(火洗)입니다.  그러나 인호와 다른 성사 받을 자격은 수세(水洗)로만 받습니다.

358-223. 혈세는 무엇입니까?  : <답> 혈세는 순교하는 것이니, 곧 천주와 교회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358-224. 화세는 무엇입니까? : <답> 화세는 하느님을 열심히 사랑하는 것으로서 상등통회와 세례 받을 원의(願意)를 겸하여 지니는 것입니다.

 

  세례는 우리가 단순하게 통과하는 의식의 한 가지는 아닙니다. 겉모습은 그렇게 보일지라도 속사정까지도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비자 교리를 통하여 세례의 의미를 복잡하게 강조하더라도 앞으로 훗날 여러분들이 들을 수 있는 세례의 의미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 말을 지금 모두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는 끊임없이 원초적인 일로 돌아오려고 하는 자세, 바로 그것에 대한 다짐을 가져야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여러번 강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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