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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가족과 혼인제도, 문화해석과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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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18 ㅣ No.805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준비하며] 가족과 혼인제도, 문화해석과 종교



서로 다른 혼인의 풍습과 가족형태들

흔히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가정을 일부일처제(monogamy)에서 찾지만 인류학자들은 지구상 일부다처제(polygyny)나 일처다부제(polyandry)의 경우도 많으며 심지어 동성혼이 허용되는 사회도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부부가 정해져 있지 않거나 별거하면서 방문하는 풍습도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종교와 윤리적 가르침으로 대변되지만 경제적인, 인구학적인 적응 수단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아시아 일부 지역의 무슬림 사회에서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지만 모든 무슬림이 그런 가족유형을 갖지는 않는다. 또한 오늘날 네 명의 부인까지 허용하는 율법에 따라 두 명 이상의 아내를 두는 경우가 있어도 일부일처 가족이 보편적이다. 그것은 이슬람을 포기한 결과가 아니고 윤리가 더 발달했다고 해석할 수도 없다. 나아가 이슬람의 율법이 반드시 일부다처제를 의무화하는 것도 아니다.

무슬림 사회에서 일부다처 가족은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여성과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이해된다. 곧 그것은 이슬람 율법을 지키려는 전쟁에서 많은 남자들이 전사하게 된 후에 남편과 아버지를 잃고 의지할 데가 없어진 여성들과 어린이들에 대한 자비와 책임을 가르치는 쿠란의 구절에 근거한다. 남성의 욕망이나 남존여비 사상의 발로가 아니다.

실제로 쿠란은 모든 아내를 공정하고 충분하게 보살필 수 있는 사람만이 한 명 이상의 아내를 얻을 수 있다고 못 박고 있어 여성의 안녕과 복지에 대한 배려를 드러낸다. 또한 가톨릭 신앙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율법에서도 혼인은 두 사람 간의 사랑과 자비에 기초한 성스러운 계약으로 부부 간의 관계는 비록 서로 다른 역할을 행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평등한 상호 존중에 뿌리내리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생태학적인 측면에서 아프리카 사하라 남부의 원시농경 지역에서는 인구밀도가 낮아서 여러 지역으로 이동경작을 하는데 부인이 많을수록 그만큼 농업노동력이 확보되며 또한 노동력으로서 자녀들을 많이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남성노동력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서아프리카의 집약농업지대에서도 더 많은 아들을 얻으려는 수단으로 일부다처 혼인이 행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남편이 농사를 담당하는 동안 부인들이 짝을 이루어 외지로 다니며 상업에 종사한다. 집안 살림과 아이들은 나이가 많은 첫째 부인이 돌본다. 곧 부인이 많을수록 집안의 경제적 기회와 활동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결국 일부다처제는 더 많은 자녀 곧 노동력을 얻을 수 있고 여러 부인들의 친족 집단들과 넓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여기서 적어도 율법과 이상에서 일부다처제는 우리 사회의 처첩제도와는 다름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첩은 본인은 물론 그 자녀까지도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비정한 차별을 당하지만 일부다처제 사회에서의 부인과 그 자녀는 모두 동등한 법적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것이다.

사회에 따라서는 형제 중 한 명이 사망할 경우 살아남은 형제중 하나가 사망한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여 그와 그 자녀들을 돌보는 형사취수혼(levirate)이나 아내가 사망할 경우 그 여동생과 결혼함으로써 처가 쪽 친족들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제망매혼(sororate)이 있다.

전자의 예는 고대 유다 사회나 고구려에서 찾을 수 있고 후자는 일본에서 볼 수 있었다. 이는 결혼이 개인이 아니라 두 집단의 결합이라는 의미가 더 강한 시대와 사회의 모습이다.

일부 사회에서는 한 명의 부인과 둘 이상의 남편으로 이루어지는 일처다부제가 행해지기도 한다. 이는 주로 제한된 자원에 대한 적응 수단이다.

예를 들어 히말라야 고원의 티베트는 척박한 산악지대로서 경작지가 극도로 부족하다. 그래서 전통시대에는 여자영아살해(female infanticide) 관행이 있었다. 이른바 양육경비에 비하여 여자와 남자의 유용성에 차이가 나므로 성별에 따른 인구조절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결과 결혼적령기의 남녀성비에서 여성이 적게 되었다.

또한 토지와 가축의 분할은 가족경제의 영세화를 초래한다. 결국 경제력이 부족한 집에서는 일부일처 대신에 형제들이 한 명의 아내를 공유함으로써 가족경제의 기초인 경작지를 보존하고 나아가 먹여 살려야할 식구의 수도 제한할 수 있었다. 현대화 과정을 거쳐 의료보건 체계의 도입과 생산성 증대와 경제적 기회의 다양화 등은 여자영아살해의 풍습을 없앴고 따라서 일처다부 형태의 가족도 그만큼 줄어들게 되었다.

‘가족’이 아버지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례로 인도의 나야족이 있다. 전통적으로 이 부족의 남성들은 대부분 외지에 용병(傭兵)으로 나가며 여성은 자녀와 가족을 이룬다.

