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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칼럼: 과학에 대한 믿음과 하느님께 대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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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5-08 ㅣ No.485

[과학칼럼] 과학에 대한 ‘믿음’과 하느님께 대한 믿음

 

 

“나는, 과학이 하느님의 존재를 반증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리처드 파인만, 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지난 연재 때 과학의 ‘방법론적 무신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자연과학은 오직 양(量)으로 측정하여 계산할 수 있는 요소만 다루며,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은 과학의 대상에서 제외합니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물론이나 무신론이 아니라, 단순하고 효과적으로 자연을 탐구하기 위해 임시로 하느님의 존재를 괄호 안에 넣는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 어떤 이들은 이 ‘방법론적 무신론’을 말 그대로의 무신론으로 간주합니다. 그들은 과학의 이름을 빌어, 세상엔 오직 물질뿐이고 신(神)은 없으며, 종교와 신앙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그 하나는 ‘방법론적 무신론’과 진정한 무신론을 혼동하는 부류입니다. 그들은 과학을 찬양하고 맹신하지만, 실상 자연과학의 방법론적 특성을 잘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다른 한 부류는 과학의 방법론을 잘 알지만, 과학의 힘을 너무 과신하기에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모든 것을 거짓이요 허상으로 봅니다. 전투적 무신론자로 잘 알려진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즉,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 일종의 믿음을 갖고 있으며, 그들이 하느님이나 신앙을 부정하는 근거는 과학 자체가 아니라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그들의 믿음입니다. 오로지 과학만을 신봉한다는 뜻에서 ‘과학주의’라 불리는 이 편협한 믿음은 오늘날 대단히 강력해 보이는데, 이는 현대 자연과학이 이뤄낸 눈부신 과학문명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휘황찬란한 과학의 성취를 일단 괄호치고 차분히 따져보면, 과학으로 하느님이나 신앙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과학은 그 모두를 자신의 방법론에서 제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좀 더 정직한 과학자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인정합니다. 천재 물리학자로 유명한 리처드 파인만은, 과학으로는 신의 존재를 반증할 수 없으며, 오히려 과학에 대한 ‘믿음’과 신에 대한 믿음은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정직한 과학자는 뒤이어 고백합니다. 자신은 신을 믿지 않으며, 종교에서 가르치는 많은 교리들을 믿기 힘들다고 말입니다. 과학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에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고 설명할 수도 없는 영역으로 뛰어들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과학에 대한 건전한 ‘믿음’과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믿음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몇몇 무신론자들이 과학의 이름을 내세워 하느님과 그분께 대한 신앙을 한사코 부인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거나 과학으로 포장된 본인들의 신념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두 ‘믿음’을 함께, 조화롭게 어우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과학에 깊이 몸을 담으면 신앙을 갖기 어려워합니다. 신앙은 과학을 거스르지는 않지만 과학을 훌쩍 넘어서는데, 파인만이 말하듯 과학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가진 과학자가 그것을 넘어 하느님을 믿는 일은 하나의 커다란 도전이고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2023년 5월 7일(가해)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 서울주보 6면, 조동원 안토니오 신부(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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