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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세계사형폐지의 날 기념 세미나: 법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형을 폐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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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1-10 ㅣ No.982

세계사형폐지의 날 기념 세미나 - ‘법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형을 폐지하라’



- 종교인들과 법전문가들이 지난달 30일 열린 사형 폐지를 위한 세미나에 참석해 발표하고 있다.


사형제도는 인류가 영원히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숙제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어떻게 이 난제를 풀어가야 하는가.

흉악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사형제도의 존폐 문제를 두고 종교인들과 법 관련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세계사형폐지의 날(10월 10일)을 기념해 10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사형폐지를 위한 세미나는 종교와 이념을 넘어서 사형제도의 비인간성과 폐지의 당위성을 되새기게 한 자리였다.

‘법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형을 폐지하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 김형태 변호사(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연합 집행위원장)는 “사형제도가 종신형과 같이 그 위협도가 떨어진다고 간주되는 다른 형벌에 비해 큰 살인 억제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수용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자세”라며 “캐나다는 살인에 대한 사형을 폐지하기 직전인 1975년을 기점으로 인구 10만 명당 살인율이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흉악 범죄가 잇따르면서 지난 1997년 이후 유보되고 있는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으나, 그 실질적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사형폐지의 근거와 대안’을 주제로 한 기조발제를 통해 유럽평의회가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 보낸 의견서를 소개하며 “사형제 폐지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사회를 떠받치는 기본 가치를 강화하는 것”임을 역설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 정부가 지난 2008년 유럽연합 국가들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으면서 유럽에서 인도받은 범죄인에게 사형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함으로써 헌법상의 평등의 원칙에 따라 다른 나라나 국내에서 잡힌 범죄인에 대해서도 사형을 집행하면 안 된다”는 점을 밝혔다.

실제 서구 선진국 중 유일하게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사형 집행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시됐다.

파리 팡테옹-아사스대학교 홍기원 방문교수는 ‘미국의 사형 폐지 현황-2009년 뉴멕시코 주의 사형폐지 이후’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미국에서 사형제도가 없는 주가 17개 주에 달하고,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주에서도 최근 10여 년간 사형집행 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며 일리노이 주의 실례를 소개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일리노이 주는 2003년 당시만 해도 사형제를 유지하는 주 가운데 사형수가 8번째로 많은 주였다. 그러나 1972년 이후 이 주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289명 중 나중에 무죄가 밝혀져 석방된 이가 18명에 달할 정도로 오판율이 높아지자 사형제도 개혁이 추진됐다.

그는 특히 “일리노이 주의 경우 사형폐지를 위한 최근의 노력이 주정부측에 의해 이루어졌음이 특기할 만하다”고 밝히고 “오판이나 차별적 취급을 유발할 수 있는 수많은 단점들로부터 자유로운 완벽한 사형체계를 설계할 수 없음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기에 차라리 사형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한 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일리노이 주 팻 퀸 주지사의 선언을 소개했다.

부산과학기술대학교 이덕인 교수(경찰경호계열)는 ‘사형제도의 국제적 동향과 미래예측-동북아시아와 중동지역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토론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는 정확한 사형 통계가 존재하지 않아 과거의 사형집행에서 얼마나 많은 오판과 사법살인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명백한 즉답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는 실체를 특정할 수 없는 대중적 여론에 사형제의 존립 근거를 내맡기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유교에 기반을 둔 아시아적 가치관이 뿌리 깊은 인권의식을 변경하려면 사형제를 한 국가의 문제, 주권의 문제로 다뤄서는 안 되며, 국제사회가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차원에서 개입해야 할 인류공영의 문제로 규정하여 사형제 폐지를 위한 영향력을 동아시아 국가에 대해 행사하고 이에 대한 확인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한국은 국제연합 수장의 출신국가이자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라는 국제사회에서의 국격에 걸맞게 국제규약 제2선택 의정서에 가입, 비준하는 절차를 조속히 이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박진옥 사무국장 직무대행은 ‘세계의 사형제도 현황’ 발표를 통해 “2011년 전 세계 198개국 중 10%에 불과한 단 20개 국만이 사형을 집행했다”며 관련 수치는 “10년 전 31개국이 사형을 집행한 것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급격히 감소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제앰네스티 자료에 따르면 ▲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폐지국 96개국 ▲ 일반 범죄에 대한 사형폐지국 9개국 ▲ 사실상 사형폐지국 35개국 등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은 전 세계적으로 140개국이며, 사형존치국은 58개 나라로 나타났다.

박 국장은 “해가 갈수록 국제사회에서 사형존치국의 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더 이상 인권과 사형제도가 양립될 수 없다는 단순한 원칙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러한 흐름은 세계가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사법살인인 사형제도 없이도 충분히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법학부)는 ‘한국의 형벌 포퓰리즘과 사형제도’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서구에서의 형벌 포퓰리즘이 언론과 정치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연대하고 시민들이 그것을 지지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한국 사회에서의 형벌 포퓰리즘은 최근 몇 년 동안의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미나에 앞서 열린 기념식에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인사말을 통해 지난해 극우주의자의 테러로 77명이 희생된 노르웨이 테러 사건의 예를 들며 “노르웨이 정부와 국민들은 참혹한 폭력에 맞서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더 넓은 개방 정책, 더욱 확대된 정치참여를 향해 나가야 한다는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폭력을 이겨내고 안정을 찾아갔다”며 사형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흉악 범죄에 대처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 토마스 코즐로프스키 대사는 축사를 통해 “유럽연합의 어느 국가도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도 단 한 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형제를 폐지했다”며 “한국이 19대 국회에서 법적으로도 사형폐지가 이루어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마련한 유인태 의원(민주통합당)은 “지난 17대 국회에서 여야 의원 175명의 서명을 받아 사형폐지법안을 제출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며 “이번 19대 국회에서 소속정당을 초월해 뜻을 같이하는 의원들과 법안을 제출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자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2012년 11월 11일, 서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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