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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사ㅣ 준성사

[혼인성사] 혼인반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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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76

혼인반지 이야기

 

 

되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끈 - 혼인 반지에 얽힌 이야기

 

보석이라는 것은 매우 신비한 힘을 지닌 것 같다. 우선 그것이 지닌 신비로운 빛깔도 그렇거니와 또한 그 희소성으로 인해 여러 사람들을 설레게 만든다. 특히 여자들이 보석에 대해 커다란 매력을 느끼는 듯이 보이지만 보석과 별로 상관없이 살아가는 나 또한 아주 새파란 에메랄드나 빨간 루비 등의 보석을 바라보면 그 돌이 내어 뿜는 신비로운 빛깔에 경탄하고야 만다. 보석에는 어떤 인공적인 물감으로도 물들일 수 없는 하느님의 색깔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이 반지를 장식하고 있다면 어떨까? 아마 그로 인해 보석은 더욱 빛날 것이다. 왜냐하면 반지란 단순한 보석이 달린 고리를 뛰어넘는 인생의 깊이를 생각하게 하는 의미가 담겨질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우선 반지의 모양을 살펴보자. 그 환모양의 둥그러움에서 어떤 신비가 느껴지지 않는가? 돌고 돌아도 제자리에 오는 그러나 다시 정지하지 말고 자꾸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우리네 삶을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반지가 지닌 더 큰 매력은 그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반지는 사회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갖는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백일이 되고 첫돌이 되어 처음으로 장식하는 것도 반지일 것이고 결혼예물의 중심이 되는 것도 반지이며 또한 오랫동안 인생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들이 금혼식 때 나누는 것도 반지일 것이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반지는 혼인성사의 신비를 표현하기도 하고 또 수도자들의 그리스도와의 결합을 상징하기도하며 주교님들의 교회와의 관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반지에는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 중요한 상징을 가지는 것일까?

 

 

혼인반지의 유래

 

오늘날 결혼식에 예물로서 반지를 교환하는 것은 보편적인 행위이다.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예물로 반지를 교환한다. 한국의 장신구 역사에 대한 연구를 해보지 않아서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관습은 서양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도 가락지라는 반지가 존재했으나 어머니가 딸이나 며느리에게 전해주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았나 생각되며 결혼식 때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것으로 정착된 것은 서양문화의 유입에 의한 것이라 생각된다.

 

서양에서의 결혼과 관련지어 반지가 사용된 것은 문헌으로 알려진 바로는 고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로마문화가 그리스의 헬레니즘에 의해 강력한 영향을 받아 형성된 문화이므로 어쩌면 헬레니즘의 풍습이 로마에 전해졌는지도 모른다. 로마시대에 반지는 약혼식에서 처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신랑이 신부에게 반지를 선물했는데 반지는 약혼의 정표로서 철로 만들어진 것이며 약혼 후에 신부는 이를 왼손에 착용하는 것이 통례였다고 한다. 루치우스 안네우스 세네카(BC.90-AD.65년)나 플리니우스 체칠리우스 2세(AD.27-29년)의 기록에 의하면 약혼한 신부는 어떤 장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랑에 대한 신뢰의 증표로서 반지를 끼었다고 한다. 히브리와 이집트 등의 셈족 문화권에서 반지는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고 특히 왕들에게는 인장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로마에서도 물론 반지는 장식물로 사용되었지만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신분을 결정하는 표지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서 노예들도 자신의 주인이 누구라는 고리를 차고 있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때 신랑이 일방적으로 신부에게 약혼의 의미로 반지를 선물하는 것은 어떤 예물의 의미보다는 약혼식을 통해서 신부가 신랑에게 귀속되었다는 의미가 더 강하지 안았겠는가 추정된다. 아무튼 이러한 로마의 관습은 그대로 교회에 이어지게 되며 초대교부 떼르뚤리아노의 증언에 의하면 그 당시 교회 혼인에 반지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관습이 교회 안에서 고착되었고 후에 반지를 축복하는 예절이 중세기에 스페인과 갈리아(오늘의 프랑스)지방에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이미 떼르뚤리아노가 이야기했지만 교회에서의 반지는 참으로 두 사람이 교환하는 인격, 다시 말해서 사랑과 신의의 표지가 되는 것이다.

