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2: 나희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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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1-08 ㅣ No.1035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2) 나희균 작가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본능이 있어요… 작품활동 이어가는 힘이죠”

 

 

여고생 미술에 눈뜨다

 

그림은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들보다 좀 늦게 시작한 거죠. 나같이 재주가 없는 사람도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늘 했어요. 3학년 때 선배들이 석고상을 기가 막히게 만드는 데 너무 부러운 거예요. ‘나는 도저히 저렇게까지는 못하겠다’하는 열등의식에 시달리기도 했죠.

 

그래도 그림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대학을 미술대학으로 진학했어요. 그때는 그렇게 경쟁률이 높지 않았어요.

 

그런데 입학하자마자 6·25전쟁이 터졌지요. 부산에서 2년쯤, 그리고 서울로 와서 1년을 더 다녔죠. 제대로 배울 수가 없었어요. 당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하긴 했지만, 대학을 제대로 못 다닌 게 한이 됐죠.

 

돈은 많지 않았지만 사업 수완이 좋았던 형부 덕분에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할 수 있었어요. 제가 다닌 학교는 파리국립미술학교였는데, 당시 외국 학생은 따로 시험을 치르지 않았고, 가져온 그림 두 점을 보고 평가를 해 입학시켜줬어요. 오전에는 인물화, 오후에는 정물화를 그렸어요. 그리고 파리에 있는 여러 미술관에서 그림을 볼 수 있었죠.

 

 

영적 독서로 키워낸 신앙

 

프랑스 유학 중에 가톨릭국제형제회(AFI)가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지냈어요. 여러 나라 학생 50~60명이 함께 살았죠. 그때는 가톨릭에 대해 잘 모를 때였어요.

 

대학교를 다닐 때 미술대학 학장이 장발(루도비코) 교수님이셨는데, 장발 선생님이 가톨릭신자들만 편애했어요. 그래서 속으로 ‘무슨 종교가 저래’ 하면서 오히려 가톨릭교회에 대한 반감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 AFI 회원들의 삶을 보니 가톨릭교회에 대한 반감이 사라졌어요. 당시 그림은 그렸지만 어떤 신념이 없었기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던 때였어요. AFI 회원들의 표양을 보고 ‘아, 하느님께서 진짜 계신가보다’라는 생각을 했고, 1958년 부활 대축일에 파리의 한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어요. 교리를 따로 배우지 않고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프랑스와 한국의 교회 분위기도 다르고 전례도 좀 어색하고 하니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한참 냉담을 했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다보니 더 잊게 됐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책장에서 기도에 관한 로마노 과르다니 신부님의 책이 눈에 띄었어요. 세례 때 선물 받은 책이었어요. 프랑스어로 돼 있었는데, 사전을 찾아가며 다시 차근차근 읽어보니 ‘기도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어요. 이후로 다른 신앙 서적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냉담을 풀고 성당에 다시 다니게 됐죠. 지금도 책으로 많이 배워요. 신앙이라는 게 화초와 같아서 가꾸지 않으면 곧바로 시들더라고요.

 

 

틀을 깨는 다양한 시도

 

프랑스 유학 후 이듬해 결혼을 했고, 결혼 이후 거의 10년 동안 아무 것도 못했어요. 환경도 바뀌고 아이 넷을 키워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내 안에는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계속 있었어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미국의 한 작가가 간판에 쓰이는 네온으로 작품을 만든 것을 보게 됐어요. ‘나도 이걸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1970년대에 네온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었죠. 새로운 소재와 형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게 재밌었어요. 그 다음엔 철을 소재로 여러 작품을 만들었어요.

 

가톨릭신자이지만 교회미술 작품을 많이 하지는 못했어요. 신앙을 작품으로 표현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아는 신부님이 요청해서 춘천교구 원천성당에 십자가의길 그림을 그렸고, 네온 작업을 할 때 성체등을 만들기도 했어요. 이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기증했죠. 한번은 서울 가톨릭미술가회 회원전에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철로 만든 작품을 내기도 했고요.

 

지금도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본능이 있어요. 이 나이에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한 일이죠. 요즘 만드는 그림은 형편없지만 되든 안 되든 눈만 뜨면 오전에 2~3시간 그림을 그려요. 올해 가을쯤 괜찮은 작품들을 모아서 회고전을 할 계획이니 많이들 와주세요.

 

 

■ 나희균(크리스티나) 작가는…

 

1932년 만주 출생. 1953년 서울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55~1958년 여성 미술가로서는 최초로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한국의 첫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1896~1948)의 조카다.

 

1958년 파리 베네지트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17차례의 개인전을 열며, 다양한 소재로 실험적인 시도를 거듭했다.

1998년 가톨릭미술상 본상, 2023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했다.

 

 

춘천교구 포천 운천성당 십자가의 길 12처.




- 성체등(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소장).




- 내 안에 빛을 IV.

 

[가톨릭신문, 2024년 1월 7일, 정리 최용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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