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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진28: 한국교회 청소년 사목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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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7-06 ㅣ No.211

[조재연 신부의 청사진(청소년 사목의 설계도)] (28) 한국교회 청소년 사목의 역사 ①


가톨릭학생회의 창립과 쇠퇴



한국교회의 청소년·청년사목이 한국교회만의 맥락과 역사 안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오늘 날의 모습으로 정립되고 발전돼 왔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8세기 말 시작된 청소년·청년사목의 초기 형태는 가정과 교회에서 신앙전수를 위해 이뤄진 학습과 암송 위주의 문답식 교리교육의 모습이다. 1932년 최초로 어린이용 교리교재 「어린이 문답」이 출판된 이래, 교리문답 중심의 흐름은 전국 본당에 주일학교 형태가 정착되는 것에 발맞춰 체계화됐다. 같은 시기, 1920~30년대의 근대화 물결 속에 등장한 지식인층인 대학생들은 각 본당에서 청년회를 결성, 각종 신심행사, 전교 활동, 주일학교 봉사 등을 통해 본당 사목의 핵심 협력자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45년 해방 이후, 국가 재건의 열망이 고무됨에 따라 본당의 청년회는 점차 교회 내 뿐 아니라 사회변화를 위한 활동에도 참여하는 ‘가톨릭학생회’로서 조직됐다.

그렇게 1953년 ‘대한가톨릭학생회’가 창립돼 국제 가톨릭학생 사도직운동인 ‘팍스 로마나‘에 가입하면서, 대학생들로 구성된 한국가톨릭학생회는 크게 도약한다. 1955년을 전후로 전국적으로 각 본당에 가톨릭학생회가 조직되고 교구별로 학생연합회가 신설되는 등 본격적인 조직화가 이뤄졌으며, 국제가톨릭학생운동의 방법론인 ‘셀모임’의 도입과 ‘레지오마리애’ 활동을 통해 1960년대에도 활성화된 움직임을 이어나갔다. 당시 주교단은 가톨릭학생회 전국연합에 지도신부를 파견, 조직의 안정화를 도왔고 청년들을 사목적으로 이끌어줬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국가적으로 중·고등학생 교육이 명확히 분화되고 학생 수도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각 본당 주일학교 교리교육은 어린이들에게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며, 중·고등학생들은 교리교습을 받기보다는 주로 대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며 가톨릭학생회 활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58년 ‘가톨릭노동청년회’(YCW)가 창설됨에 따라 중·고등학생이 아닌 노동현장의 청소년들도 가톨릭운동에 합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1960년대 국내 대학 및 중·고등학교의 학생 수 증가로 인해 가톨릭학생회의 회원 수도 몇 배로 늘어나자, 점차 대학생과 중·고등학생 학생회 조직의 분리에 대한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에 학생 수가 가장 많았던 서울대교구에서 1961년 가장 먼저 중·고등학생 연합회가 창립됐고 이어서 부산과 대구대교구 등에서도 독자적 연합회가 조직됐다. 이후 대학부와 중·고등부로 나뉜 가톨릭학생회는 정기적인 전국대회, 순교자 현양 행사와 같은 연례행사 등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 나갔으며, 타 종교 단체 및 일반 사회단체와도 적극적으로 교류했다. 그러나 ‘가톨릭학생회 전국연합은 학교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팍스 로마나 학생 운동의 규정에 따라, 본당 중심의 셀 모임과 가톨릭 학생회는 시간이 갈수록 약화됐고 대부분의 활동은 학교 중심으로 이뤄지게 됐다.

1970년대 들어서 가톨릭 학생회 회원 수는 정체됐고, 동시에 독재 정치 및 기성세대에 반발하는 대학가의 데모 분위기가 가톨릭학생회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가톨릭학생회는 점차 사회참여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된다. 가톨릭학생회의 사회참여 노선이 계속적으로 한국교회 지도층과 마찰을 빚게 되는 사건이 이어지자, 총재주교는 기존의 가톨릭학생회 대학부 총연합회를 해체시키고 각 교구 학생회 회장들이 교대로 전국 총회장을 담당하는 체제로 조직을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전국 조직을 관장하고 행사를 개최해 오던 총연합회가 유명무실해지자 각 지역 학생회 간의 교류는 점차 줄어들었으며, 1970년대 중반 이후 계속되는 학생회 회원 수의 감소와 비종교적 행사의 반복은 가톨릭학생회 전반의 정체로 이어졌다.

* 조재연 신부는 서울대교구 무악재본당 주임으로 사목하고있으며, 햇살청소년사목센터 소장,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청소년사목위원회 전문위원, 한국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7월 6일,
조재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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