 

 

혼인반지의 의미

 

반지는 인류가 청동기 문화를 구가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함께 해온 오랜 장신구이며 다른 모든 것들이 수없이 그 모양을 바꿔왔음에도 그 형태가 오늘까지 거의 변형 없이 전해 내려온 장신구이기도 하다. 그러면 많은 다른 장신구들 중에서 왜 로마에서는 결혼식에 반지를 사용하였을까? 우리가 이 대답을 찾아낸다면 교회에서 어떤 생각에서 이 반지를 받아들였는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로마문화는 헬레니즘 문화를 그 토대로 삼는다. 로마와 헬레니즘 모두가 반지를 혼인의 표징으로 사용했다면 우리는 그 근거를 헬레니즘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빌론과 이집트의 전승에서 반지는 매우 중요한 상징으로 드러난다. 하나는 태양신의 상징이며 또 하나는 왕권의 보증(인장반지)이기도 하였다. 혼인에 관한 세미나를 위한 작업을 하다가 나는 헬레니즘의 신화에서 반지와 관련된 아주 재미있고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폴리크라테스는 왕이었다. 그는 자신이 왕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기로 결정하였고 커다란 에메랄드가 박힌 왕의 반지를 높은 탑 위에서 바다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가 던진 반지는 물고기가 삼켰고 한 어부는 그 물고기를 잡아 반지를 찾아내고 그 왕의 반지를 다시 폴리크라테스에게 가져다준다. 헬레니즘의 신들이 정한 운명을 인간은 바꿀 수 없는 것이며 여기서 그 반지는 되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징표가 되는 것이다.

 

만약 혼인이 이와 같이 사랑과 신의로 매듭지어진 되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끈이라면 혼인에서의 반지는 그와 같은 사랑의 끈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반지는 바로 혼인에서 사랑과 신의로 맺어진, 인간의 힘으로는 이제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결합의 상징인 것이다.

 

혼인은 천지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것(창세1,27)에 의해 이미 확정지어진 운명이며 따라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인이란 하느님의 창조의 연속선 위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를 다시 확인하시며 혼인을 통해서 두 인격체가 하나가 됨을 선포하신다(마태 19,3이하). 더 나아가서 사도 바오로는 혼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어 하나가 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에페5,25) 가르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운명적인 일치의 상징으로 저 결혼반지는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이와 같은 의미에서 이교 문화였던 반지교환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더욱 상징화 시켰다. 오늘날 사제는 혼례식에서 반지를 축복하며 말하기를 반지는 부부가 나눌 사랑과 신의의 표지라고 선포한다. 또한 신랑신부는 반지를 교환할 때 자신이 마음대로 주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반지를 주노라고 온 하객(회중) 앞에서 선포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교환인가? 그러나 참으로 아름답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다시는 되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끈이라는 것을 명심하며 나누는 반지이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교회의 혼인풍습과 반지 사용은 후 동정녀들의 표징이 되어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상징하는 서원 반지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수녀님들은 그리스도와의 정주의 상징으로 반지를 끼는 것이며 하느님과 함께 하는 되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끈으로 자신들의 삶을 기쁘게 하느님과 묶는 것이다. 또한 중세시대에 이르러 제후들의 관습에 영향받은 바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주교님들도 자신들이 관장할 교구의 목자로서 양떼들과의 운명의 끈으로 자신을 묶기 위하여 목자의 반지를 끼고 사목에 임하시는 것이다.

 

본당에서 혼인을 주례하다보면 여러 모습의 반지를 준비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아주 비싼 반지를 준비하여 오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아 성물판매소에 있는 묵주반지를 급하게 사 가지고 오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운명의 끈인 혼인반지를 정성껏 준비하여 기도의 의미와 연결시켜 묵주의 반지를 준비하기도 한다. 어떤 반지를 준비해 오든지 이와 같은 혼인 반지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운명적으로 결합되어 돌고 돌아도 끝이 없을 저 사랑의 길을 마지막 숨을 내쉬는 그 순간까지 함께 살 것이라는 다짐이 그 반지에 들어 있으며, 또 그들을 맺어준 하느님의 사랑도 거기에 함께 담겨져 있으며, 그로 인해 어떤 세속적인 권위나 이유나 변명으로도 해소할 수 없는 영원히 하나로 결합된 사랑의 표징이 바로 반지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그 반지를 사랑하는 이에게 끼워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저 되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끈인 혼인반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가톨릭대학교 홈페이지에서, 이완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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