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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종이책 읽기: 내 마음의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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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9-18 ㅣ No.185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내 마음의 도덕경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말씀이 미래형도 아니고 과거형도 아니고 지금 바로 현재진행형으로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내 마음의 도덕경」을 통해서 또다시 이 말씀을 듣는다. 도(道)는 무엇인가? ‘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즉 도는 모든 것을 존재의 지평 안에 실어내는 가장 크고 가장 근본이 되는 바탕으로써 길이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마땅히 따르고 걸어야 할 법칙으로써 길이다. 도는 우주 만물의 생명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생명력이다. 도는 생명 중의 생명, 모든 사물에게 생명을 부여해주지만 자신의 생명력은 고갈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다. 이 길과 영원한 생명을 체득하여 알고 따르는 것이 바로 최고의 앎이며 진리다.’라고 「내 마음의 도덕경」 저자 김일권 신부는 적고 있다. 이 말씀에 공감을 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고 수도자인 나에게 있어서 도는 예수님이시다.

이 놀라운 동양적 사유를 다시 대하면서 어쩌면 이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사는 ‘우리’에게 주는 간곡한 메시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치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데이터 전송속도가 더욱더 빠른 LTE(Long Term Evolution)가 기준이 되는 스마트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달리던 길을 멈추고, 보던 것도 끄고, 마음을 청정하게 비우는 수양공부를 해보자고 초대하는 부르심인 것이다. 너무 멀리 와서 돌아갈 수 없다고, 마음이 무뎌져서 아무런 느낌이 없다는 변명은 부끄럽게도 통하지 않는다.

「도덕경」은 다양한 문화권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번역본을 가진 책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양에 250여 종의 번역본이 있었다고 하니 지금은 거의 300여 종에 가까울 것으로 짐작된다. 서양의 많은 철학자, 문학가들이 「도덕경」에서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얻고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아 수양공부에 힘썼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최근에 와서 여성학, 경영학, 심리학, 성경, 정치학, 인간학 등의 영역에서 「도덕경」을 접목하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가장 관심있고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생태적 감성과 영성, 그리고 힐링을 요구하는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도덕경」에 담긴 철학 사상을 재해석하여 우리에게 쉽게 소개하고 있다. 갓난아이, 돌풍, 소나기, 발꿈치, 수레바퀴, 항아리, 흰 실, 통나무, 활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을 철학적 소재로 삼아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유세계로 이끌어 주는 「도덕경」의 매력을 저자는 영성과 성경을 곁들여서 우리에게 쉽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구성이 아주 탄탄한데 「도덕경」의 목차를 따라가지 않으면서도 「도덕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을 짚고 넘어가고 또 장자나 영성의 대가들의 사상과 함께 진정한 도와 길, 덕, 무위 등을 소개하며 마지막에는 삶의 진지한 성찰이 묻어나는 자신의 인생과의 접목이 돋보인다.
 
도를 아십니까? / 청정한 빈 마음과 득도 / 섬김과 살림살이를 위한 무위 / 우주의 꼴과 인생의 멋 / 사색의 길에서 만난 내 자신 / 도덕경 형성에 얽힌 이야기 / 도덕경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런 구성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먼저 ‘위대한 길’인 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서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서 안정되고, 신은 하나를 얻어서 영묘하고,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서 채워지며,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생겨나고 자라며, 통치자는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올바르게 한다.” 여기서 하나는 궁극적 실재인 ‘도’를 가리킨다. 도를 근원적 생명력으로 보고, 도에서 모든 사물이 작용하고 생동하는 생명의 힘이 유래한다고 보는 것이다.

청정한 빈 마음을 위한 도 닦음의 길에 대한 가르침은 얼마나 심원한가? “지식추구의 길은 날마다 더하고 쌓아가는 것이며, 도 닦음의 길은 날마다 덜어내고 없애가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무위에 이르게 된다.” 감관과 이성의 상호작용을 통해 배우고 익히는 일들의 축적과는 달리 덜어내고 없애가는 자기 비움의 길은 수양공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연 오늘날 이 깊이를 깨닫고 실천할 혜안을 가진 벗들은 얼마나 될까? “아직 염색되지 않은 흰 실과 아직 가공되지 않은 통나무처럼 본래 그대로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헛된 생각과 헛된 욕망을 줄인다.”는 말에서 우리가 무심결에 사용하는 ‘소박(素樸)’이라는 단어는 소가 원래 가공되지 않은 흰 실을 가리키고 박은 가공되지 않은 통나무를 가리킨다니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복명 곧 ‘참된 생명활동의 회복’을 선택하길 바라는 노자의 초대를 읽을 수 있다. 이는 「도덕경」 저자가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자연’, 곧 스스로 그러하고 본래적인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절대자와의 만남이나 어떤 궁극적인 실재와의 합일, 그리고 어떤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비워 지식과 물질적 욕망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인의 경지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동서의 종교나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가르침인 것을 「도덕경」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우리 인간이 소중히 간직하고 기억해야 할 삶의 자세를 다시 한 번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세 가지 보물’이었다.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잘 지키고 보존한다. 첫째는 자애로움이고, 둘째는 검소함이며, 셋째는 세상에 처함에 있어 감히 잘난 체하여 앞에 나서려 하지 않음이다.” 자애롭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은 고통이나 어려움, 두려움을 견뎌내는 용기만이 우리의 사랑이 참인지 드러내 준다.

정말 주옥같은 말씀들이 마음을 건드리고 회오리바람처럼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이 책의 가르침을 소개하기엔 지면이 너무 작다고 할 수밖에…. 그러니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말하는 도덕경의 저자를 통해 창조주 하느님을 만나러 떠나보자.
 
[월간빛, 2013년 9월호,
김계선 에반젤리나(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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