여자는 어릴 때 남편을 정하여 의례적인 혼인을 행하지만 그와 실제 부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성장한 후 자신의 카스트에 속한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남성과 자유롭게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

아이를 낳으면 스스로 아버지임을 주장하는 사람의 아이로 되어 그로부터 양육비를 보장받는다. 아버지를 자처하는 사람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면 그 여인은 친정 형제로부터 ‘명예살해’를 당한다. 오늘날 나야 사회는 정착농경 사회가 되어 남자가 외지로 나가지 않고 따라서 대개는 일부일처의 가족을 이룬다.

중국의 모소족 사회에서는 여자는 평생 친정가족과 살며 남자는 밤이면 애인의 집으로 몰래 가서 잠을 자고 새벽에는 자기 집으로 오는데 아이는 그 여인이 키운다. 한 여인이 여러 명의 애인이 있으므로 아이의 아버지는 다를 수 있으며 누가 아버지인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이 사회에는 이혼이나 재산상속의 문제가 없다.


바람직한 가정의 모습과 우리의 현실

위에서 살펴본 예들은 일부일처혼과는 매우 다른 형태인 이른바 복혼(複婚 poly-gamy)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가족제도들은 지난 세기를 거치면서 일부일처 형태로 많이 바뀌었다.

경제구조와 사회적 환경의 변화 그리고 국가의 법체계 확립 등으로 더 이상 이전의 환경적응 전략을 취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들은 반드시 순조로운 과정을 거친 것만은 아니다.

일부다처제가 보편적이었던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의 경우 식민지배와 함께 기독교가 들어와 서구식 일부일처제를 도입하고 영국 식민정부가 일부일처 혼인만 법적 뒷받침을 하게 되자 일부다처 가족의 아이들은 모두 사생아가 되었고 재산상속과 분배에 많은 혼란과 갈등이 일어났다. ‘현대적’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여자들 중에는 전통적 관행의 지속과 새로운 질서체계 사이에서 희생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또한 도시화와 산업화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성을 크게 약화시켰다. 전통적 사회체계에서 부인들은 자신의 노동력과 출산력을 자산(資産)의 근원으로 삼고 개인적 부의 축적을 기초로 하여 남편이나 다른 부인들과 불화가 있을 경우 독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도시 경제구조에서 여성은 전통적으로 지녀왔던 생산과 재생산에서의 역할을 상실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남편에게 예속된 가정주부로 전환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를 재고하면 다양한 가족제도와 관습들은 일단 환경적응의 문화적 기제로서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타당성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많은 부작용도 있다.

곧 어느 특정의 제도가 반드시 가장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일부일처 사회의 가족과 혼인관계의 변화 과정을 보면 더욱 뚜렷하다.

현대 사회에서 이혼과 재혼이 너무 흔해져 한 사람이 평생한 명의 배우자와 사는 원래 의미의 일부일처 혼인은 오히려 소수가 되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특정 시기에는 일부일처 형태이지만 일생을 놓고 보면 결국 여러 명의 배우자를 갖게된다는 의미에서 ‘순차적인 일부일처(serial monogamy)’인 것이다.

이 경우 자녀들은 서로 다른 가정에서 살면서 이전의 아버지나 어머니와 지속적으로 경제적 또는 인간적인 관계를 갖고 살아가게 되며, 그러한 처지의 ‘가족관계’는 전통적인 복혼제 사회에서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또한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가정의 형성이나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더 이상 개인의 행복의 근원으로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개인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으로 본다. 가정을 이룬 경우에도 부모 자녀 간이나 부부간 갈등, 학대, 폭행, 심지어 유기나 살인 등도 적지 않다. 가족끼리 소통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고, 도시 지역에서도 자식과 배우자마저 떠나보낸 후 무연고자로 살다가 쓸쓸히 고독사(孤獨死)하는 노인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현대의 가족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우리에게 ‘가족’이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람직한 가정의 모습이나 혼인관계는 특정의 제도가 아니라, 비록 다른 문화 전통에서 서로 다른 형태를 취하더라도 그것을 이루는 관계의 질에 달린 것이라는 점이다.

곧 가정 안에서 서로의 관계가 미움과 무관심, 이기적 욕심이나 자기주장이 아니라 사랑과 이해, 배려와 양보에 기초해 맺어지고 가정이 그러한 인성을 길러내는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당면한 많은 도전을 이겨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종교가 가족과 가정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줘야한다면 그것은 그 제도적 형식이 아니라 부부간 그리고 가족 성원 간의 진정한 사랑과 존중과 평등을 실천하는 도덕체계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에 ‘바람직하지 못한’ 가족형태를 고치려면 교회가 주님의 말씀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삶의 사회적 조건을 바꾸는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 문옥표 데레사 -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인류학 교수. 서울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였으며, 미국 하버드대학교 석좌교수, 한국문화인류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동아시아 문화전통과 한국사회」, 「신여성 : 한국과 일본의 근대 여성상」, 「조선 양반의 생활세계」, 「문화의 해석」 등의 공저서와 번역서를 냈다.

[경향잡지, 2015년 3월호, 문옥표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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